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얼굴과 닮은 사람이 태어난다', 인디언들 사이 구전
땅의 생김새가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크게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대표적 사례가 산 모양이 붓끝처럼 생긴 문필봉이다. 문필봉 아래서 태어나 산의 기를 받으며 성장한 아이들은 붓과 관련이 있는 직업에 종사하게 된다고 한다. 이를테면 학자, 문인, 화가, 서예가들이다.
또 사람의 얼굴을 닮은 바위 인근 마을에선 큰 인물이 난다고 믿고 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도 그렇다. 바로 큰 바위 얼굴로 널리 알려진 사우스다코타주의 러쉬모어 산 밑 동네가 미국의 문필봉쯤 된다. 큰 바위 얼굴은 마을 뒷산의 바윗덩어리를 사람의 손으로 깎아 만든 인공 조형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정기를 받아 '위대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미국인들의 참배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큰 바위 얼굴은 존경받는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네 사람의 얼굴이 실물의 12배로 조각되어 있다.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이 그들이다. 이곳은 원래 서기 1500년경부터 인디언의 거주 지역이었다. 인디언들은 큰 바위 얼굴이 조성되기 전부터 바위 속에 들어 있는 보이지 않으면서도 보이는 듯한 위대한 얼굴을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들여다보았다.
인디언들은 '그 얼굴과 닮은 사람이 반드시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후손들에게 전하고 또 전했다. 그 이야기는 인디언들만 전한 게 아니라 골짜기를 흘러가는 시냇물과 나무의 끝을 흔드는 바람의 속삭임이 큰 바위 얼굴이 현세에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이야기로 전해오던 인디언들의 예언이 실현되기에 이르렀다. 1923년 도안 로빈슨이란 선각자가 '지도에 그려질 만한 산(山)기념품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미 의회 피터 노벡 의원이 동참하면서 탄력을 얻었고 최고의 조각가 구츤 보글럼이 합류함으로써 돌이 쪼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미켈란젤로가 큰 화강암 덩이를 쪼아 나중에 '바티칸 피에타'로 명명된 성모와 예수의 조상(彫像)을 끄집어낸 것과 비슷하다. 1927년부터 1941년 사이에 6년 6개월이란 시간이 소요됐다. 거대한 힘을 지닌 오늘의 미국을 만든 데는 인디언들의 혜안이 빚은 큰 바위 얼굴의 공덕이 여러모로 작용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큰 바위 얼굴은 미국사람들의 가슴에 울림을 주는 무언의 멘토이다.
'주홍 글씨'란 소설로 유명한 나다니엘 호손은 큰 바위 얼굴이 이곳에 새겨지기 100년 전에 '큰 바위 얼굴'(The great stone face)이란 소설을 쓴 적이 있다.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는 인디언들의 얘기를 받아 적은 것이다.
"이 골짜기에 바위 얼굴을 닮은 운명의 아기가 태어난다. 그 아이는 어머니로부터 인디언들이 곧잘 자녀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큰 바위 얼굴에 대한 얘기를 듣고 자란다. 아이는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을 만나 보는 것을 평생의 소원으로 삼는다. 어느 날 '황금을 긁어모은다'는 이름을 가진 게더 골드(Gather gold)란 사람이 이 마을을 찾아오고, 또 '피와 천둥의 노인'(Old blood and thunder)이란 장군이 찾아온다. 세월이 상당히 흐른 어느 날은 '늙은 바위 얼굴'(Old stoney phiz)로 알려진 유명한 정치가도 마을에 들르지만 소설의 주인공인 어니스트의 눈에는 그들이 큰 바위 얼굴과 닮은 진정한 현자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어느 황혼녘에 지혜가 가득한 시인이 어느새 백발이 성성한 어니스트를 찾아온다. 어니스트는 자기 집 문 앞에 앉아 시인의 시집을 읽고 있었다. 그 시인이 바로 바위 얼굴을 닮았을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단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니스트를 찾아온 시인은 "여태까지 겉과 속이 다른 거짓 시만 써왔다"고 털어놓는다. 어니스트 역시 황혼의 햇살 아래 서 있는 시인의 모습이 바위 얼굴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얼굴의 주인공은 장엄하면서도 인자한 모습을 지닌 바로 어니스트 자신이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바위 얼굴의 현자가 곧 나타나리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동양의 조그마한 나라의 대통령이 태어난 하의도란 섬에 가면 큰 바위 얼굴이 있다. 그 바위는 사람의 옆 얼굴과 너무나 흡사하다. 붉게 물든 놀을 바라볼 때 그 바위 얼굴은 역광 속에서 더욱 선명하고 찬란하다. 이 동네에도 어니스트처럼 현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소년이 살고 있을지 모른다. 이제 겨우 '늙은 바위 얼굴'을 한 지팡이 짚은 노인이 지나갔을 뿐이다. 소년의 생각은 점점 더 깊어만 간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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