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글탱글한 꼬리살 버터에 찍어…日 방사능 공포도 날려버린 별미
인천공항을 출발해 미국 시애틀로 향하는 여객기의 항적이 일본 후쿠시마 연안을 지나 북미 서부 해안으로 흘러가는 쿠로시오 해류와 거의 일치한다는 기내 운항 정보를 보면서 '후쿠시마원전 방사능 오염 해수가 북미의 수산 유통 거점인 시애틀에도 나쁜 영향은 주지 않았을까'라는 우려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2년 전만 해도 후쿠시마원전에서 흘러나온 방사능 오염수가 쿠로시오 해류를 따라 북태평양을 횡단해 시애틀 앞바다로 흘러간다는 예측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애틀 현지에 도착하면서 그 생각은 완전히 기우로 끝났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은 시애틀 관광산업의 견인차
이달 2일 찾아간 시애틀 수산시장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은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상인들은 다양한 해산물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시끌벅적하게 거래했고, 시애틀의 문예인들도 예전처럼 곳곳에서 거리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파이크 플레이스 수산시장은 세계적인 명성을 지켜가며 활기가 넘쳐 났다.
"일본 원전 방사능요? 여기서는 정말 웃기는 얘기예요." 현지 교민인 커피전문점 바리스타 송영인(32) 씨는 "시애틀에서는 북미산 수산물의 방사능 오염을 의심하는 사람이 되레 사람들의 우스갯거리가 되고 만다"고 했다. 일본 원전 영향으로 바닥까지 추락한 우리나라 수산업계와는 분위기가 딴판이다.
시애틀에는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사와 초국적 IT 기업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있다. 세계적인 커피 체인점인 스타벅스의 본점이 있는 파이크 플레이스 수산시장은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산 수산물 유통의 거점 도시이기도 하다. 시애틀 도심에 있는 이 수산시장은 연간 관광객을 1천만 명이나 불러들이며 시애틀 관광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1907년 처음 문을 연 이래 단 하루도 쉬어 본 날이 없습니다. 그 역사가 10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지요." 송 씨의 안내에 따라 둘러본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은 이면도로에 이르기까지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인파가 붐볐다.
이곳은 바닷가재(로브스터)와 연어, 킹크랩, 조개 등 북태평양과 북대서양 연안에서 잡히는 수산물 유통의 중심이자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수산물 수출 거점이다. 덕분에 아시아 각국의 수산물 바이어들이 줄지어 찾는다. 매일 어물전에서 펼쳐지는 '연어 열 마리 몬태나로!'라는 생선 던지기 쇼는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시장 곳곳마다 거리공연과 행위예술, 거리 전시 등의 시애틀 문예인들의 자발적인 문화예술 활동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생선 비린내 나는 어시장을 훌륭한 문화의 거리로 변신시킨 이들의 창조적인 문예 활동은 커피 위에 그림을 그리는 '라떼 아트'로 이어졌다. 덕분에 시애틀은 전 세계 라떼 아트의 원조가 됐다. 단순히 수산물만 파는 서울 노량진수산시장과 부산 자갈치시장과는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시애틀 도시 품격 높이는 북미산 바닷가재 꼬리구이
시애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는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잡히는 바닷가재가 모두 집결한다. 바닷가재를 비롯해 시장에 넘쳐나는 킹크랩과 조개, 연어, 각종 생선 등 풍부한 해산물은 시애틀 사람들의 식습관도 바꿨다. 시애틀 사람들은 육식보다 생선을 더 많이 먹는다.
이곳에서 유통되는 바닷가재는 꼬리 부분만 잘라 냉동 상태로 유통된다. 그래서 바닷가재를 통째로 요리하는 다른 지역과 달리 레스토랑에서도 꼬리 부분만 재료로 이용하고 있다.
"시애틀 사람들은 바닷가재를 통째로 요리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손에 음식이 묻는 것을 아주 싫어하거든요." 시애틀 타워 옆 요트 계류장 페어뷰 거리에 있는 다니엘스 브로일러 레스토랑의 매니저 마이크 힐러(55) 씨가 꼬리만 유통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식재료로 가치가 높은 부분만 포장 유통하는 것은 유통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입니다. 껍질이 딱딱한 바닷가재 요리를 손으로 뜯지 않고 나이프와 포크만으로도 즐길 수 있어 품격 높은 식사 분위기가 가능하다는 점도 큰 이유입니다."
