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산업 1번지' 영천, 그린 넘어 달린다] ⑤말을 사랑하는 사람들<끝>

입력 2013-11-30 08:00:00

힐링 차원에서 골프 대신에 승마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영천에는 '영천' '별빛' '홀스' 등 승마동호회 3곳의 회원 50여 명이 승마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영천시민승마단도 2011년 창단돼 학생, 주부, 공무원 등 다양한 계층이 말을 탄다. 최근에는 한우 축사 옆에 마방을 마련한 뒤 말을 직접 사육하며 승마를 즐기는 농가도 예닐곱 가구나 된다. 대학생, 공무원, 축산농, 승마인 등 말을 통해 건강과 열정을 되찾은 사람들을 살펴본다.

◆"말이 좋아 승마로 전공 바꿀래요"-대학생 정주현 씨

대학생 정주현(21'대구시 수성구) 씨는 요즘 말을 타기 위해 새벽에 일어난다. 도시락을 싸 들고 캠퍼스 대신 승마장으로 향한다. 집 앞에서 오전 5시 30분에 출발하는 첫 버스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간다. 여기서 기차를 타고 경산 하양역까지 간 뒤 다시 영천 신녕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탄다. 신녕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뒤 걸어서 오전 7시 30분 쯤 연정리에 있는 휘명승마아카데미에 도착한다.

정 씨는 하루를 고스란히 승마장에서 보낸다. 오전, 오후 1회씩 말을 탄다. 오후 7시쯤 일과를 마치고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오후 9시쯤 된다. 올봄 이 승마장에서 말을 타기 시작한 뒤부터 똑같은 일상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교사를 꿈꾸며 지난해 4년제 대학 특수교육과 2학년 과정까지 마쳤다. 특수교육과 재학 당시 재활승마에 대한 관심으로 말을 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서워 말 등에 오르기도 힘들었지만 차츰 재미를 느끼게 됐다. 올해부터는 대학생활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승마에 도전했다. 졸업 후 진로가 뚜렷한 대학생활을 접는다는 얘기에 부모의 반대도 심했다. 하지만 승마를 매우 좋아해 전공을 바꾸기로 결심한 뒤 부모의 승낙을 받았다.

처음에는 대구의 집에서 가까운 승마장을 찾아 말을 탔다. 이후 승마를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영천시 신녕면에 있는 휘명승마아카데미로 발길을 바꿨다. 이 승마장에서는 포항대 말산업레저스포츠과 이철호 교수와 학생들이 합숙을 하며 승마실습을 하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 대학생들과 함께 말을 탄다. 평보와 속보는 물론 구보까지 가능한 실력을 갖췄다. 내년에 이 대학에 입학할 예정이며 승마실습을 미리 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재활승마지도사와 승마지도사 자격증 획득을 위한 필기시험에 벌써 합격했다. 실기시험에 대비해 마장마술 연습도 한창이다. 승마 실습 중 두어 번 낙마해 얼굴에 찰과상을 입었지만 꿈을 실현하기 위해 씩씩하게 말을 계속 탄다. 스스로 선택한 길인 만큼 힘들어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승마에 열정을 쏟고 있다.

그는 대학에 다시 입학해 승마를 전공한 뒤 한국마사회에 입사할 계획이다. 승마에 대한 공부를 계속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꿈도 꾸고 있다.

◆"말을 탄 뒤 매일 신바람 나게 일하지요"-공무원 조달호 씨

조달호(53) 영천시 농축산과장은 승마에 꽂힌 사람이다. 지난해 사무관으로 승진해 농축산과장으로 부임한 뒤부터 말을 타기 시작했다. 벌써 20개월째다. 구보는 물론 장애물 넘기도 구사할 정도로 승마 실력을 갖췄다. 올해 초에는 아예 포항대 말산업레저스포츠과에 입학해 체계적으로 승마 이론을 배우며 실습에 열중하고 있다. 낮에는 공무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대학생으로 말을 탄다. 아들뻘 되는 20대 동료 학생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낸다. 처음 말을 타는 대학생들에게 한 수 가르쳐 주기도 한다.

