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큰 무대에 서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늘 관객이 되어 바라보던 무대에 직접 서게 된 것이지요. 무척 설레었습니다. 왠지 우쭐해지기도 했지요.
무대에 올라보니 객석에서 바라볼 때와 사뭇 달랐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눈부신 조명 때문에 관객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오로지 '나'만이 존재하고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있는 것 같은 묘한 착각이 들었지요.
무대의 '장난'입니다. 찬란한 조명을 받게 되면 눈앞이 잘 보이지 않고 분별력을 잃게 되는 이유이지요. 그것이 공연 무대이건 권력의 무대이건 힘의 무대이건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박수소리에 그저 황홀하고 모두가 나에게 열광하고 있는 듯한 환상을 주는 곳이 무대였습니다.
참으로 매혹적이었지요. 설렘과 긴장감 자신감과 황홀함이 교차하는, 그래서 내려오고 싶지 않은 곳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현실과 떨어져 있는 듯한 묘한 공간감은 사람을 붕 뜨게 하는 마력마저 있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최근 인터뷰에서 '옛날에 늘 염려 속에서 무대에 섰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무대서 진정한 자유로움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무대의 장난에서 벗어났다는 이야기처럼 들렸습니다. 좋은 공연을 위해 '사나운 여성'(dragon lady)으로 악명 높았던 그녀가 최고의 모습만을 보여줘야겠다는 얽매임에서 풀려났다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춤꾼 공옥진은 '무대에 서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적막강산에 혼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첼리스트 장한나는 무대 체질이라고 합니다. 무대에서 오히려 평소 실력의 120%를 발휘한다고 하니 무대는 성격이나 세월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나 봅니다.
분명한 것은 바라보는 무대와 실제로 서 있는 무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객석에 앉아서 바라보는 무대는 감동하고 환호할 대상이었습니다. 반면에 무대에 올라보니 무대는 꿈을 꾸게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자신이 최고이며 모두가 나에게 환호하기를 바라는 꿈 말입니다.
그러기에 무대는 헛된 욕망이 번득이고 착각이 춤을 추는 '묘한 장난'의 터가 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가끔씩 사람을 바보처럼 만들고 망가뜨리게까지 하는.
무대는 타다 곧 사라지는 불꽃 같았습니다.
김순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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