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재의 은퇴일기] 시(詩)가 좋다

입력 2013-12-14 08:00:00

여행을 떠날 때면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시집입니다. 여러 명이 밤이라도 보낼 요량이면 시집을 들고 가서 낭독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이들도 한 편 두 편 시를 읽어가노라면 어느덧 목소리는 촉촉해져 있습니다.

요즈음 들어 시가 점점 더 좋아집니다. 긴 글을 읽으면 눈이 피곤해서 짧은 시를 찾기도 하지만 시가 주는 깊이 때문입니다. 시 한 줄이 소설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네고, 시 한 줄이 두꺼운 힐링서적보다 더 많은 위로를 줍니다.

고은 시인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시는 절정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폐허에서 꽃을 피운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시는 힘들 때나 어려울 때 쓰여 지는 것이고, 이를 읽는 사람 역시 상처받고 외로울 때 시로서 큰 위안을 얻는 가 봅니다.

세월이 갈수록 시가 내게로 오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향기에 목마를 때나 따뜻함이 그리울 때 혹은 눈물이 날 때 시를 가까이하게 됩니다. 시로 인해 마음은 젖어 잔잔해지지요. 또 긴 호흡과 깊은 지혜를 얻습니다.

시의 미덕은 아무래도 함축일 것입니다. 긴 글을 줄이고 줄여 가장 맑은 한 방울을 건져내는 힘겨운 노동의 결과가 바로 시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적합하고 적확한 단어를 골라내야 하는 피를 말리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뼈다귀만 있는 간결한 글. 이것이 바로 시라고 생각합니다. 힘겨울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 고통에서 나온 것이기에 우리는 큰 감동을 얻고 전율합니다.

흔히들 시는 어렵다고 합니다. 익숙해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물론 잘못된 교육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시는 분석하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고 느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내 마음을 사로잡는 시 한 편 정도는 외우고 싶습니다. 가만히 읊노라면 외로움도 서러움도 상처도 모두 치유되는 느낌입니다. 특히 한 해를 정리하는 연말에 시로 위로받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모임이 많아지는 12월입니다.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드는 송년회도 좋지만 머리를 맞대며 시를 낭독하는 그런 오붓한 모임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시가 있는 송년 모임, 어떻습니까.

김순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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