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광장] 보고 싶다, 친구야

입력 2013-12-03 11:15:08

최근 삼사십 대들을 추억에 잠기게 하는 드라마가 인기다. 1994년 신촌의 하숙집을 배경으로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대학 신입생들을 중심으로 한 이 드라마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드라마 장면 곳곳에서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 볼 수가 있기에 인기다. 1994년 즈음에 대학을 다녔던 이들이라면 드라마에 등장하는 소품들과 당시 유행했던 노래들을 통해 '아. 그땐 그랬었지' 하는 감탄사와 함께 순식간에 20년 전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에피소드들 중에서 '정아, 정아' 하면서 급한 듯 동생을 불러놓고는 '불 꺼라. 오빠 잘 끼다' 하는 장면에서 필자는 이미 드라마 속 주인공이었다. 침대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 자려고 따뜻한 방바닥에 누워 불 끄는 게 귀찮아 내 이름을 애타게 불러대던 나의 오빠는 벌써 자녀 둘을 대학에 보내고 낼모레 오십을 바라보고 있다. 1994년 대학을 함께 다녔던 그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친구', 생각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말이다. 지금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당신은 진정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로 시작되는 시가 있었다. 학창 시절, 친한 친구 사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주고받았을 만큼 한창 유행했던 바로 그 시,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이다. 며칠 전 우연찮게 인터넷에서 이 시를 발견하고는 한동안 친구에 대한 그리움에 젖었던 기억이 있다.

최근의 인터넷 환경에서 보면 '친구'들이 넘쳐나고 있다. 한 지인은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300명이 넘으며, 100명이 넘는 카친(카카오스토리 친구)과 꾸준히 교류하면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틈만 나면 같이 술을 마시며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고,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에서 서로 '좋아요'를 누른다고 우리가 친구일까? 그렇다면 진정한 친구는 어떤 사람일까? 당신에게는 진정한 친구가 있는가?

친구에서 '친'(親)은 가까이서 보다는 뜻이고, '구'(舊)는 옛날 또는 오래라는 의미로, 친구(親舊)는 '가까이 오래 사귄 사람'을 말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진정한 친구를 '내 가슴 가장 깊은 곳에 들어와도 되는 사람'이라는 뜻의 아킵(Akib)이라 불렀으며, 그들에게 '친구'와 '행운'은 같은 의미였다. 살면서 진정한 친구 세 명만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라던 말이 그래서인가 싶다.

필자가 생각하는 진정한 '친구'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 주고, 그 모습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잘 보이려고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친구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 주고 인정한다. 오랜 친구를 만날 때면 아주 마음이 편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믿어 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일 것이다. 윈첼(Winchell)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등을 돌릴 때 내게 다가오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라고 하였다. 나의 어떠한 행동에 대해서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믿어 주고 항상 내 편이 되어 주는 사람. 그래서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 뒤를 걱정하지 않고 연락할 수 있으며, 그 도움을 빚이라 생각하지 않고 언제든 친구가 같은 상황이면 똑같이 해주었을 거란 믿음으로 진정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 애써 인사를 챙기지 않아도 늘 그 자리에서 묵묵히 나를 믿어 주고 응원해 주는 그런 사람이 진정한 친구일 것이다.

인간관계 전문가인 스티븐 코비 박사는 좋은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관계의 기술을 갈고 닦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철천지원수' 사이는 원래 가장 친한 친구들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상대를 믿고 의지했던 만큼 배신감도 훨씬 크기 때문에 한 번 꼬인 우정은 회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일상의 소소한 배려 속에 친구와의 우정을 쌓아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타국에 와서 가장 그리운 것은 한국의 음식이나 물건이 아니라 사람인 것 같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 바람이 부는 초겨울, 맘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와의 술 한 잔이 그리운 밤이다.

김미경/대가대 교수·호텔경영학과 mkagnes@cu.ac.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