마이크 씨는 "바닷가재 꼬리 살은 전 세계 어디서든지 미식가들을 열광케 하는 재료"라며 "다니엘스 레스토랑에서는 화이트와인을 끓여 바닷가재 살코기를 익혀 내 맛이 특별하다"고 설명했다.
주문을 하자 하얀 드레스셔츠를 입은 중년의 리차드 맥클렛(54)씨가 소고기를 데리야키 소스에 버무려 구운 스테이크 스트립스를 냈다. 이어 식탁으로 가져 온 바닷가재 구이는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리차드 씨는 "소금과 후추로 기본적인 간을 해 바닷가재 본연의 맛을 유지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탱글탱글한 바닷가재 꼬리 육질이 아삭거리며 환상적인 느낌을 냈다. 뜨겁게 데운 버터에 찍으니 바닷가재의 풍미가 훨씬 깊어진다. 입안에서 미끄러지는 듯한 식감도 새롭고 레몬즙을 짜서 뿌리니 더욱 상큼해진다. 후식으로는 스타벅스 커피를 낸다.
북미산 바닷가재가 시애틀에 들어오면 도시 품격을 높인다고 한다. 시애틀의 바닷가재 요리 레스토랑을 비롯해 일정 규모 이상을 갖춘 스테이크 전문 레스토랑도 비즈니스 캐주얼 이상의 차림을 해야만 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바지 차림으로도 돈만 있으면 뭐든지 먹을 수 있는 곳과는 거리가 멀다. 시애틀에는 레스토랑 입구에서 여성 종업원이 공항 출국장처럼 손님 복장을 점검하는 광경이 연출되는 곳이 적지 않다.
◆창조적 시애틀 상인정신은 지역경제 세계화의 길잡이
수산시장인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이 문을 열기 전, 이곳은 어부들이 부둣가에서 좌판을 벌여 놓고 생선을 직접 거래하던 작은 어물시장이었다. 대형 수산시장이 들어서던 초기에는 기존 중간상인들이 조직적으로 수산물 유통을 방해하는 등 숱한 역경과 시련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넓은 안목으로 수산물 시장을 세계로 넓히겠다는 목표를 놓치지 않으며 오늘의 수산전문시장을 만들었다. 시장 분위기도 전 세계 민족이 모여 사는 시애틀 특유의 다양한 전통문화와 어우러지면서 향토특산물 산업화와 시애틀의 관광산업을 이끌어 가는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커피 집산지가 아니면서도 스타벅스라는 초국적 커피 프랜차이즈가 탄생한 시애틀의 저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북미지역 바다에서 잡은 해산물은 어떻게 시애틀로 집하돼 세계 고급 수산물 유통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일까. 이는 시애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의 상인정신에서 비롯됐다.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가 흑인 중심의 재즈음악이 결합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면, 흑인보다 아시아 인종이 많이 거주하는 시애틀은 문화의 다양성을 중시하는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재화 우선의 미국식 자본주의에 노동과 정신적 가치를 무시하지 않는 아시아적 가치관이 잘 접목된 셈이다. 그래서 시애틀은 노동 조건과 가족생활이 가장 훌륭한 도시로 성장했다. 시애틀은 미국 내에서도 삶의 질이 가장 높은 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보다 숙련된 노동력이 몰리고, 건강한 상인정신을 창출해 내는 바탕이 잘 다져진 도시다.
바닷가재 요리가 사람들의 옷차림새를 단정하게 만드는 시애틀. 시애틀에는 한식, 일식, 동남아시아 음식은 물론이고 중남미, 유럽, 인도,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전통 민속음식점이 무려 2천200여 곳이나 있다. 이는 시애틀이 문화의 다양성을 중시하고 이질적인 타민족 문화를 얼마나 쉽게 받아들이는지를 방증한다. 시애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이 일본 방사능 오염 무풍지대가 된 것도 시애틀의 건강한 상인정신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미국 시애틀에서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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