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사정으로 어떤 가정은 친자식이 아닌 아이를 입양하여 키우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입양아를 키우는 과정에서 남모르는 희생과 위대한 사랑을 헌신적으로 쏟아붓는다. 그래서 아이는 자칫 친부모로부터 버려진 탓에 힘든 성장기를 겪을 위기에서 벗어나 다행스럽게도 어여쁜 화초로 곱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갖게 된다. 이러한 양육환경에서는 양부모들의 헌신이 절대적인 자양분이 된다.
그런데 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 부모가 아이를 이렇게 잘 키워가면서도 남모르게 불안해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가 성장했을 때 자신들이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그에 대한 아이의 충격과 상처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전전긍긍하는 불안한 마음을 지닌 채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필자가 볼 때, 이들 양부모의 불안한 속사정은 오랜 세월 동안 입양아를 키우는 과정에서 아이 자신보다도 양부모 자신이 훨씬 더 아이에게 가족으로서의 정을 흠뻑 들여 버린 결과인 듯하다. 아이 입장에서 볼 때 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인가. 그런데도 양부모들은 자신이 아이에게 헌신해 온 일에 대해 동전의 양면 중 한쪽만 보고 불안해하는 것이다. '자신이 친부모가 아니란 사실을 숨기고 양육해 왔다는 사실과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아이가 받을 충격과 상처'라는 측면 말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들에게 동전의 건강한 다른 한쪽을 함께 보자고 말한다.
"그 불안한 한쪽의 뒷면을 보세요. 당신은 버려질 뻔한 그 아이를 당신의 삶 속에 고이 품어왔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도 축복받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도 함께 봅시다. 만약 먼 훗날, 아이가 출생의 비밀을 알고 싶어 하거나 알게 된다 해도 당신이 동전의 어느 쪽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아이가 자기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도 달라지리라 봅니다."
이 말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양부모들이 '낳은 부모'보다는 '키운 부모'로서의 당당함과 자부심을 먼저 가지라는 의미였다. 부모의 선행과 노력으로 인해 '아이의 기적같은 축복'이 확보되었다는 긍정적인 측면의 '임파워먼트'의 관점만이, 예견되는 아이의 상처를 최소화하는 비결이 되리라 보았기 때문이다.
대구과학대 교수 대구복지상담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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