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通] 조류생태환경연구소 박희천 소장

입력 2013-11-30 08:00:00

부화시켜 키운 두루미 국내 첫 방사…'고향' 낙동강 습지에 정착할지

'두루미 아빠'로 불리는 박희천 경북대 조류생태환경연구소장이 올해 부화해 자란 두루미와 스킨십을 나누고 있다. 두루미 종 복원 및 텃새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박 소장은 연구소에서 키운 두루미를 내년에 낙동강습지에 방사할 예정이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소년은 나비를 좋아했다. 작은 몸짓이 예뻐 틈만 나면 나비를 찾아 들로 산으로 쏘다녔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걸작 스릴러 영화 '컬렉터'(The Collector'1965년)의 주인공처럼 나비 수집은 그의 유일한 취미였다.

세월이 흘러 소년은 이제 환갑을 훌쩍 넘겼다. 30년 넘게 지켜온 대학 강단도 후배에게 물려줬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나비에 푹 빠져 있다. 아니, 언젠가는 그 스스로 '나비'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멸종 위기에 놓인 두루미들이 그의 노력으로 지구의 품에서 다시 번성한다면 먼 훗날 '나비 효과'의 주인공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두루미 아빠' 박희천(65) 경북대 생물학과 명예교수를 만났다.

◆내년 여름 국내 최초 두루미 방사

지난 2월 정년퇴임한 그의 사무실은 경북대 '글로벌 플라자'에 있는 (사)조류생태환경연구소이다. 그가 2005년 설립, 8년째 소장을 맡아오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가 사무실에 있는 날은 거의 없다. 구미에 있는 연구소 사육장(34만495㎡)에 있는 경우가 많지만 멀리 강원도까지 전국을 누비곤 한다. 그의 표현대로 "벌여놓은 일이 많은 탓"이다. "낙동강 해평습지의 재두루미, 안동의 혹고니'먹황새 번식 프로젝트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동해안에서 다른 '그림'을 그려 보고 있어요. 은퇴도 했는데 쉴 틈이 별로 없네요. 허허."

구미시 해평면에 있는 사육장에는 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2호), 재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3호) 등 40여 마리가 연구원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두루미류 가운데 덩치는 두루미가 가장 크고 재두루미, 흑두루미 순으로 작지만 야생 개체수는 반대여서 흑두루미 1만2천 마리, 재두루미 5천600마리, 두루미 2천300마리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5마리 정도는 내년 여름쯤 낙동강 습지의 대자연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두루미를 자연에 방사하는 시도는 국내에서 처음이다. "두루미 가운데 10마리는 연구소에서 부화된 것들이어서 낙동강변에 정착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일부 두루미들은 날아가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북한으로 가는 것도 즐거운 상상입니다. 평화의 가교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죠. 물론 목에 위성추적장치는 달아야겠지만."

낙동강 습지는 철새들이 시베리아 등지에서 일본으로 월동하러 가는 길에 들르는 중간 기착지이다. 낙동강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강이어서 남북을 오가는 철새들의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다. 방사한 두루미가 철새의 본능을 따라 날아가지는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해평에 매학정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조선 중종 때 명필가로 이름을 날린 황기로(黃耆老) 선생의 유적지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의 유래가 재미있습니다. 매화나무를 심고 학(鶴'두루미)을 길렀다고 해서 '매학정'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희도 두루미를 방사하면 이곳에 살 터이고, 때가 되면 철새 두루미들이 합류해서 자연스레 월동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박 교수가 두루미 증식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2004년부터다. 재두루미 40여 마리가 1998년 3월 낙동강변에서 독극물이 든 볍씨를 먹고 폐사했던 사건이 직접적 계기였다.

"당시 죽은 재두루미 가운데 일부는 일본에서 채워준 인식표를 달고 있었습니다. 이웃나라에서 온갖 정성을 다해 돌본 녀석이 우리나라에 와서 며칠 만에 죽은 국제적 망신거리였죠. 이래서 우리가 선진국이라 할 수 있겠는가라는 자괴감이 들었고,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내년 9월에는 강원도 평창에서 생물다양성협약 제12차 당사국총회가 열리는데 과연 우리가 생물다양성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곤충 전공 학자에서 새 전문가로

박 교수는 '새 박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96년 금호강 하류 철새 도래지역의 조류 분포에 관한 연구를 시작으로 2000년 대구 범어배수지 철새 피해 대책 조사연구, 2001년 송전선로로 인한 조류 이동의 영향 및 대책에 대한 조사용역, 2002년 두루미 보호에 대한 국제심포지엄 개최 용역, 2003년 낙동강 두루미류 월동지 복원을 위한 인공사육기술 개발과 서식지 관리 연구 등을 진행했다. 박 교수는 2009년 4월에는 경남 창녕군 따오기복원센터에서 중국 시성 양시엔시가 기증한 따오기(천연기념물 198호)가 낳은 알을 인공부화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조류(鳥類)를 전공한 것은 아니다. 경북대 석사'박사 학위 논문의 주제는 '곤충'이었다. 그는 새에 천착하게 된 데 대해 1994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진 1년간의 연수가 전환점이었다고 회고했다.

