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인물] 우국지사 민영환 선생

입력 2013-11-30 08:00:00

일제가 우리의 국권을 뺏기 위해 혈안이 돼 있던 1900년대 초 거의 대부분의 대신들은 친일로 넘어갔다. 그러나 민영환 선생만은 달랐다. 각종 판서와 영의정까지 지낸 그는 낙향해 있다가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비분강개해서 서울로 올라왔다. 원임 의정대신 조병세와 함께 굴욕적인 늑약 체결에 찬성한 매국노들을 비판하고 어전에 나가 늑약 폐기를 상소했다. 아울러 이완용 등 을사오적을 처형할 것도 요구했다.

하지만 우리 임금이 어디 힘이 있던가. 일제의 감시와 위협하에 허수아비에 불과하던 광무 황제 고종은 민영환 선생의 강단 있는 호소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선생은 오히려 일본 헌병에 의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11월 29일 석방된 선생은 이미 대세를 돌이키기 어렵다고 판단해 자결을 결심했다. 장렬하게 목숨을 끊는 것이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고 나라의 독립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 선생은 1905년 오늘 오전 6시쯤 2천만 동포와 각국 공사에게 보내는 유서 2통을 남기고 품고 있던 단도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당시 나이 45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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