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딱' 내놓은 간편 조리 음식이…'홀딱' 세계의 입맛 사로 잡았
터키 케밥은 고기를 구워 빵에 끼운 간단한 음식이다. 대단한 것 같지 않은 데도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관광객들에게는 인기다.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 현지뿐 아니라 중국 베이징의 번화가 왕푸징 거리와 일본 오사카의 도톤보리 거리에서도 케밥 장사를 쉽게 만난다. 우리나라 축제장에도 빠짐없이 등장할 정도다. 이처럼 먹기 간편하고, 조리도 간단한 케밥 같은 음식이 세계를 주름잡는다. 따라서 한식 세계화 소재 선택은 한상차림보다 한 그릇에 담아 내는 간편한 음식이 경쟁력이 있다. '원 디시'(One-dish) 음식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세계 관광객들의 인기는 '원 디시' 음식
터키 케밥처럼 베트남 쌀국수 퍼도 간편하기는 마찬가지다. 베트남 쌀국수는 원래 이동식 부엌을 매고 다니며 거리에서 팔던 음식이다. 양팔 저울처럼 생긴 어깨지게의 한쪽 광주리에는 화로를, 다른 한쪽에는 그릇과 음식재료를 담아 다니다가 손님을 만나면 즉석에서 조리를 했다. 언제 어디서든지 손님을 대할 수 있고 대접 하나에 음식을 담아내는 간편성은 베트남 쌀국수 세계화의 최고 경쟁력이다. 베트남 전쟁을 피해 탈출한 보트피플이 전 세계로 흩어지면서 베트남 쌀국수도 세계로 퍼져 나갔다. 2000년대 들어 베트남 쌀국수의 미국 내 연평균 매출은 5억달러를 웃돌았다. CNN이 정한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50선' 중 28번째로 베트남 쌀국수가 자리 잡기도 했다.
말레이시아 전통음식 나시라막도 간편성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럽다. 바나나 잎에 싼 원뿔형 주먹밥인 나시라막은 땅콩과 멸치볶음 등으로 간을 얹은 쌀밥을 바나나 잎으로 돌돌 말아낸 음식으로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다. 바나나 잎을 풀고 접시에 담아 낸 나시라막은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판매하고 있다.
세계화된 타이 음식의 대표격인 톰얌꿍도 간단한 한 그릇 음식이다. 러시아 전통음식 꼬치구이 샤슬릭도, 피지의 관광음식 크레이피시 찜요리도, 미국 시애틀의 바닷가재 꼬리구이도 다 한 접시 음식이다. 호주 특산 캥거루 스테이크도 모두 스테이크형 음식이다. 많이 차리기로 유명한 게 중국 음식이지만,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베이징 카오야의 경우는 오히려 반대다. 오리구이 접시 외에는 최소한의 소스만 식탁에 차려 놓는다. 오키나와 원주민의 장수음식인 해조류 덮밥 우미부도도 작은 소바 그릇 하나에 담아낼 뿐인데도 미식가들은 감탄사를 연발한다.
향토음식연구가 조선행 씨는 "간편한 음식은 여러모로 음식점 운영비가 절감되는 등 경영원리가 숨어 있다"며 "간결한 음식에는 자연스럽게 공연이나 퍼포먼스 등 추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음식 경쟁력을 더욱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그릇 우리 음식도 세계화 가능성 높아
한국의 한 그릇 음식으로 대표적인 것이 전주비빔밥이다. 밥 위에 다양한 채소와 고명을 얹어 놋대접에 담아 낸 전주비빔밥은 전통성과 간편성 등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음식이다. 이 때문에 국내 향토음식 중 가장 먼저 세계화를 이뤄 외국인들로부터 각광받고 있다. 비빔밥은 산촌에서는 산나물비빔밥으로, 해변에서는 멍게비빔밥, 성게알비빔밥, 전통도시에서는 헛제삿밥 등 다양한 유형으로 특산화되고 있지만 예외 없이 미식가들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서민 음식으로는 국밥도 경쟁력이 있다. 필리핀 전통음식인 생선국 시니강처럼 한 그릇에 말아 내는 잔치국밥도 간편성이 높다. 갈비탕이 이미 '코리안 카우비 수프'라는 이름으로 외국음식 메뉴판에 올려져 있어 곰탕, 설렁탕도 세계 음식 반열에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현재 한식 세계화에 가장 주목받고 있는 한 그릇 음식은 삼계탕이다. 삼계탕은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의 식품 승인 계기로 포장상품이 공항 면세점에 입점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국수도 한 그릇 음식이라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비빔면이든 물면이든 세계인들의 입맛을 유혹할 경쟁력은 충분하다. 수제비와 메밀묵밥, 청포묵밥도 가능성이 높다. 이미 김밥은 롤스시로, 떡볶이는 도보키로 일본에서부터 세계화되고 있다. 강원도 양양의 향토음식 섭국이나 흑산도 홍어탕, 대구 고디탕도 한 그릇 음식으로서 가능성이 높다.
