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칼럼] 있던 박물관이 사라진 도시

입력 2013-11-18 10:58:59

달성공원을 두고 근래 말이 많다. 동물원 이전 때문이다. 어디로든 옮겨갈 모양이다. 잘 된 일이다.

달성공원에 동물원이 들어온 것은 1970년의 일이다. 하지만 달성공원이 어떤 곳인가? '영남의 대구, 대구의 달성'이라고 할 정도로 대구, 달구벌을 상징하는 곳이다. 삼국시대 3세기경 달벌성(달성 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고 통일신라시대이던 689년에는 신라의 도읍을 달성으로 옮길 것을 검토했다고 할 정도로 달성은 역사의 현장이다. 임진왜란 시기에는 경상감영이 이곳에 설치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달성에는 공원이 조성되고 일본서 옮겨온 벚나무도 제일 많이 심어졌다. 서울의 창경원처럼 벚꽃놀이가 성행했다. 또 그곳에는 일본 향나무도 많이 심어져 일본색이 더욱 짙어졌다. 급기야 그곳에는 신사(神社)까지 들어서기도 했다. 대구의 상징이자 대구지역의 제일 중심지인 달성이 조선을 점령한, 대구를 장악한 일본인들의 본거지가 되고 놀이터가 된 것이다.

대구시는 동물원을 옮기고 나면 달성토성을 복원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를 계기로 달성공원에 시립박물관을 다시 건립하자는 주장이 있다. 달성공원만큼 대구의 역사 한복판에 서 있으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유적도 없다는 점에서 시립박물관 후보지로서는 달성공원만 한 곳이 없다는 것도 아주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대구에는 시립박물관이 없다. 과거에는 있었다. 1947년 달성공원에 시립박물관이 들어섰다가 10년 만인 1957년에 사라졌다. 내력은 이렇다. 1947년 5월 일제강점기 동안 그러모은 보물들을 일본으로 반출해 가지 못한 일본인들로부터 헌납받은 각종 문화재 2천여 점을 모아두기 위해 시립박물관이 세워졌다. 그리고 1957년에 관리 부실과 운영능력 부재를 이유로 문을 닫고 말았다. 그동안 소장품 700점 이상이 사라졌다고 한다. 문화재 보존 의지와 능력이 없었고 박물관을 운영할 노하우마저 없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지금은 서울에도, 부산에도, 광주에도, 인천에도, 대전에도, 울산에도 있는 시립박물관이 대구에만 없다. 1994년에서야 개관을 한 국립대구박물관이 없었다면 대구는 역사도 없고, 내력도 없고, 뼈대도 없는 '나이롱' 도시로 지낼 뻔했다. 이후로도 민선 자치시대가 열리고 20년 가까이 흘렀지만 대구시의 역사에 대한 인식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대신 1995년 달성공원 입구 왼편에 있는 관리사무소 건물 한쪽에 문을 연 향토역사관이 있을 뿐이다. 존재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실내는 어두침침하다. 그곳에는 대구의 역사가 2만 년이나 된다고 적혀 있다. 선사시대를 제외하고도 대구의 역사, 달성의 역사가 7천 년은 더 됐다는 것이 정설인데도, 대구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유일한 시설이 달랑 여기뿐이다. 넓이는 2개 층 600여㎡에 불과하다. 역사도시, 문화도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대구의 역사, 대구사람들의 역사가 홀대받고 있는 현장이다. 근대역사박물관 등 기념관급 시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정 시기, 특정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불과해 대구의 유구한 역사를 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동물원 이전을 추진할 때 반드시 향토역사관 처리 문제를 포함해 시립박물관 건립 문제도 함께 논의하라는 것이다. 달성공원 구내라면 더 좋겠다. 그게 안 된다면 어디라도 좋다.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 대구의 역사, 달성의 역사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다. 절대로 예산 타령을 하며 뒤로 미룰 일이 아니다. 또 하나. 지금 대구시청의 기간 조직 안에는 박물관 업무를 다루는 곳이 없다. 시정돼야 한다. 비슷한 업무를 대구시청 내에서는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다. 문화예술회관으로 가야 한다. 그것도 문예회관 예술지원과의 한구석에 처박혀 있다. 푸대접이 아니라 무대접이다. 이래서야 있던 박물관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과 비슷한 일이 재발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2013년. 1957년 대구시립박물관이 문을 닫은 지 56년이 지났다. 그때와 비교해 대구시의 역사의식은 별로 나아진 게 없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아니다. 지금과 같다면 '역사도시 대구'라는 이름은 당장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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