조 과장은 지난해 자비로 영천 승마인들과 일본 규슈의 승마장, 마유 화장품 제조사, 말 목장 등을 둘러봤다. 올해에는 몽골을 방문해 말 사육 현황을 점검하며 국내 도입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는 2009년 영천경마공원 유치 제안서 작성에 참여하면서 말을 탈 필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당시 말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됐지만 이론만으로는 한계를 절감했다. 말을 타기 시작한 후 지난해 '영천시 말산업 육성 5개년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5개년 종합계획에는 말산업 기반 조성, 경쟁력 강화, 연구개발 지원, 승마관광 활성화 방안 등 다양한 내용을 담았다. 이 가운데 '거점 승용마 조련센터 건립'이 올해 초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영천시의 말산업 경쟁력 강화에 한몫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는 말을 탄 뒤 위장병이 다 나아 매우 좋다고 했다. 또 이전에 허리 디스크로 수술을 했지만 도지지 않고 자연적으로 치유됐단다. 신체적으로 건강과 활력을 되찾으면서 일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사무실에서 항상 웃으면서 일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1주일에 한 번 말을 탈 경우 일의 능률이 10% 향상된다고 한다. 영천시 전 직원이 1주일에 2, 3번 말을 탈 경우 긍정적인 에너지로 시정 능률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최근 17년 된 중고 승용차를 새 차로 바꾸는 대신에 말을 1마리 구입했다. 말을 더 열심히 탄 뒤 내년쯤에는 승마지도사, 재활승마지도사 등 자격증 획득에 도전할 계획이다.

그는 "승마를 시작한 뒤 말산업 육성 계획 마련, 건강 회복, 일의 능률 향상 등 1석 3조의 효과를 거뒀다"며 "승마동호회 활성화를 통해 승마 인구 저변 확대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우 축사 옆에서 말도 키우지요"-축산농 김병학 씨

영천시 청통면 호당리에서 한우 200여 마리를 사육하는 김병학(53) 씨는 축사 옆에 마방 2칸과 작은 방목장도 갖추고 있다.

김 씨는 마방에서 말을 직접 키우며 틈날 때마다 승마를 즐긴다. 작은 방목장에서는 말이 언제나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방목장에서 지낸 말이라 순하고 튼튼하다.

최근 소값이 내리는 바람에 말 2마리 중 1마리를 팔아치웠다. 말 2마리를 사육하는 데 한 달에 사료와 건초 비용이 50여만원 들어 부담을 줄였다.

김 씨는 4년 전 당뇨병 판정을 받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 승마를 시작했다. 당시 500여만원을 들여 경주퇴역말(더러브렛)을 구입했다. 안장, 헬멧, 부츠, 승마복 등을 따로 마련한 뒤 틈날 때마다 말을 탔다. 인근 강둑이나 마을 뒷산으로 외승을 자주 나가는 편이다.

소 사료를 준 뒤 남는 시간에 운동 삼아 승마를 즐기면서 혈당 수치도 떨어져 정상을 되찾았다.

그는 승마가 무엇보다도 정신 건강에 좋다고 말한다. 승마를 시작하면서 이전까지 즐기던 골프를 그만뒀다. 골프장을 찾을 때마다 잘 쳐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되레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골프 대신에 말과 교감할 수 있는 승마로 자신감도 갖게 됐다.

현재 키우는 말이 강인해 이름도 '돌쇠'로 지었다. 그는 돌쇠를 몰고 지난 6월 전남 신안군 임자도에서 열린 제6회 국민생활체육 전국 해변지구력승마대회 20㎞ 부문에서 1위를 했다. 지난해에는 충북 충주 남한강변 승마길에서 열린 제11회 국민생활체육회장기 전국 지구력승마대회 10㎞ 부문에서 2위를 차지했다.

