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만어] 호랑이와 이리

입력 2013-12-17 07:58:19

요즘 북한의 2인자 장성택 처형 소식이 단연 최고의 화제다. 왕조시대에나 있을 법한 처참한 권력투쟁이 오늘날에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 중국 왕조시대에도 '2인자 숙청'은 흔히 있어왔다. 흥미로운 점은 '2인자 숙청'은 왕조의 쇠퇴기에 자주 일어났다는 것이다. 북한은 3대째 세습한 왕조국가이기에 과거 중국의 사례와 비교해 살펴봐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1799년 청의 7대 황제 가경제는 태상황인 아버지 건륭제가 죽은 지 보름 만에 총리 격인 수석군기대신 화신(和申)을 전격 체포해 자결케 했다. 화신은 건륭제의 사돈이면서 그의 비호 아래 조정을 쥐락펴락해온 탐욕스러운 2인자였다. 가경제가 화신을 단죄하면서 발표한 죄목은 무려 20가지. 자금성에서 함부로 말이나 가마를 탄 죄, 건륭제의 병환 시 아무렇게나 행동한 죄, 가경제가 황자였을 때 달려와 황태자 내정 사실을 알린 죄 등등. 죄목만 봐도 2인자 제거의 전형적인 수법임을 알 수 있다. 화신 숙청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강희제'옹정제'건륭제 3대에 걸친 태평성대가 끝나고 청의 국운이 내리막으로 치닫던 시점이었다. 가경제는 재위 내내 백련교도의 난, 천리의 난 등 반란에 시달렸고, 이때부터 청나라는 멸망의 길에 접어든다.

'장성택 숙청 사건'과 가장 비슷한 사례는 후한 말기 환제(桓帝) 때의 대장군 양기(梁冀) 숙청 사건이다. 양기는 젊을 때 불한당이었으나 누이가 황후가 되면서 조정의 실권을 잡았다. 양기에 의해 15세 때 황위에 추대된 환제는 양기의 전횡을 보고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28세의 황제는 양기의 감시를 피해 변소에서 한 환관에게 양기 토멸을 요청했고, 이에 다섯 환관이 뭉쳐 양기 부부를 자살케 했다. 이로 인해 양기와 관련 있는 대신 수십 명이 죽임을 당했고 관직에서 쫓겨난 자가 300여 명에 이르러 조정이 텅 빌 정도였다. 다섯 환관은 이 공로로 제후에 올라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면서 공포의 '환관 정치'가 시작됐다. 흉포한 호랑이 한 마리를 없애고 나니 다섯 마리의 이리 떼가 나타나 세상을 더 어지럽힌 셈이다. 후한은 그로부터 61년 후 멸망한다.

역사적으로 왕조시대에 호랑이 같은 2인자가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정치'국가 시스템이 비정상적이었음을 의미한다. 백성들이 굶주리고 고통받을 때에 벌어진, 잔혹한 권력투쟁은 결국에는 멸망으로 이어짐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북한의 김씨 왕조도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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