박미숙 전통음식교육원장은 "떡도 간편한 음식으로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만 하면 경쟁력 있는 한식 소재"라며 "다양한 소를 사용하는 만두가 세계 보편적인 요리기법 중 하나로 자리 잡았듯이 우리 떡도 퓨전화하기에 따라 세계 음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100가지로 변신, 밀전병에 주목
터키 케밥의 종류는 1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빵 속을 무엇으로 채우느냐, 고기를 어떻게 굽느냐에 따라 종류가 결정된다. 태국 톰얌꿍도 100여 종류가 넘는다. 국물을 무엇으로 내느냐, 주재료가 무엇이냐에 달려 있다. 간단하지만 맛과 모양을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었기에 이들 전통음식은 세계인의 음식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우리 전통음식인 전병도 터키 케밥과 중국 만두 못지않은 간편성과 다양성을 갖고 있습니다." 향토음식연구가로 조리사인 신현미(50) 씨는 수년 전부터 전통음식 전병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 밀전병이야말로 세계화에 가장 경쟁력 있는 전통음식 유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 나는 대로 전국을 누비며 다양한 전병음식 자료를 수집하고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퓨전형 밀전병 개발에 부심하고 있다.
신 씨는 "전국에는 다양한 형태의 전병이 발달해 있다"고 했다. 안동에선 봄철에 가장 먼저 수확할 수 있는 강낭콩을 이용해 보릿고개를 넘기는 구황음식으로 전병을 만들어 먹었다. 제주도에는 빙떡이라는 전병이 있다. 제사상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빙떡은 제주도만의 명절 음식이다. 요즘도 명절이 되면 화로를 가운데 두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오순도순 부쳐 먹는다고 한다. 빙떡은 메밀로 전을 부치고 속은 무를 간간하게 볶아서 넣는 게 특징이다. 메밀을 이용한 전병은 강원도에서도 흔한 음식이다. 강릉과 동해시 일원에서는 메밀전병 속을 쌉싸름한 갓김치로 채운다. 고소한 메밀전병과 알싸한 갓김치가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낸다. 정선과 태백에서는 감자나 파를 볶아 넣기도 한다. 이와 같은 전병류의 음식은 벌써 세계의 거리에서 눈에 띈다. 중국 베이징 왕푸징 거리음식 골목에도 전병을 구워 팔고 있다. 월남쌈이라고 하는 베트남 전통음식에 쓰는 라이스페이퍼도 일종의 쌀전병이다. 베이징 카오야(북경오리구이)도 터이에벼(연꽃떡)라는 이 쌀전병을 쓴다.
신 씨는 밀가루와 쌀가루, 메밀가루로 전병을 다양하게 만들고, 쑥과 호박, 당근 등을 이용해 연두색과 주황색으로 반죽의 색깔도 낸다. 닭고기 볶음과 고추잡채, 볶음밥, 볶음김치로 전병 속을 채우는 등 다양한 퓨전화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신 씨가 개발하고 있는 전병 냉동식품은 포장유통 상품으로서 가치도 높아 향토식품 업계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사진작가 강병두 plmnb12@hanmail.net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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