승마동호회 '별빛클럽'에 소속된 그는 영천 승마연합회원들과 함께 칠포를 찾아 해변 승마를 즐기기도 한다. 직접 키우며 조련시킨 말을 타고 해변을 달리다 보면 어느새 일상의 스트레스가 말끔히 사라진다.

그는 말을 애완동물처럼 키운다. 사람과 체온이 비슷한 말을 안고 있으면 푸근함을 느낄 수 있단다. 나중에 아담한 전원주택을 짓고 정원에서 미니홀스(작은 말)를 키우며 평화롭게 사는 게 꿈이라고 한다.

◆"사람과 말이 함께 자연을 즐기지요"-승마인 이재철 씨

"운주산승마장의 씨수말 2세가 영천에서 처음으로 태어났어요."

영천시 완산동에서 승마장 '영천승마클럽'을 운영하는 이재철(56) 씨의 마방에 지난 6월 우수한 혈통의 망아지가 태어났다. 작년 8월 운주산승마장의 씨수말인 웜블러드(승용마)와 이 씨의 경주퇴역말 더러브렛의 자연교배를 통해 영천에서 처음으로 중종마(무거운 말)가 생산된 셈이다. 운주산승마장의 씨수말은 전 국가대표 승마선수 전상용 씨가 장애물 경주 때 탄 뒤 기증한 말이다.

이 씨는 최근 망아지를 국산마로 등록했다. 망아지는 실외승마장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늘씬한 몸매를 자랑한다. 몸집은 웜블러드를 닮아 더러브렛보다 훨씬 큰 편이다. 방목을 자주 해 망아지의 성격도 순하다. 점프를 잘해 향후 장애물 경주용 말로 조련시킬 계획이다.

이 씨는 10여 년 전 승마를 시작하기 전에는 골프 마니아였다. 싱글 수준의 골프 실력을 자랑하며 그린을 자주 찾았지만 돈내기에 싫증이 났다. 우연히 말을 탄 뒤 골프장과 멀어졌다. 말을 타며 스트레스를 풀고 운동도 할 수 있어 승마장을 자주 찾았다. 무엇보다 몸이 좋아지는 것을 느낀 뒤 승마에 빠져들었다. 들판이나 강변을 따라 외승을 자주 나가는 편이다. 승마를 통해 사람과 말이 함께 운동하고 자연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말이 좋아 2년 전에는 아예 승마장을 차렸다. 오전에 부동산 관련 일을 한 뒤 오후에는 승마장을 관리한다. 부지 6천여㎡의 승마장에는 마사(마방 9칸), 원형마장, 실외승마장, 사무실 등을 갖췄다. 사무실에서는 말 안장, 승마복, 부츠, 헬멧, 고삐 등 승마용품을 판매한다. 들판에 자리한 실외승마장에는 감나무, 배롱나무, 주목 등을 심어 자연 속에서 말을 탈 수 있도록 했다. 늦가을에 승마장을 찾으면 주황색으로 익어가는 감을 구경할 수 있다. 실외승마장 가장자리에는 개망초꽃이 활짝 펴 시골 들녘에 온 느낌을 준다. 원형마장에 비가림 시설을 갖추고 실외승마장에는 목책을 두를 예정이다.

경북농민사관학교와 영천시의 '말산업 전문인력 양성과정'을 이수한 이 씨는 지난해 승마지도사 자격증을 획득했으며 올해에는 말 조련사 자격증에 도전하고 있다. 말발굽을 깎아내고 편자를 교체하는 장제도 손수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

이 씨는 "말과 함께 자연을 즐기며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승마를 계속 하겠다"며 "앞으로 자마 회원을 늘려 승마 인구 저변 확대에 한몫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끝〉

글'사진 영천'민병곤기자 min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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