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의 눈] 도동 측백나무숲 4개 동굴 "日 만행의 흔적"

입력 2013-12-05 14:10:01

보국대 차출 송문창 선생 증언

천연기념물 제1호 대구 도동 측백나무숲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중한 문화재다. 도동 측백나무숲은 조선 초 문신 서거정이 대구의 아름다운 풍경(달성 10경) 중 제6경인 북벽향림(北壁香林)에 꼽을 정도로 빼어난 풍경을 자랑했다. 하지만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한다. 바로 도동 측백나무숲이 있는 향산에 동굴이 뚫려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서서 걸어 들어갈 정도로 큰 동굴 4개는 누가, 언제 만들었을까?

이에 대해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7호 공산농요 예능보유자인 송문창(83) 선생은 "남포(다이너마이트)를 터트려 돌이 부서지면 일본군의 지시로 우리들은 지게에 그 돌을 싣고 하루 종일 날랐다"고 말했다. 송 선생은 당시 동굴을 뚫을 때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다. 그를 만나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들었다.

일제가 도동 측백나무숲에 동굴을 뚫을 때 선생의 나이는 15세였다고 한다. 어린 나이였지만 몸집이 컸던 탓에 일제가 조직한 보국대에 차출되었다는 것.

그는 "보국대는 아침 일찍 지게를 진 채 향산 앞에 집결했다. 그리고 동굴별로 10명씩 배치되어 작업을 했다. 먼저 정으로 향산 암벽에 구멍을 낸 뒤 다이너마이트를 그곳에 넣고 터트리면 보국대가 와서 지게로 부서진 돌덩어리를 져 날랐다" 고 했다. 그러면 일제는 도동 측백나무숲이 소중한 문화재라는 것을 몰랐을까? 역사적으로 보면 일제는 도동 측백나무숲의 가치를 알고도 만행을 저질렀다. 1934년 조선총독부는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호령'으로 도동 측백나무숲을 이미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상태였다. 그뿐 아니다. 당시 대구에 사는 일본인들은 대구를 처음 방문하는 일본인들에게 "측백나무숲을 본 적이 없다면 대구를 봤다고 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할 정도로 도동 측백나무숲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었다.

송 선생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군사시설을 만들기 위해 파괴했다.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어를 쓰도록 강요하며 우리의 소중한 민족문화를 말살했던 일본인들이 결국은 우리의 문화재까지 훼손했다"고 회고했다.

송 선생은 일제가 도동 측백나무숲을 훼손한 행위가 세월의 뒤안길에 묻힐까 걱정이다. 그는 "이제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도 자꾸 사라져 가고 있다. 지금도 동굴 생성 원인을 아는 사람이 드문데 세월이 조금 더 흐르면 잊힐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일본은 역사를 왜곡하고 안중근 의사를 범죄자라고 하는 등 망언을 일삼고 있다. 향산의 동굴도 이를 비통하게 여기는지 오늘도 입을 벌린 채 말이 없다.

글'사진 박태칠 시민기자 palgongsan72@hanmail.net

멘토'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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