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 변화 수상해" 암 찾아내는 '족집게'
암 진단을 위한 최첨단 영상장비들이 나오고 있지만, 대다수 결정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암 조직이 일정 정도 크기 이상으로 자란 후에 영상장비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암 진단을 했을 때는 이미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영상장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몸의 유전자 정보를 통해 암을 초기에 진단하는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다. 미국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유전자 정보를 통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에 이른다는 진단을 받고, 위험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유방 절제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유전자 정보를 통해 암을 조기 진단해 치료한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암의 발생은 유전적'환경적'개인적 차이로 인한 원인이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유전자 분석을 통한 암 초기 진단도 역시 어느 정도 한계를 갖는다. 유전자 진단의 경우 타고난 유전적 차이에 따른 질병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고 암에 걸린 상태에서 치료방식을 찾을 수 있지만, 현재의 질병 유무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피 속의 단백질 분석을 통해서는 바로 몸의 현재 상태와 질병 유무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방식의 다중진단이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분자족집게 기술 최초 발명, 소말로직
미국 소말로직사가 개발한 분자족집게(압타머) 기술은 질병 진단과 치료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올 의료혁명의 단초가 되고 있다. 유전적인 분석이 아니라 피 속에 있는 단백질의 양과 변화를 분석해 특정 질병과 관련된 단백질을 찾아냄으로써 질병 여부와 종류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콜로라도주 볼더시 소말로직사. 분자생물학자 래리 골드 박사가 2000년 설립한 소말로직사는 피 속의 단백질을 분석해 질병을 알아내는 다중진단의 세계 최첨단을 걷는 회사다. 2007년 300여 개의 단백질을 분석할 수 있는 기술에서 2013년 현재 1천100여 개의 단백질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했다. 설립 초기 5, 6명으로 시작한 직원은 현재 100명으로 늘어났다.
마크 메센바흐 소말로직사 발전전략팀장은 "DNA(디옥시 리보핵산) 분석은 쉽지만 단백질 분석은 상대적으로 어렵다"며 "질병과 관련된 단백질은 수천 개에 달하는데, 현재 폐암과 관련된 1천129개의 단백질 차이를 발견해냈기 때문에 엄청난 진전을 한 셈"이라고 말했다.
소말로직사는 지금까지 폐암, 췌장암과 관련된 5가지 관련 바이오마커(생체지표)를 발견했다. 바이오마커는 피 속의 특정 질병과 관련된 정보를 가진 단백질을 말한다. 이 특정 질병과 관련된 단백질을 파악할 수 있다면 이 단백질과 다른 단백질과의 결합유형과 단백질량의 변화 등을 통해 특정 질병의 유무를 확정지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바이오마커를 많이 찾았다는 것은 이를 이용해 그만큼 질병 유무와 유형에 대해 더 명확히 진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핀텐 스틸레 소말로직사 커뮤니케이션팀장은 "우리는 지금까지 폐암과 췌장암뿐 아니라 알츠하이머, 간'심장'폐질환과 관련된 다수의 바이오마커를 발견했다"며 "조만간 폐암과 관련된 압타머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소말로직사는 폐암환자 3천 명을 비롯해 심장혈관 관계 환자 등의 혈액을 채취한 뒤 단백질 분석을 통해 바이오마커를 연구하고 있다. 새로운 질병 바이오마커를 찾는다는 것은 해당 질병에 대한 초기진단을 통해 재빨리 치료를 함으로써 불치병을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질병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암 진단, 글로벌 협력
다중진단의 핵심인 압타머 기술을 확보한 소말로직사는 국내 포스텍과 SK텔레콤 등과 글로벌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포스텍은 미래 진단시장의 핵심인 압타머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2007년부터 이 회사와 제휴를 하고 있다. 포스텍 장승기 교수 등 연구팀은 1년간 소말로직사에 머물며 압타머의 핵심기술을 이전받았다. 또 소말로직사가 개발한 압타머 기술에 대한 아시아 사용권 협약을 맺어 이 기술이 조만간 상용화될 경우 아시아권에서 유일하게 차세대 의료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포스텍은 그동안 축적된 기술과 경험, 첨단 장비 등을 바탕으로 업그레이드된 압타머 기술 개발에 총력을 쏟고 있다.
장승기 포스텍 생명과학과 주임교수는 "질병과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표적 단백질(바이오마커)을 더 많이 찾아내고, 이와 관련된 단백질의 양과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압타머 기술을 개발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내년까지는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도 지난 6월 체외진단과 바이오인포매틱스 등의 영역에서 소말로직사와 공동으로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사업협력 모델을 발굴하기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SK텔레콤은 차세대 진단 원천기술인 압타머기술을 보유한 소말로직사와의 협약을 통해 헬스케어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소말로직사와 국내 각 기관과의 협력뿐 아니라 포스텍-국립암센터-서울아산병원-SKT 등 국내 기관 간 다중진단과 관련한 협력체계가 구축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모은다. 포스텍이 다중진단 기술 개발에 앞장서고, 국립암센터와 서울아산병원 등이 임상실험 등을 통해 검증하고, SKT가 상용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질병, 특히 암 조기 진단 기술력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선보여 한국이 이 분야 글로벌 리더 국가로 우뚝 설 수 있는 날이 점점 현실화하고 있다.
미국 콜로라도주 볼더시에서 김병구기자 kbg@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