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는 쌀 변동직불금 문제로 파행을 거듭했다. 직불금을 올리라는 정치권의 요구에 대해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수용불가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쌀 변동직불금 제도는 정해둔 목표가격 아래로 산지 쌀값이 내려갈 경우 그 차액의 85%를 보전해주는 제도다. 이 제도는 쌀 농가의 소득 보전을 위해 마련한 것으로, 정부가 국회 동의를 거쳐 5년 단위로 결정한다. 농식품부는 2013~2017년도의 쌀 목표가격을 기존보다 4천원 올린 80㎏당 17만4천38원으로 확정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18만4천원, 민주당도 19만5천901원으로 올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로서는 현재 쌀 직불금을 위해 혈세를 더 투입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내년도 적자예산을 편성한 마당에 세금을 더 올릴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쌀 직불금 제도는 급격한 쌀값 하락을 보완하기 위한 안전망 취지여서 쌀값이 안정돼 있는 상황에서 수매가격만 올리는 것은 제도 취지에도 맞지 않다는 것. 또 정부가 제시한 목표가격은 이미 생산비보다 높은 수준이어서 추가 인상을 강행할 경우 결국 국내 쌀 산업시장 경쟁력도 약화시킬 소지가 있다.
상황이 이렇지만 '일단 먹고살게 해 달라'는 농민들과 이들 표심을 간과할 수 없는 정치권은 여전히 수매가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 장관이 결단할 시기가 온 것이다.
이 장관은 '11'11 농업인의 날'을 맞아 매일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 농업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또 그 사랑을 간절히 지키고 싶어서 기존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쌀 직불금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는 이유는?
▶우선 정부에 대한 인식이 잘못돼 있다. 쌀값을 무조건 안 올려주겠다는 것이 아니다. 쌀 소비는 줄고 있는데 정부가 직불금을 더 나눠 줘 생산만 부추기면 시장상황이 어떻게 진행될까 고민해 볼 때이다. 시장에선 이미 2005년부터 수매제를 사실상 폐지한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의 쌀 직불금 제도를 시장의 소매가격처럼 인식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직불금 동결은 정부의 의지 부족 때문 아닌가.
▶우리 농업과 농촌은 생명'안보산업을 담당하는 핵심 사회 구성원이라고 생각하고 사랑한다. 사랑하고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걱정하기 때문에 앞으로 농업이 살길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정권마다 농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제시했으나 우리의 현주소를 살펴보자. 문제만 생기면 정부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정부는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는 같지만 방법을 달리할 계획이다. 실질적으로 농촌이 잘살고 세계시장 속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 추진할 계획이다.
-구체적 계획을 알려 달라.
▶정부는 앞으로 농업의 안정성과 함께 효율성 강화를 위한 투트랙 전략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선 농촌은 농민들의 일터이자 우리 모두의 삶터'쉼터가 돼야 하고, 소비자는 농업의 가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새롭게 가져야 한다.
-농촌의 일터'삶터'쉼터화란 무엇인가.
▶농업은 반드시 우리 곁에 있어야 한다. 국민들이 밥을 먹지 않으면 어떻게 생명유지가 되겠는가. 농업의 본질적 가치는 국민에게 안전한 농산물을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일터의 개념이다. 한 발짝 더 나가는 개념이 6차산업이다. 1'2차산업과 3차산업을 더한 것이다. 농업과 ICT(정보통신기술), BT(생명공학)의 융복합모델 확산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노력하겠다. 생활체감형 복지 확대와 고령자 친환경 공공시설 확충을 통해 농촌 취약 계층을 배려할 수 있는 여건 조성에도 나서겠다.
-영세농이 많은 국내 농가에 규모화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있다.
▶국내 농가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농민들의 52%가 65세 이상이고 국내 전업농은 대략 20만 호 정도이다. 이분들 자녀들이 농사를 짓지 않는다면 향후 10년 후 우리 농가는 피폐해지는 상황인데, 이 같은 문제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하루속히 들녘화 균형제 같은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50㏊ 정도 규모의 농지를 마을 전체가 계획적으로 관리하는 것으로, 주로 일본에서 많이 시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경북 군위의 경우 산악지역 골짜기 사이로 과수농업이 산재해 있는데 이것을 마을 공동체가 출범해 골짜기를 통째로 관리하면 생산비와 노동력을 줄이고 그 이익을 바탕으로 가외소득 창출에 새롭게 투자도 가능해진다.
-소비자들의 의식 변화는 어떤 식으로 진행돼야 하는가.
