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움직이는 광고판

입력 2013-11-13 07:09:54

이 지면을 통해 노래방 이야기를 자주 하는 것 같다. 나는 노래 부르기에 소질도 없는데 말이다. 주변에 보면 노래 부르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몇 해 만에 만난 대학 동창도 그랬다. 서울에서 경제 주간지 기자 생활을 하는 친구와 대구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친구와 나, 셋이서 만났다. 실은 그중에 한 친구가 나머지 우리 둘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려고 만난 자리였다. 다들 먹고살기 힘든 때, 이야기는 매끄럽게 흘러가지 못했다. 결국 남은 건 어색하고 서로 미안한 심정뿐이었다. 이른 저녁과 함께한 거북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체증을 남겼다. 덕분에 뭘 더 먹기도, 그냥 헤어지기도 어정쩡한 분위기에서 약속을 만든 그 친구는 바로 앞에 있던 건물 지하 노래방 계단으로 성큼성큼 내려갔다. '좋아, 친구지간에 괜히 생긴 찜찜함은 노래로 다 털어버리는 거야!'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은 조용했다. 벽에 걸린 선반 위 TV에서는 한 여자 리포터가 나와서 생기 넘치는 말을 쏟아내었지만, 이와는 대비되게 노래방은 한적하다 못해 침울했다. 방에 앉아서도 우리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고, 적막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어쩌다 시작된 노래는 몇 번 순서가 돌아 시간이 한참 흘렀는데, 남은 시간은 계속 숫자가 늘어났다. 보너스 시간을 자꾸 받아도 되느냐는 우리의 말에 주인아주머니의 대답, "손님 없어서 썰렁한데 그나마 한 방이라도 노랫소리 나오면 좋죠." 그 한마디가 우리 가슴에 불을 댕겼다.

그날 우리는 목에서 핏기가 올라올 때까지 노래를 불렀다. 심드렁해져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대학가요제 수상 곡들도 불렀고(매일춘추 10월 23일 자 참고), '그것만이 내 세상'에도 도전했다(10월 30일 자 참고). 부를 게 없으니까 팝송으로 넘어갔다. 우리는 'Let's dance'(10월 16일 자 참고), 'Bohemian rhapsody'(11월 6일 자 참고)도 울부짖으며 불렀다.

정에 이끌린 우리 세 명의 절규가 그 가게 판촉에 도움이 되었을까? 대학 시절 봄여름가을겨울이 발표했던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이란 곡이 있다. 그 노래 제목과 비슷하게, 우리의 희생이 헛되지 않고 노래방 주인아주머니의 마음이라도 따뜻하게 해드렸을까? 생각해보면, 소비자는 돈을 써가며 광고까지 덩달아 해준다. 가슴팍 티셔츠에 커다랗게 새겨진 브랜드 로고는 말 그대로 움직이는 광고판이 된다. 유리 창가에 앉아서 차를 마시는 잘생긴 남자 여자들은 그 자체로 카페의 인테리어 장식이 된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면 그 사람들은 불쾌해할까? 아니다. 이것은 소비사회가 보여주는 참된 허상이다.

윤규홍 갤러리 분도 아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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