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금야금 새는 주유비] <상>온도 따라 변하는 엿가락 기름

입력 2013-11-21 10:17:04

기름 온도 10℃ 높으면 5만원 주유 때 534원 손해

18일 대구 북구 한 주유소에서 한국석유관리원 직원이 휘발유 정량을 측정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18일 대구 북구 한 주유소에서 한국석유관리원 직원이 휘발유 정량을 측정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내 차에 넣는 기름, 진짜 10ℓ가 맞을까?"

등록 자동차 2천만대 시대, 누구나 주유소 '기름 소비자'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제값을 주고 정량의 기름을 사고 있을까? 온도에 따라 부피가 변하는 기름 때문에 발생하는 주유량 오차로 소비자들의 주머니에서 돈이 새고 있다.

◆최저기온 3.4℃인 날, 기름 온도는?

18일 오후 대구 북구의 한 주유소. 한국석유관리원(이하 석유관리원) 검사원 2명이 20ℓ 탱크를 들고 주유소에 등장했다. 이날의 방문 목적은 '정량 검사'. 하지만 이날 검사에 한 가지 더 추가됐다. 바로 온도 측정이다. 대구의 최저기온이 3.4도를 기록한 이날 주유소 기름의 최고 온도는 몇 도인지 알아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검사 결과, 주유소의 기름 온도는 모두 외부 기온보다 높았다. 휘발유의 경우 가장 온도가 낮은 곳이 10.7도, 가장 높은 곳은 14.3도까지 나왔다.

특히 4곳 중 마지막에 찾은 한 주유소는 다른 주유소보다 유난히 기름 온도가 높았다. 휘발유는 14.3도, 경유는 18.5도까지 올라갔다. 이 주유소에 기름을 납품했던 한 유류 운반업자는 "이곳은 정제소에서 가져온 기름을 선호하는 곳"이라며 "정제소에서는 기름을 갓 정제하면 온도가 저유소 기름보다 높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귀띔했다.

◆주유소 기름 '그때그때 달라요'

주유소에서 '뜨거운 기름'을 선호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휘발유 부피는 온도가 1도 상승할 때 0.11%, 경유는 0.08% 팽창한다.

우리나라 휘발유 및 경유 거래는 국제표준온도인 15도를 기준으로 한다. 현재 온도 보정을 하지 않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판매하는 시스템대로라면 기름 온도가 15도를 넘으면 주유소가 이익을 보는 구조다.

그렇다면 한 번에 5만원어치 주유하는 사람에게 기름 온도 10도 차이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휘발유 가격을 1ℓ당 1천800원으로 잡고, 5만원을 낸다고 가정하면 한 번 주유 시 약 27ℓ가 들어간다. 온도차 10도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최고 온도와 최저 온도 사이에 발생하는 가격차는 약 534원.(27ℓ×0.11%×10도×1천800원) 이 경우 매달 20만원을 주유하는 운전자는 온도 변화에 따라 최대 2천130원, 30만원어치 넣는 사람은 3천원 가까이 손해볼 수 있다.

배기량 3천300cc 차량을 운전하는 직장인 정동진(36'대구 달서구 상인동) 씨는 매달 40만~50만원치 휘발유를 넣는다. 그는 '더운 여름철에 기름을 넣으면 손해'라는 말을 전자 계기판을 볼 때마다 실감한다. 정 씨는 "한 번 주유할 때 5만~7만원어치 넣는데 같은 양을 겨울에 넣으면 전자 계기판에 주행가능 거리가 10㎞ 정도 더 올라갔다"며 "막상 계기판에 표시되는 주행거리를 보면 여름에는 주유할 때마다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온도차로 인한 주유량 오차는 국정감사에서 매년 단골로 지적되는 문제다. 2008년 지식경제부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됐었고, 당시 민주당 최철국 의원이 주유기에 온도보정장치를 달거나 보정 계수를 적용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으나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지적됐다. 민주당 오영식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주유량 평균 오차는 2011년 -43.9㎖에서 지난해 -46.1㎖로 늘었으며, 소비자 피해 추정액도 같은 기간 1천231억원에서 1천366억원으로 증가했다.

◆주유소 측 "소비자 피해 미미하다"

이런 온도차를 이용해 공공연히 '뜨거운 기름'을 요구하는 곳도 있다. 정유사 정제소에서 직접 배달되는 기름은 저유소에 있는 기름보다 더 따뜻하기 때문.

유류 운반업자들은 정제소에서 바로 떠올린 기름 온도는 최고 45도까지 나올 때도 있다고 한다. 취재진이 모 정유사의 출하 전표를 확인한 결과, 11월 1일 울산 정제소에서 출하된 기름의 온도는 33.5도로 책정돼 있었다.

주유소에 기름을 배달하는 유류 운반업자 A씨는 "정제소에서 퍼온 기름은 추운 겨울철에도 20도 이상 유지되는 탓에 저유소 기름보다 훨씬 온도가 높다"며 "어떤 주유소는 정제소에서 떠온 기름만 달라고 한다"고 털어놨다. 탱크로리 한 대에 보통 2만4천ℓ 정도 들어가는데 여름철에 온도 보정을 하면 2드럼(400ℓ)치 가격이 빠진다는 것.

일부 주유소는 저장탱크에서 주유기로 연결되는 배관에 발열장치를 설치하기도 한다는 것이 A씨의 설명이다. 기온이 낮은 겨울철에도 기름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 하지만 이것이 '불법'은 아니다. 위험물안전관리법에 따라 겨울철 '동파 방지' 목적으로 발열장치를 설치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

소방방재청 방호조사과 관계자는 "관련 법에 (발열 장치를) 설치할 수 없다는 규정이 없어 벙커C유 보관 탱크나 배관 등은 필요에 따라 보온 장치를 설치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주유소 관계자들은 "배관을 데우려고 전기세를 들이면서까지 몇 백원 이익을 보자고 기름 온도를 높이려는 주유소가 몇 곳이나 되겠느냐"며 "이는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 같은 기름 온도 보정 논란에 대해 주유소협회 측은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가 뚜렷한 우리나라의 경우 소비자 피해액이 크지 않다고 설명한다. 오히려 주유기에 온도보정장치를 설치하고 관리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들어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것.

한국주유소협회 대구지회 관계자는 "온도 보정을 하기 위해 전국 모든 주유기에 보정장치를 설치하는 비용만도 엄청날 것"이라며 "여름에 기름 온도가 높아 소비자들이 손해를 봤다면 겨울에는 오히려 주유소가 손해보기 때문에 상쇄된다"고 했다.

기획취재팀=김수용기자 ksy@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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