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의 가요 이야기] 일제말 떠돌이를 노래한 가수 강남주(상)

입력 2013-11-21 14:11:33

'울고 싶은 마음' 식민지 민중의 비통함 위로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제작 발매된 가요곡은 모두 몇 편이나 될까요? 여기에 대해 정확한 통계를 낸 자료는 없습니다만 당시 음반제작사에서 발매했던 일련번호를 통해 거칠게 집계해보면 대략 6천500장가량 제작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국악음반이 3천200장 내외 6천400편 전후로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절반 중 가요곡이 2천300장 안팎으로 또 절반을 차지합니다. 레코드 회사마다 이름이 다르고 갈래도 번잡하게 느껴지지만 대체로 비슷합니다. 수량으로는 SP, 즉 축음기음반 한 장에 앞뒤로 불과 두 곡밖에 수록되지 않으므로 전체 가요곡은 음반수의 갑절인 4천600곡 정도로 추산됩니다.

가요곡이 4천600곡 정도라면 생각보다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이 음반들도 보존이 너무 소홀하고 부실하다는 점입니다. SP음반은 무른 상태에서 열처리 과정을 거치며 단단해지지만 작은 충격에도 금방 깨지거나 금이 갑니다.

대부분 이사 갈 때 한꺼번에 버리거나 고물로 팔았지요. 1950년대 후반에 제가 직접 목격한 사실로는 유성기 음반을 엿장수나 고물장수들이 대량으로 입수해서 자루에 넣고 한꺼번에 망치로 깨어 부수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잘게 부순 음반 파편은 분쇄기로 갈아 다시 백열전구의 소켓으로 만드는 이른바 재활용품 재료로 사용되었습니다. 귀하고 소중한 음반들이 이처럼 허무하게 사라져버렸을 것입니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익혀 알고 있는 옛 가요 목록들은 불과 몇 곡 되지 않습니다. 주로 유명가수 위주로만 약간 기억하고 있을 뿐이지요. 하지만 음반이 발매된 당시 대중들에게 꽤나 히트했던 인기곡들이 제법 많았던 것을 생각할 때 일제강점기 때에 불렸던 음원자료에 대한 지속적 발굴과 수집은 우리가 잃어버린 과거 문화유산의 정리라는 차원에서도 커다란 역사적 의미와 가치 있는 활동이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일제강점기 말의 가수 강남주(姜南舟'1914∼1976)의 경우만 하더라도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진 가수 중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1939년 5월 콜럼비아레코드 전속이 되면서 발표한 데뷔곡 '울고 싶은 마음' 한 곡으로 험한 세월에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헤매던 당시 식민지 백성들의 비통한 마음을 쓰다듬고 위로해준 가수였습니다. 말하자면 대중문화인에게 맡겨진 시대적 사명을 그 나름대로 감당했던 가수였지요.

흘러가는 물결과 떠도는 구름/ 동서남북 내 홀로 헤매이건만

언제나 울고 싶은 나그네 심사/ 아 떠나온 고향 잊을 수 없네

- 1절

이 노래가 발표된 1939년의 시대적 정황은 참담했습니다. 식민지 조선의 모든 물자와 인력을 수탈해가기 위한 구체적 단계로 일제가 기획했던 '조선징발령'(朝鮮徵發令) 세칙이 그해 1월 14일에 공포 시행되었습니다. 점점 숨통을 옥죄어드는 제국주의 통치에 염증을 느끼고 망명의 길을 떠나는 사람들을 일일이 검속하기 위해 그해 3월 말에는 '국경취체법'(國境取締法)이란 악법도 공포 시행되었습니다. 7월에는 전국에서 농민들을 강제 징발하여 '근로보국대'(勤勞報國隊)란 이름으로 만주에 보냈지요. 이 무렵 만주 일대로 떠나와서 살고 있는 한국인은 무려 11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뒤숭숭한 난세(亂世)에 식민지 백성들은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감 속에서 살던 집을 떠나 타관 객지를 떠도는 정처 없는 유랑민으로 전락했습니다. 삶의 위기를 헤쳐 나갈 그 어떤 뚜렷한 방책도 찾아낼 길 없고 다만 그들의 심정은 이 노래제목과 같이 그저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을 것입니다. 이 노래 1절은 그러한 전후 사정을 그림처럼 생생히 보여줍니다. 그의 다른 노래들, 이를테면 '애수의 여로' '애수의 사막' '고달픈 여로' '항구의 물망초' '님 없는 신세' '청춘회상' 등도 떠돌이 신세의 비애와 서러움을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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