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인물] 며느리와 원수였던 흥선대원군

입력 2013-12-21 07:49:18

통상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갈등이 부각되는 반면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관계는 상당히 원만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여기에 반대되는 설정이 흥선대원군(1820~1898)과 명성황후다.

어렵게 아들(고종)을 왕으로 만들고(1863년) 막강한 권한을 휘둘렀던 흥선대원군. 그가 고심 끝에 선택한 며느리와는 원수지간이었다. 두 사람이 본격적인 갈등 관계에 들어선 것은 고종의 후궁이 아들을 낳자 흥선대원군이 무척 좋아해 아이가 없던 명성황후의 마음이 뒤틀린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얼마 후 명성황후가 낳은 아들이 수일 만에 죽자 황후는 대원군이 보낸 산삼을 너무 많이 먹여 그렇게 됐다는 오해를 했다는 설도 있다. 결국 대원군은 고종이 권좌에 오른 지 10년 만에 며느리에 의해 권력 핵심에서 축출된다.

이후 그는 끊임없이 며느리에 대한 암살을 기도했고, 며느리를 제거해달라는 요청을 일본 측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 때문은 아니지만 결국 명성황후는 궁궐 담을 넘어온 일본 낭인들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1820년 오늘 태어난 흥선대원군의 본명은 이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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