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수법 비슷, 노래 불러 공주의 마음 사로잡아
원효와 서동은 연애 수법이 비슷했다. 둘 다 노래를 불러 공주를 꼬셨다. 그것도 작사 작곡은 물론 노래까지 직접 불렀다. 우리 가요계에도 그 맥을 잇느라 그랬는지 몰라도 3박자를 갖춘 이른바 싱어송라이터들이 꽤 많이 활동하고 있다.
박강수란 재주꾼은 정규, 비정규 앨범 14개에 78개 노래를 직접 짓고 불렀으며 공연기획까지 하고 있다. 조용필, 조영남, 나훈아, 설운도 등도 직접 작곡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후배들에게 곡을 주기도 한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을 되새겨 보면 그 말 속엔 원효와 서동이 버티고 있다. 원효와 서동은 37년의 나이 차가 있다. 원효는 617년에 태어났고 서동은 580년 생이니 서동이 형님뻘 아니 아버지뻘이다.
서동은 백제의 서울인 부여의 남쪽 못가에 살았다. 어머니와 단 둘이서 마를 캐 생계를 유지했다. 그의 아버지는 못의 용이었다. 그러니까 서동은 용의 아들로 출신 성분이 비범했다. 그러니까 나중 백제 30대 임금인 무왕이 되었다.
서동은 '진평왕의 셋째 딸이 보기만 해도 팍 주저앉을 정도로 예쁘다'는 풍문을 듣고 마 한 자루를 짊어지고 서라벌로 떠난다. 마를 깎아 궁궐 옆 동네아이들에게 나눠주자 금방 친해졌다.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얼러두고/ 맛동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란 노래를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노래는 삽시에 장안에 퍼졌다.
시방도 그렇지만 소문이 진실인양 떠들어대는 사악한 무리들이 왕의 마음을 움직여 공주를 귀양 보낸다. 우연을 가장한 서동이 유배대열의 일꾼으로 따라 붙어 공주의 환심을 사게 된다. 공주는 바른 언행으로 일을 열심히 하는 서동이 서라벌에 퍼져 있는 서동요의 주인공처럼 이름까지 꼭 같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하는 마음이 싹트게 된다. 귀양살이를 끝낸 선화공주는 백제로 건너가 서동과 부부가 된다.
삼국유사에는 '익산의 미륵사와 탑도 무왕과 선화공주가 세웠다'고 전한다. 당시 절을 세울 때 진평왕이 딸을 위해 신라의 석공 장인들을 보냈다고 한다. 미륵사 절은 무너지고 반쯤 무너진 서탑이 국보 11호로 지정되어 있다. 무왕과 공주의 무덤은 미륵사에서 2㎞ 정도 떨어진 곳에 '익산 쌍릉'이란 이름으로 보존되어 있다. 서동요란 노래 한 자락의 힘이 이렇게 크다.
한편 원효는 45세 때 두 번째로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가기 위해 길을 떠난다. 산속 토굴에서 잠을 자다 목이 말라 물을 마셨는데 그게 해골바가지에 고여 있던 빗물이었다. 원효는 대오각성하고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도리를 깨우쳤다. 스님은 신라로 발길을 돌려 서라벌 장안을 떠돌며 노래하고 춤추며 민중포교에 열을 올렸다.
하루는 "누가 내게 자루 없는 도끼를 주겠는가. 내가 하늘을 받칠 기둥을 깎으리라"(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수허몰가부 아작지천주)고 소리치며 다녔지만 그 뜻을 아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무열왕은 이 소식을 궁 안에서 전해 듣고 무릎을 탁 쳤다. '자루 빠진 도끼는 과부를 뜻하고 하늘 받칠 기둥은 과부가 낳은 아이가 나라의 인재가 되는 것을 상징한다'고 해석했다.
임금은 관리를 불러 귀엣말로 "저 미친척하며 돌아다니는 저 중을 붙들어 요석궁에 들여라"는 명을 내렸다. 둘째 딸인 요석공주는 백제와의 전투에서 남편을 잃은 청상이었다. 안 그래도 공주는 원효의 인물됨에 반해 승복과 모란꽃을 선물로 보내고 마음속으로 애모의 정을 키우고 있던 중이었다.
관리가 원효를 찾아 문천교(월정교)를 지날 때 스님과 맞딱뜨렸다. 관리가 밀었는지 스님이 헛다리를 짚어 넘어졌는지 좌우지간 '풍덩!'하는 소리와 함께 원효의 연극은 각본대로 끝이 났다. 관리가 앞장서고 원효는 젖은 옷을 입은 채로 요석궁으로 들어갔다.
자루가 빠진 도끼 구멍에 기둥 깎을 도끼자루를 끼워보니 사이즈가 기가 막히게 딱 맞았다. 원효와 공주는 삼일밤낮을 눈 붙일 여가 없이 사랑을 나눴다. 원효가 떠나고 난 뒤 공주의 배가 불러 오기 시작했다. 공주의 아들은 신라 10현 중의 한 분인 설총이다.
최근 볼일이 있어 경주에 들렀다가 막바지 복원공사가 진행 중인 월정교를 건너 요석궁 터 인근에서 저녁밥을 먹었다. 내 옷이 물에 젖지도 않았고 막걸리 시중을 드는 공주처럼 생긴 여인도 없었는데 괜히 신이 난다.
노래 하나 지어 흥얼거리며 경주 시내를 돌아다니면 공주 같은 여인을 만날 수 있을까. 싱어송라이터 교실이 어디에 있는지 그것부터 알아봐야겠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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