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가스통 드 푸아는 알렉산더 대왕,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남이처럼 20대에 천재적인 군사 재능을 발휘했다. 1489년 오늘 태어난 그는 불과 21세의 나이에 외삼촌인 국왕 루이 12세에 의해 이탈리아 원정에 나선 프랑스군의 총사령관으로 발탁됐다. 이전부터 여러 차례 전투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쳤던 그는 루이 12세의 선택을 최상의 결과로 바꾸어 놓았다.
프랑스와 스페인 등은 지중해를 지배하려고 통일을 이루지 못한 이탈리아를 13세기부터 노리며 서로 다퉜다. 가스통 드 푸아는 1511년 11월 이탈리아에 도착, 스페인-교황 율리오 2세 등의 신성동맹군을 맞아 이탈리아 북부를 휩쓸었다. 그의 용맹과 열정은 침체에 빠졌던 프랑스군의 사기를 드높였다. 상대 전략을 역이용하고 기민한 기동력을 발휘한 그에게 어느 사이 '이탈리아의 번개'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의 군대는 이듬해 4월에 로마 인근의 라벤나로 진격했다. 신성동맹군은 보병 위주의 전술로 맞섰으나 그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대규모 포격전을 전개, 승리했다. 라벤나 전투는 구시대와 신시대의 군사 전략이 전환점을 이루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그는 전투 막바지에 적군의 창에 찔려 사망했다. 그가 사망한 후 프랑스군은 다시 약세에 접어들었는데 그가 죽지 않았더라면 역사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을 것이라고 역사가들은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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