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재의 은퇴일기] 행복했습니다

입력 2013-12-28 08:00:00

은퇴일기를 시작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매주 칼럼을 쓴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괜히 쓸데없는 칼럼을 또 하나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쓰기로 결정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지요. 바로 속죄입니다. 기자 생활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영혼과 열정 없이 쓴 글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갖고 싶었던 것이지요. 좋은 글로 그동안의 잘못을 사죄하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칼럼을 쓰기로 다짐했습니다.

결국은 또 하나의 속죄거리를 만들고야 말았지만 어려움도 많았지요. 글감이 떠오르지 않거나 글이 풀리지 않아 일주일 내내 칼럼만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멋진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잊을까 하여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기도 했지요. 수정하느라 읽고 또 읽어 칼럼을 통째로 외우는 날도 많았습니다.

우습지요.. 글쓰기만 30년 이상 한 사람이 원고지 6장을 메우기 위해 일주일을 꼬박 그 글 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호떡을 30년 이상 구웠으면 아마도 달인이 되고도 남았을 테지요. 솜씨는 짧은데 욕심이 많았나 봅니다.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연락 없이 지냈던 초등학교 동창생이 글을 잘 읽었다며 문자를 보내올 때나, 제 글에 힘과 위안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행복했습니다. 얼굴도 알지 못하는 독자들의 메일을 받으면 다시 힘을 얻곤 했습니다. 과분한 사랑을 받았지요.

최근에 작고한 김열규 교수는 타계하기 전날까지 글을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이 들어 가장 재미있는 것도 글쓰기라고 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즈음에 쓴 글입니다.

'삶의 여백에 죽치고 있다는 생각을 떨어내기 쉽지 않다. 살다 남은 삶, 본바탕은 삭아지고 가까스로 남겨진 나머지나 다름없는 삶을 지탱하고 있다는 생각이 사뭇 어설프다…. 여생(餘生)이라는 말이 역겨워서 떨어내자고 해도 쉽지 않다. 지겹도록 머릿속에 눌어붙어 있다.'

은퇴한 저에게 살다 남은 삶이 아닌, 삶의 한복판에서 뜨겁고 멋지게 살아가라는 주문처럼 들렸습니다. 삶의 여백에서 죽치는 그런 생을 살지 말며, 노후의 삶이란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꾸려가야 한다는 외침 같기도 했지요.

은퇴란 직장생활이 끝난 것일 뿐 인생이 끝난 게 아닐 것입니다. 뜨거운 열정으로 마지막까지 살아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김순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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