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누구나 왼손엔 시를 품고 산다

입력 2013-12-03 07:24:18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헛되이 던진 돌멩이들/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오른다/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나희덕의 '천장호에서')

'콩밭 매는 아낙네야/베적삼이 흠뻑 젖는다/무슨 설움 그리 많아/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칠갑산'이란 노래다. '천장호'는 칠갑산 아래에 있는 예쁜 호수다. 사시사철이 아름다운 호수지만 특히 겨울 천장호는 아름답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 눈 덮인 칠갑산과 얼어붙은 천장호는 기막힌 풍경을 만든다.

그런데도 나희덕은 거기에서 슬픔을 발견했다.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얼어붙은 호수,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린 호수, 아무것도 품지 않고 제 서슬만이 빛나는 호수, 새떼 대신 메아리만 날아오르는 호수, '쩡 쩡'이란 시어에 그만 울컥했다. 아무리 돌멩이를 던져도 '쩡 쩡' 메아리만 울린다는 나희덕의 애달픔에 나도 목이 메었다.

10월은 바빴다. 11월은 더 바빴다. 수학능력시험 관련 업무, 독서 관련 학교활동 참관, 토론 동아리 캠프 및 어울마당, 책 쓰기 가족캠프, 대입적성교실(AAT고사) 운영, 예비 고3 토론면접교실 운영, 문예창작영재교육원 신입생 선발, 학교평가, 수업발표대회 참관, 전국 창의체험 페스티벌, 책 축제 준비. 내가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생각에 문득 쓸쓸했다.

현장에 있는 선생님들도 일에 끌려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나름대로 현장 선생님과의 만남에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내 마음과 그들의 마음이 어긋날 때는 곤혹스럽다. 학교 현장은 이따금 얼어붙은 천장호다. 끊임없이 호수를 향해 돌멩이를 던지는데도 호수는 '쩡 쩡' 메아리만 울릴 때가 많다. 최소한 돌멩이를 맞으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그 돌멩이를 주워 다시 던져야 할 텐데 그런 풍경은 발견하기 어렵고 메아리만 들린다.

그러다 우연히 내 책상 위에 놓인 아이들의 시 모음집을 읽었다. 다사고등학교에서 발간한 '누구나 왼손엔 시를 품고 산다'. 이런 풍경이 내가 사랑하는 천장호의 풍경이다. 아이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순수한 시를 읽는 것도 좋았지만 제목에 오랫동안 시선이 머물렀다. 왼손을 살짝 구부리고 손바닥을 바라보면 신기하게도 '시'란 글자가 보인다. 사람들은 그걸 잊고 살아간다. 우리 몸속에 '시'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요즘 아이들은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운율이니, 주제니, 소재니, 시어의 의미니, 표현법이니 하는 것들을 주워 삼키고 외우다 보니 시가 지닌 내면의 울림을 전혀 만나지 못한다. 그런 아이들이 '쩡 쩡'이라는 시어에 목이 멜 수 있을까? 물론 시인이 울컥하라고 '쩡 쩡'이라 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시는 세계를 자아화하는 가장 전형적인 방식이다. 지식을 외우는 것은 자아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화되는 것이다. 일종의 강요된 지식이다. 내가 시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느낌을 외우는 격이다. 그리고 그것을 '빌어먹을' 시험이라는 방식으로 확인한다. 그래야 한다는 현실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현재가 한없이 쓸쓸했다.

그랬구나. 내가 아무리 돌멩이를 던져도 '쩡 쩡' 메아리만 울리는 것은 천장호의 탓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아무것도 비추지 않고,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리고, 아무것도 품지 않고, 메아리만 날아오르는 것은 천장호를 얼어붙게 만든 겨울이라는 날씨 탓이기도 하겠구나. 천장호여, 아는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유일한 주체가 당신들뿐이란 것을. 그러니 당신들이 힘을 내야 하지 않겠는가?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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