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재의 은퇴일기] 어색해진 수성못

입력 2013-12-07 07:24:58

올해로 50년째입니다. 수성못 주변을 맴돌며 지내고 있는지 그렇게 되었습니다. 수성못과 더불어 나이를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수성못의 기억은 언제나 명절과 함께 시작합니다. 때때옷을 차려입고 커다란 못을 한 바퀴 돌아야 명절이 끝났습니다. 겨울에는 꽁꽁 언 수성못에서 스케이트를 타야 겨울방학이 지나갔고 여름에는 유람선을 타야 제 맛이었습니다.

젊음 또한 못과 더불어 부풀었지요. 허름한 못 가 식당에서 막걸리 장단에 맞춰 청춘을 노래했고, 보트를 저으며 사랑을 시작했습니다. 사랑의 기쁨과 아픔을 알게 된 곳도 수성못이었지요.

어느 날부터 수성못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래된 수양버들이 뽑혀 나가면서 작은 벚나무가 심겨졌고 운동기구들이 떡 하니 자리 잡았습니다. 멋진 레스토랑도 생겨났지요.

올해는 아예 대대적인 공사를 한다며 한동안 칸막이를 둘러놓았습니다. 65억원을 들여 생태공원으로 만든다고 했지요. 완공했다기에 한 번 천천히 걸어보았습니다.

예전의 수성못이 아니었습니다. 늙지 않으려고 온갖 시술을 한 중년의 여인처럼 어색하고 개성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요. 한복을 입은 아주머니들이 벌겋게 취해 춤추던 작은 섬은 단정하게 정리돼 있었고 수성못 주변 곳곳에는 청포를 비롯해 다양한 식물들이 여기저기 심어져 있었습니다. 수상 무대도 보입니다.

멋지고 좋다는 것들은 다 모여 있었습니다. 한강에서 보았던 가림막과 일산 호수공원에 있는 생태공원 그리고 파주 헤이리 마을에서 본 듯한 다리구조물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더 이상 호젓하고 쓸쓸한 수성못의 풍광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자연스러움도 여백도 사라졌습니다. 그저 예쁜 것들로만 빼곡히 채워진 매력도 개성도 없는 얼굴입니다.

피천득은 수필 '인연'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첫사랑 아사코를 세 번 만났는데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다고 했지요. 세월이 지난 후 만난 첫사랑은 추억 속의 이미지가 아니라 시들어버린 백합 같았기 때문이었노라고 했습니다.

세월과 함께 수성못도 변했습니다. 역시 세 번째는 만나지 말았어야 좋았나 봅니다.

김순재 객원기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