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구조적 문제 직면…더 무서워" 권혁세 前금감원장

입력 2013-12-13 11:32:49

"보이지 않는 위기, 위기같지 않는 위기가 더 위험합니다"

12일 매일신문사를 찾은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은 경북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80년 행정고시(23회)를 통해 공직에 발을 들였으며 공직생활 대부분을 재무부(현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등에서 보낸 경제통이다. 권 전 원장은 올 3월 금융감독원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여전히 왕성한 대외 활동을 펼치고 있다.

▶33년 경제 관료 경험을 살려 최근 경제 에세이집 '성공하는 경제'를 출간했다. 책을 펴낸 계기는?

=지금 우리 경제는 중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고성장에서 저성장으로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이런 시기에 국민들이 경제를 모르면 가계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다. 국민들이 경제를 알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책을 집필했다.

▶책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시장의 반응은 좋은 편이다. 경제 관련 도서임에도 불구하고 한달 남짓한 기간 동안 5천권 정도가 판매됐다. 책에는 현 정부가 성공적인 경제정책을 펴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오해를 하고 있다.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한 내용이 일부 실려 있는데 마치 정부를 겨냥해 책을 쓴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 경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한국 경제는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 부동산 침체, 양극화 심화, 청년 실업과 가계 부채 문제 모두 저성장, 고령화라는 구조적인 요인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경기 침체가 단순히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도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IMF 사태처럼 실체가 있는 위기보다 잘 드러나지 않은 구조적인 문제가 더 무섭다. 보이지 않는 위기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해법은?

=경제 운영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수출과 달리 내수 경기는 극심하게 침체돼 있다. 내수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성장은 어렵다. 하지만 정부는 대기업, 수출, 제조업, 하드웨어 산업 위주의 경제 운영을 고집하고 있다. 이런 경제 운영으로는 박근혜 정부가 목표로 하는 고용률 70%를 달성할 수 없다.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내수와 서비스업, 소프트웨어 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현 정부가 추구하는 핵심 경제정책인 창조경제를 정의한다면?

=창조경제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기존 산업과 새로운 산업과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창조경제다. 주변을 둘러보면 창조경제의 전형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유기적인 협조 체제를 구축한 뒤 지방의 자원을 스토리텔링화 하는 것이 대표적인 창조경제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창조경제를 가로 막는 걸림돌은 무엇인가?

=경제가 한단계 더 도약하려면 경제 요인들도 한단계 더 발전해야 한다. 구시대적 요인으로는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없다. 창조경제를 실현하고 경제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후진적 정치문화, 관료주의, 연공서열 등의 요인들을 제거해야 한다. 이러한 요인들이 상존하고 있으면 창조경제는 요원해진다.

▶출범 1년을 앞둔 박근혜 정부를 평가한다면?

=각종 통계를 보면 현 정부의 첫해 성과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앞으로다. 정권 초기 중요 정책 과제는 닻을 올려야 하지만 중요한 법안들이 국회에 발목이 잡혀있다. 또 미국의 양적완화 출구 전략이 시작되면 한국 경제는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많다. 출구 전략이 시행되면 가장 먼저 수출이 위축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수 육성 정책을 내놔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공기업 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다.

=현재 공기업 부채가 국가 부채보다 많다. 내년에는 국가 부채에 공기업 부채를 포함시키도록 돼 있다. 공기업 부채를 포함하면 국가 부채는 GDP 대비 70%를 넘어간다. 이는 국가 재정 건전성에 대한 불신을 심어 줄 수 있어 정부가 공기업 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다. 또 공기업 부채뿐 아니라 가계 부채, 지방정부 부채도 문제다. 정부가 부채관리위원회를 만들어 부채를 총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세제 개혁과 공기업 개혁을 못하면 대한민국의 위상이 큰 타격을 받는다.

▶대구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출마 의사는 있는가?

=일체 정치에 대해 말을 한 적이 없는데 본의 아니게 대구시장 후보로 오르내리고 있다. 지금까지 출마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대구시장에 출마하려면 지역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확신과 열정, 철학,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 아직까지 나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중앙정부 경제 관료로 오랫동안 재직을 하면서 그동안 대구 경제 발전을 도와주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은 갖고 있다.

▶대구시장 후보가 갖추어야 할 자질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대구경제를 회생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확실한 청사진을 가진 사람이 대구시장으로 나서야 한다. 또 대구의 에너지를 집결시킬 수 있는 리더십과 중앙정부와의 네트워크도 대구경제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 필요하다. 이런 조건을 두루 갖춘 사람이 대구시장 후보로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정리=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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