▶장관으로 부임하면서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이 농업에 대한 국민 인식 변화이다. 납세자들이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인정하고 우리 것을 갖기 위해서는 조금 더 비싸도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지난 정부만 해도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할당관세를 도입해 즉각적으로 물가안정에 나섰다. 할당관세의 남발로 농산물이 조금만 오르면 저가 농산물을 수입해 시장에 풀어 가격을 조정함으로써 물가가 조금만 오르면 국민들이 요동해왔다. 이제는 할당관세를 도입하기보다 일정한 가격을 유지시킬 수 있는 가격 밴드제를 시행해야 한다. 일정하면서도 적정한 가격밴드를 만들어 놓은 뒤 가격이 하락하면 정부가 일부 수매하고 상승할 경우에는 정부 비축물을 시장에 푸는 방식이다.
-가격 밴드를 강제할 경우 소비자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가격은 철저히 시장에 맡기고 가격이 요동칠 때만 정부가 일부 수급조절을 해서 안정화시킨다는 개념이다. 그래도 반발이 일부 있을 수 있는데 그래서 국민적 동의가 필요하다고 서두에 언급했다. 배춧값을 예로 들자. 우리 배추는 일 년에 4번, 계절마다 출하된다. 김장철 등 배추 사용 시기가 몰리는 국내 특성도 있으나 최근 배춧값이 폭등한 적이 있다. 이때마다 정부는 중국에서 배추를 들여와 시장에 풀었는데 이제는 조금 기다려 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배추가 계속 출하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한 달만 있으면 새 배추가 나온다고 시장에 설득하고 국민들도 이를 이해할 때 보다 성숙한 농정이 이뤄질 수 있다. 생산자는 소비자의 건강을 위해 좋은 상품을 재배하고, 소비자는 생산자가 손해 보지 않게 가격을 조금 더 쳐주고 하는 것이 새로운 국민 농정 시대에 걸맞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농업은 대부분 지방 몫이다. 특히 경북은 국내 농업산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경북 농업은 1960, 70년대 대한민국 가난을 이겨내는 데 앞장섰다. 근대화와 산업화의 초석도 대구경북 몫이었다. 국채보상운동과 새마을운동 등 국가 위기 때마다 지역이 앞장서 나라의 의식을 발전시켜 온 것도 사실이다. 이 같은 지역의 특성을 농업에 적용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 국내 농업은 고령화와 개방화 속에 풍전등화 상태다. 앞으로 농업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때인 것이다. 위기에 처한 국내 농업의 혁신을 위해 경북이 다시 한 번 앞장설 것으로 믿는다.
-경북 농업이 나가야 할 방향이 있다면.
▶전주와 완주 사이에 보면 노인들이 지역 농산물을 내다 파는 로컬 푸드 판매처가 있다. 이곳에서 눈여겨볼 점은 소비자와 생산자를 직거래로 묶어내는 것을 넘어 새로운 일거리가 생겨난다는 데 있다. 김천과 안동 등 수도권과 접근이 용이하고 중소 규모 이상으로 발전한 도시의 경우 인력은행(가칭)의 운영이 가능하다. 무취업자나 고령자들에게 훈련 기회를 갖게 하고 농산물 수확철 때 버스로 통근하면서 인력을 활용할 수 있다. 지역에는 일거리가 해소되는 반면 수도권의 일자리 문제도 해소할 수 있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인 셈이다. 이 같은 제도가 활성화되면 정부로서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다.
-경북은 전국에서 귀농인이 가장 많이 몰리는 도시이다.
▶경북뿐 아니라 귀농인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귀농인이 늘어난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계산이 아니라 지역의 네트워크가 발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귀농인이 돈을 들고 가봐야 얼마를 들고 가겠는가. 또 그 돈을 써봐야 지역 경제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1명의 귀농인이 갖고 있는 인적 네트워크, 전문적인 노하우 등이 지역에 고스란히 녹아나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귀농인들에게 있는 수도권에서의 경험은 농산물 판로 및 6차산업으로 발전하는 데 큰 자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역의 성공사례를 꼽자면.
▶문경의 오미자 생산단지를 들 수 있다. 문경이 오미자 재배를 시작할 때는 여러 가지 반대여론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오미자로 청을 만들고, 술을 빚어 대표적 지역 특산품으로 승화시켰다. 특히 오미자를 즐기러 오는 관광객들에게 지역 관광 자원인 문경새재를 자연스럽게 소개해 관광 수입도 증가하는 등 6차 산업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여기서 조금 더 욕심낸다면 6차산업지구로 지정하는 것이다. 현재 문경에는 생산지가 있고 가공 공장과 유통센터가 있다. 여기에 관광지까지 합치면 하나의 훌륭한 산업지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정부도 일자리가 창출되는 산업 허브 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만큼 문경 오미자단지 같은 전국의 생산'가공'유통'관광 집적지는 6차산업지구 지정의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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