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산세 눈에 넣고 산새 소리 들으며 힘차게 페달 밟아
자전거 여행은 떠날 때마다 설렌다. 새벽, 태백으로 향하는 버스에 자전거를 실었을 때에도 마음은 들떴다. 새벽이 주는 느낌은 이렇게 늘 상쾌하고 즐겁다.
이번 목적지는 강원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의 경계에 있는 함백산(咸白山)이다. 부근은 탄전지대이며 산업선인 태백선 철도가 산의 북쪽 경사면을 지난다. 오대산과 설악산, 태백산 등과 함께 태백산맥에 속하는 고봉이다. 함백산은 높은 산이기도 하지만 자동차로 산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곳이다. 태백에 도착해 바로 자전거를 타고 함백산으로 향했다. 대구에 비해 기온 차가 심해 다소 춥게 느껴졌다. 그러나 주변 경치는 상쾌하고 아름다웠다. 강원도 산세를 눈에 넣으며 서서히 페달을 밟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와 산새 소리, 그리고 나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얼마쯤 가니 정암사라는 절이 나왔다. 정암사는 신라시대 사찰로 천 년 이상 됐다. 웅장하면서도 멋스러운 산사였다. 이곳에는 보물 제410호인 정암사 수마노탑과 정암사의 열목어 서식지(천연기념물 제73호)가 있었다. 함백산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야생화 군락지가 있으나 겨울이라 볼 수 없는 게 안타까웠다.
가는 길에 다람쥐가 길을 가로막았다. 브레이크에 손이 절로 갔다. 얼마나 귀여운지 한참 동안 그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청솔모와는 달랐다. 역시 다람쥐가 청솔모에 비해 예뻤다.
다시 페달을 밟는다. 소나무 향기에 취한 채 한참을 달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수백 그루의 주목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는 주목은 장관이었다. 경상도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저 멀리 풍력발전기(정선군 위치)가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한 폭의 그림이었다. 보고 또 봐도 아름다웠다. 보고 있노라니 힘듦이 가신다.
오르락내리락, 또 얼마나 달렸을까. 도착한 곳은 만항재. 높이가 자그마치 해발 1,330m였다. 자전거 여행 온 분들이 많았다. 잠시 쉬었다가 또 달린다. 다리가 뭉쳐온다. 땀이 흘러내린다. 그러나 있는 힘을 다해 밟고 또 밟는다.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는데 노부부 내외가 잠시 멈추라고 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묻기에 '대구에서 왔다'고 하니, 자전거를 세우라고 했다. 그러고선 등산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주셨다. 산더덕이었다. 껍질을 벗겨 맛을 보니 쌉싸래한 맛이 입안을 맴돈다. 재배한 더덕과는 향과 맛이 달랐다. 얼마나 고마운지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산더덕을 먹고 나니 다시 힘이 났다. 노부부는 정상으로 가는 길은 울퉁불퉁하니까 조심해서 천천히 타라는 당부의 말씀도 잊지 않았다. 만면에 선한 웃음을 머금은 그분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자전거에 다시 올랐다. 입안의 더덕 향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부지런히 페달을 밟았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가슴이 벅찼다. 한참 동안 산 아래를 그냥 내려다봤다. 아름다웠다. 웅장했다. 기백이 넘쳐흘렀다. 강원도의 힘이 느껴졌다.
참 먼 길을 달려왔다. 힘은 들었으나 기분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 뿌듯했다. 이런 기분은 여행해 본 사람만이 안다. 특히 자전거 여행은 더 그러하다. 다시 산에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은 여유가 있다. 강원도 옥수수 맛도 보았다. 집에서 먹는 것에 비할 바 아니다. 얼마나 쫄깃하고 맛있던지.
이번 함백산 자전거여행은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느낀 여행이었다. 그리고 구수한 옥수수 냄새만큼이나 따스하고 후한 인심도 얻어가는 여행이어서 더 즐겁고 행복했다. 대구로 가는 버스 안에서 노부부가 준 산더덕 향을 다시 맡아본다. 안 먹고 아이들에게 줘야지.
윤혜정(자전거타기운동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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