상상은 힘이 세다. 한때 유행한 광고 카피와 같은 이 말은 사실이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상징적 사회질서와 인식구조를 파괴하는 이 무해한 일탈 행위의 그 힘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대로 종종 실현되어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기도 했다. 상상은 그 희열 또한 말 그대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어떤 피폐한 상황에서도 심지어 그것이 공상과 망상으로 비칠 때조차 향수(享受)하는 이를 행복감에 들뜨게 하고 불행을 극복하게 하는 기적의 힘마저 가진다.
나도 지난 20여 년간 조상의 세거지(世居地)이면서 고향인 대구가 동아시아의 허브가 되기를 염원하며 상상한 것들을 실제로 기획하고 실행하면서 성공과 좌절을 골고루 맛보아 왔다. 물론 그때의 그 상상들에는 현재까지도 기획진행 중이거나 폐기하기엔 너무 아까워 언젠가는 햇빛을 볼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면서 잠정보류 중인 것들이 많다.
가령 15년간 400회를 육박해가는 내가 근무하는 회사의 인문예술, 사회과학 특강은 현재도 기획진행 중인 상상의 산물이다. 이 프로그램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괜찮다는 평판을 얻고 있어 가슴 뿌듯하다. 점차적으로 소개(疏開)되는 후기산업 중심 도시의 공업단지에 빌바오 구겐하임 같은 유수의 미술관 유치, 대구를 세계적인 문학의 메카로 만들어 보는 상상은 지난 세기말부터 추진하다가 잠정보류 중인 것들이다.
그 틈새에 기회가 닿는다면 전문가들에게 건의할 상상도 몇 가지 쟁여 놓았다. 한때 도시의 심벌이었던 사과 조형물을 거대한 스티브 잡스의 애플컴퓨터 껍질로 도시 랜드마크로 삼아보는 것과 한창 건설 중인 도시의 경전철 드높은 교각마다 전기료가 적게 드는 LED로 멋진 조형작품들을 설치하여 샹젤리제 거리처럼 만든다면 미관에 다소 문제가 있다는 경전철 구간 주변의 상권이 살지 않을까 하는 것이 요즘 내가 해보는 즐거운 상상이다.
실현 가능성이 있냐고? 그건 나도 모른다. 다만 몇 번 거대한 벽에 부딪혀 실행되지 못한 채 폐기된 나의 상상이 가끔 온 나라를 한 바퀴 돌아 다른 도시에서 그 실한 열매를 거두는 경우를 주변 사람들과 안타깝게 지켜본 적은 있다. 그때마다 나는 소위 우리나라의 중앙으로 일컬어지는 곳이나 외국으로 훌훌 떠나버릴까라는 안타까운 공상을 하곤 했다. 지금 나의 노트에 들어 있는 상상의 조각들도 그런 운명에 처할까 두려울 뿐이다.
그럴 때마다 필립 들레름의 첫 맥주 한 모금의 매혹처럼 그런 나를 붙드는 경구가 있는데 '자신이 발을 디딘 땅이 삶의 중심이다'가 바로 그것이다. 예전 다니던 잡지사의 창간사 한 구절인 이 말은 불안한 궤도 위 정거(停車)없이 달리는 설국열차처럼 삶의 가치가 흔들릴 때마다 내게 차분한 나비의 날개 깃인 양 거친 마음을 보듬어 주곤 했다.
그러면 나는 다시 에든버러, 아비뇽, 헤이 온 와이… 주문처럼 세계적으로 성공한 지방도시 이름을 외며, 지방자치란 향후 각 지역이 고대 희랍 도시국가 폴리스의 형태로 변별성과 특색으로 발전해나가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란 믿음을 굳게 다져보는 것이다.
지금 대구는 '중구 골목 투어' 같은 고유한 우리 문화예술과 상상 그리고 삶의 민낯이 강력한 동력으로 융합되어 빅뱅에 버금가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문화예술상품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또한 그 미래에 자신을 걸고 노력하는 이들이 무척 많다. 조만간 대구는 문화예술 마케팅에 성공한 세계 유수의 지방도시들처럼 그 실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시인 기형도의 표현대로 중앙과 지방 딜레마에 시달리며 톱밥처럼 쓸쓸하게 흩어졌던 지역의 밝고 맑고 뛰어난 젊은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젊은이여, 돌아오라. 지역의 우리는 도시를 지키며 시공을 초월하는 상상으로 견고한 미래의 토대를 구축해 놓았으니, 당신들이 대구를 떠나 중앙과 해외를 돌아다니며 쌓은 새로운 지식과 실험적인 경험을 보태어 더욱더 튼실한 상상의 열매를 함께 거두어보자"고 말이다.
박미영 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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