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오역(誤譯)

입력 2013-11-13 10:59:10

기자는 얼마 전 일본의 저명한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의 저서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한길사, 김석근 옮김)을 읽다가 어이없는 오역(誤譯)을 발견했다. "'인간은 때때로 맑은 물이 솟아나는 무대에서 눈을 감고 뛰어내리는 일도 필요하다'는 도조(東條)의 말…"(132쪽)이란 구절이다.

일본 교토에는 '淸水'(기요미즈)라는 절이 있다. 이 절 본당은 지상에서 15m 높이에 있는데 이를 '舞臺'(무대)라고 부른다. 재미있는 것은 이 무대에서 뛰어내려 살면 소원을 성취하고 죽어도 성불한다고 알려져 많은 사람이 뛰어내렸다고 한다. 여기서 "淸水の舞臺から飛び降りるつもりで"(기요미즈 무대에서 뛰어내리는 심정으로)라는 표현이 생겨났는데 '뒤를 생각하지 않고 과감히 결행한다'는 뜻이다. 번역자는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 그가 "맑은 물이 솟아나는 무대"란 자신의 번역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는지 궁금하다.

이름 있는 전문 번역가가 번역한 '유럽사 산책'(헤이르트 마크 지음'강주헌 옮김, 옥당)에는 더 어처구니없는 오역이 있다. 이 책 2권의 "인도차이나에서 8년이나 전쟁을 치렀지만 결국 프랑스는 민족주의자인 디엔 비엔 푸에게 패해 철수하고 말았다"(356쪽)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디엔 비엔 푸는 사람이 아니라 지명이다. 라오스와 인접한 베트남 북부의 분지로 1954년 보 응우옌 지압 장군이 이끄는 베트남군이 베트남을 재식민화하려는 프랑스군을 박살 낸 곳이다. 기자는 이 오역이 번역자의 실수인지, 교열 실수인지 출판사에 확인을 요청했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다.

의도적인, 그래서 더 나쁜 오역도 있다. 1948년 12월 12일 유엔 결의문에 대한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의 번역이다. 원문은 남한 정부가 "한반도(Korea)에서 유일한 그러한 정부임을 선언한다"이다. 최근 출간된 '오역의 제국'(서옥식, 도리)에 따르면 리 교수는 이를 "이 정부(남한 정부)가 Korea의 그 지역에서의 그와 같은 유일한 정부임을 선언한다"로 번역했다고 한다. 원문에 없는 '그 지역(남한)에서'를 끼워넣은 것이다. 이를 근거로 리 교수는 "이 나라는 엄청난 미신으로부터 출발했다. 그것은 한국이 유엔 총회에서 승인한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라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거짓을 좌파는 진실로 떠받들고 있으니 그 천학(淺學)을 알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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