"러시아과학원 산하의 동물학연구소에서 위도(緯度)에 따른 생물 염색체 변화를 연구했지요. 그런데 그곳에서 멸종위기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인간과 야생동물의 공존에 대해 고민하게 됐습니다. 마침 귀국한 뒤에는 흑두루미가 더 이상 낙동강을 찾지 않는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봤고요. 연구대상을 바꾸는 것은 학자로서 위험했지만 한번 도전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멸종위기종 복원 프로젝트는 그때 시작된 것이지만 처음에는 주위 분들이 다들 의아히 여겼습니다."

새 전문가답게 그에게는 새에 얽힌 재미있는 뒷이야기도 많았다. "사람뿐만 아니라 새에게도 궁합이 있다는 사실을 압니까? 2006년에 러시아에서 재두루미 한 쌍을 들여왔는데 사이가 유독 안 좋았습니다. 암컷 '구순이'가 짝짓기를 거부하는 것도 모자라 수컷 '구돌이'를 수시로 괴롭혔지요. 연구원들이 아무리 합방을 도와줘도 안 되더니 결국 수컷이 1년 만에 '폭행'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아무래도 암컷이 사람 손길에 너무 익숙했던 데다 수컷은 노련미가 부족했던 탓 같아요. 아직 처녀인 구순이가 무정란만 열심히 품는 게 딱하기도 해서 내년에는 인공수정을 시켜줄 생각입니다."

그는 야생동물이 갈수록 설 곳을 잃어가는 현실에 대해서 무척 안타까워했다. "시골에서도 학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면 봤다고 대답하는 분이 많아요. 사실은 못 봤을 가능성이 더 큰데 말입니다. 그분들이 말하는 학은 백로(白鷺)예요. 부리, 목, 다리가 긴 게 비슷하기도 하지만 체구가 훨씬 작지요. 학은 우리 문화에서 아주 익숙한 존재이지만 현실에서 보기는 어려운 탓에 일어나는 혼동이라고 보입니다. 요즘 멧돼지가 도심에 출몰하는 일이 잦아 멧돼지를 아주 유해한 짐승으로 생각들 합니다만 멧돼지가 왜 산에서 내려왔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합니다. 무슨 길이다 무슨 길이다 하면서 온 국민이 산을 헤집고 다니는데 과연 멧돼지가 산속에서 버틸 재간이 있을까요?"

◆낙동강에 두루미 거닐면 관광자원

학창 시절 '파브르 곤충기'와 '시턴 동물기'를 즐겨 읽으며 가졌던 그의 꿈은 하나 둘 구체화되고 있다. 그가 2004년 초대 관장을 맡았던 경북대 자연사박물관은 국립대 최초로 설립돼 자연생태 환경체험 교육장으로 자리매김했다. 군위군 효령면 장군리 옛 장군초교 자리에 있으며 국내에서 최초로 발견된 공룡알 화석, 국내 최대 크기 경린어류 화석, 국내 최다 국내산 중생대 어류 화석, 토종 늑대 표본 등이 전시돼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경북대 자연사박물관의 성과는 내년 5월 개관 예정인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상주시 도남동) 유치로 이어졌다. 국책사업인 자원관 생물자원의 주권 강화와 보전체계 완성, 국민의 자연 향유 기회 제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 연구기관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다른 나라에 비해 자연사박물관에 대한 관심이 낮은 편입니다. 제가 작은 규모이나마 지역에 자연사박물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부끄러운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됐습니다. 오래전 미국 출장길에 뉴욕 자연사박물관을 갔는데 유치원생 꼬마들이 아주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더라고요. 명색이 생물학을 전공한 대학교수인 저보다도 많이 아는 꼬마들을 보며 환경'생태교육의 장이 시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낙동강유역 1지역 1멸종위기종 복원 프로젝트'도 알차게 여물고 있다. 안동에 먹황새(천연기념물 200호)'혹고니(천연기념물 201호), 해평습지에 재두루미, 달성습지에 흑두루미가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하겠다는 목표가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안동 '백조공원'에는 혹고니 21마리가 서식하고 있으며, 먹황새의 최남단 서식지로 알려진 도산면에 방사할 네덜란드 먹황새 한 쌍은 26일 추가로 구미 사육장에 들어왔다.

"멸종위기 조류들이 낙동강유역에 서식하면 관광자원으로도 손색이 없을 겁니다. 그래서 지역마다 종(種)을 특성화했고요. 최근 흑두루미 400여 마리가 낙동강 습지에 오랜만에 출현한 것도 반가운 일입니다. 서식 환경이 나아졌다는 방증이거든요. 저희가 돌보는 두루미들이 자연적응훈련을 거쳐 자연으로 돌아가는 날이 아마 제 인생 최고의 날이 될 겁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박희천 교수=박 교수는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다. 명덕초교, 심인중학교, 대구상고를 거쳐 경북대 생물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신천에서 멱 감다 빠져 죽을 뻔했던 일, 학교 가는 길에 있던 과수원 울타리용 탱자나무에서 탱자를 따 먹던 일 등이 그의 학창시절 추억들이다.

박 교수는 영남대에서 전임강사'조교수를 지낸 뒤 1985년부터 경북대에서 강의했다. 한국동물분류학회 회장, 대구시'경북도 문화재위원(천연기념물분과), 경북대 자연사박물관장 등을 역임했으며 올해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연구자료 수집 등을 위해 세계 50개 이상의 외국을 다녀왔다는 그는 "나이가 들면서 젊은 시절의 고생이 종합적 사고에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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