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일이다. 한 젊은이가 미국에서 음악학 박사가 됐다. 당시로는 특수한 분야의 음악을 전공했기 때문에 쉽게 대학교수가 될 것이라는 꿈을 안고 귀국했다. 여러 대학에 지원서를 냈지만 어느 곳에서도 그를 채용하지 않았다. 그가 원했던 빈자리들은 연고가 있는 사람들이 다 차지했다고 한다. 전공과는 무관한 곳에서 임시직으로 일해야 했다. 암울한 세월을 보내던 중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미국의 몇몇 대학에 자신의 프로필을 보냈는데 놀랍게도 여러 대학에서 채용하겠다는 연락이 왔단다. 지금 그는 스탠퍼드 대학의 교수가 되어 신나게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부럽기도 하지만 그 나라가 더 부럽다. 우리는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지닌 품성이나 능력보다 어느 지방 출신이냐,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는 등의 연고를 더 중요하게 따진다. 동향 사람이라고 어찌 무조건 믿을 수 있으며, 학교 동문이라고 모두가 탁월한 능력을 가졌겠는가. 하기야 나도 이곳의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나는 새처럼 좋았던 기분은 며칠을 못 갔다. 지방대학 출신이라는 거센 야유와 소외를 이겨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변화는 앞으로만 갔지 거꾸로 간 적은 없다. 울산, 거제, 창원, 광양, 여수, 순천, 당진, 평택. 우리보다 몇 배나 잘 사는 도시들이다. 과거의 기준으로 말하면 거기는 사람 살 곳이 못되는 곳들이었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은 서울 못지않은 신사고에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비즈니스 기준에 따라 일해서 살기 좋은 곳으로 일궈 놓았다. 아마도 우리처럼 연고 때문에 일을 맡기고, 안면 때문에 거절 못 하는 경우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흘러간 옛 노래만 부를 것인가?
세상은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있다. 2305년에는 이 지구상에서 순종 한국인이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고 2030년이면 대한민국이 없어진다는 미래학자도 있다. 다민족 국가에다 EU처럼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이 한 블록(Block)이 될 것이라 했다.
도시와 학교는 텅텅 비었고 공장 안에도 사람은 없고 로봇만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 내 집을 갖기 위해 씀씀이를 줄일 이유가 없으며 학생들은 굳이 대학을 가야 할 필요도 없다. 젊은이들은 군에 가지 않으려고 일부러 어깨를 탈골시키지 않아도 된다. 집집마다 애교 만점의 로봇 마누라와 정력 넘치는 로봇 남편이 살고 있어 행복이 철철 넘친다. 싸울 일도 없고 이혼 걱정은 더더욱 없다. 100살도 청춘이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미래여행이었다. 과거도 중요하지만 미래는 더 중요하다. 내것을 지키는 것도 좋지만 일을 벌이는 것은 더 좋다. 변화는 어색하고 불편하며 불안하지만 막상 새롭게 해보면 의외로 잘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돈이 되고 신명도 난단다.
이규석 대구카네기연구소 원장 293le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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