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단언컨대'의 위험성

입력 2013-11-14 07:33:15

요즘 '단언컨대'라는 말이 꽤 유행하고 있다. 배우 이병헌이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로 '단언컨대, 메탈은 가장 완벽한 물질입니다'라고 말하는, 한 휴대폰 광고의 카피로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는데, 텔레비전을 켜면 여기저기서 '단언컨대'의 패러디가 들려온다. '단언컨대'라는 부사는 짧고 간결하면서도 어떤 말 앞에 붙여도 잘 통하니 말장난 좋아하는 사람들이 애용하는 것 같다. '단언'(斷言)이란 '주저하지 아니하고 딱 잘라 말함'이라는 뜻이다. 복잡하고 길게 설명해야 하는 것은 아예 싫다는 현대인의 심리가 이 짧은 단어에 숨어 있는 듯하다. 게다가 이 말은 염려 말고 믿으라는 자신감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다른 의견은 고려할 필요도 없이 내 생각만이 확실하다는 성급하고 과도한 자기 확신의 표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껏 살아오며 보고 듣고 한 이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표면과 전혀 다른 속사정이 있을 수 있고, 다수가 참이라고 믿는 것이 진실이 아닌 경우도 많음을 수없이 봐왔다.

우리 사학도 '단언컨대'의 어조로 패러디되었다. 몇몇 국회의원이 교육부에 요청하여 입수한 자료를 근거로 작성된 보도문의 문맥이 그러하다. 정년을 넘어선 고령의 사립학교 교장이 매일 출근해 과중한 학교 업무를 보는 것은 불가능한데도 이들이 학교장 직을 맡고 있는 배경에는 '단언컨대' 이사장의 친인척이 학교 운영에 전횡을 행사하는 사학의 '족벌체제'가 있는 만큼, 이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사립학교의 주요 직을 이사장 가족들이 '점령'하고 있으므로, '단언컨대' 부정 채용과 인사 비리가 만연해 있다는 주장도 수반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업무 수행 능력이 개인의 건강과 가치관, 의지에 따라 다르게 발현된다는 사실이다. 교직을 성직이자 천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육신의 나이와는 무관하게 끊임없이 자기계발과 세상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소통하려 노력한다.

사명감과 간절한 마음이 없으면 교육이라는 어려운 성직은 수행될 수 없다. 발전 의지를 가진 사학이라면 현행 법규가 정해 놓은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제아무리 친인척이라도 결코 채용할 수 없다. 만일 어떤 사학에서 불법과 불공정이 발생하면, 그 당사자에게 법과 도덕으로 책임을 물어야지, '사학이니까 당연히 그러할 것'이라며 마녀사냥하듯이 여론몰이를 해서는 안 된다.

사학에는 법률에 의해 공인된 의사결정 단위로서 이사회가 있고, 이사회 구성원 중 친인척의 비율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어서, 설립자 또는 이사장이 독단적으로 전횡을 행사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법령이 정한 학교장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가 탈법적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없다. 또한 오랫동안 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것은 사립학교 교장과 교사의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자연히 거시적 마스터플랜에 따라 장기적으로 차근차근 학교의 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사학의 본질에 대해 짚어 보자면, 사립학교는 말 그대로 그 설립 주체가 국가가 아닌 개인이나 단체이다. 재산을 이윤 추구라는 사적 목적이 아닌, 교육이라는 선의의 목적을 위해 자발적으로 출연했다. 그 정의적 본질에 따라 사립학교는 '자주성'을 존립의 전제조건으로 한다.

이 넓은 세상에 있을 수 있는 소수의 경우와 특별한 상황을 성급하게 일반화하여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게 되는 폭력과 무지를 저지를 수 있는 것이 바로 '단언컨대'의 수사학이다. 누구나 자신의 틀로 세상을 보게 마련이지만, 내가 막연하게 바라보는 틀이 전부가 아닐 수 있음을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방식으로 나의 목적에 따라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내린 결론에 대해 정당한 반론의 여지를 미리 막아 버리는 식의 '단언컨대'는, 단언컨대 매우 큰 위험성을 지닌 언어 기재일 수 있다.

권희태/경상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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