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通]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자 인술봉사에 바쁜 의사 백승희 씨

입력 2013-11-09 07:47:29

치료과정 방사능 피폭 사실은 두렵지만…베풂으로 얻는 행복 말로 다 못하죠

그는 소위 말하는 명품과는 거리가 멀다. 몇 년째 신고 다니는 구두는 동네 대형마트에서 산 것이고, 들고 다니는 가방은 '짝퉁'이다. 휴대전화는 그 흔한 스마트폰조차 아직 없이 구형 폴더폰을 고집하고 있다. 그냥 편하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그러나 그는 '부자'다. 현금 1억원을 기부금으로 쾌척한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 정부에서 검증받은 '저축왕'이기도 하지만 마음이 더 풍요롭기 때문이다. 병원을 운영하면서 매주 대구시립 희망원을 찾아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실천하고 있는 백승희(47) 사랑모아통증의학과 의원 대표원장의 삶이다.

◆방사선 두렵지만 환자 외면 못해

6일 오후 대구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대구시립 희망원. 오갈 곳 없는 노숙인들을 위한 사회복지시설인 이곳 물리치료실에 몸 여기저기가 아프다는 환자들이 길게 줄을 섰다. 매주 한 번씩 진료 봉사활동을 펴고 있는 백 원장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병상 사이를 이리저리 바쁘게 왔다갔다하기를 2시간. 40여 명에 이르는 환자들의 치료를 마친 그가 마침내 오른손에 끼고 있던 두툼한 장갑을 벗고 악수를 청했다. 그런데 그의 엄지손톱은 보기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나머지 손가락도 습진에 걸린 것처럼 불그스레한 게 평범한 왼손과는 뚜렷이 대비됐다.

"방사선 피폭을 줄이기 위해 납 가운, 특수 고글과 특수장갑을 몇 겹으로 끼고 일하지만 어쩔 수 없는 직업병입니다. 정확한 시술을 위해서는 'C-arm'(이동형 X-선 투시 촬영장치) 이용이 불가피하거든요. 그래서 후배들도 저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 면역력의 한계치를 제가 '실험'하고 있는 중이거든요. 아마도 제가 전 세계에서 방사선 피폭량이 가장 많은 의사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하하하."

그는 2년째 희망원에서 재능 기부를 하고 있다. 대당 7천만원 정도 하는 C-arm도 그가 기증한 것이다. 처음에는 이 기계가 갖춰져 있지 않았던 터라 20년 경력의 '감'으로만 치료했지만 스스로 만족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X-선 장비에 손을 집어넣을 때마다 목숨이 짧아진다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들거든요. 후배 의사가 결국 피부암에 걸려 세상을 떠난 일도 있고요. 하지만 저 혼자 오래 살겠다고 편하게 치료할 수도 없잖습니까? X-선 영상을 봐야 인체 내부의 원하는 부위에 정확하게 통증완화 물질을 주삿바늘로 주입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큰절까지 하면서 연신 고맙다고 말하는 환자들을 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겠지만요."

그가 올해 초부터 다이어트에 돌입한 것도 같은 연유에서다. 88㎏이던 체중을 15㎏이나 줄였다. 스스로 건강해야 환자들을 낫게 해주는 데에서 얻는 보람을 오랫동안 누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위험한 일을 하면서 언젠가 암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야 늘 있었지만 제 건강을 돌보는 데에는 소홀했습니다. 병원 일로 파김치가 되어서 집에 들어오면 뻗어버리기 일쑤였지요. 그런데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일찍 죽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한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새벽과 저녁마다 집 근처 수성못을 죽기 살기로 뛰었더니 석 달 만에 정상 체중으로 돌아오더군요. 요즘은 환자들도 보기 좋다고 칭찬해주시고요."

◆"좋은 일 하시는 의사 선생님" 칭찬

백 원장은 지난달 29일 큰 상을 받았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50회 저축의 날' 행사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은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모았기에 하는 궁금증이 들기 마련이다.

"12년째 병원을 운영하면서 적지 않은 돈을 번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저축 금액보다는 제 평소 생활에 더 큰 점수를 주신 것 같습니다. 지난해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된 일, 희망원 진료 봉사, 꾸준히 해온 각종 복지단체 기부 등이지요. 물론 어릴 때부터 저축을 꾸준히 해오기도 했습니다. 원래 저 자신을 꾸미는 데에는 관심이 없는 데다 병원 일에 워낙 바쁘다 보니 돈 쓸 시간도 없고요."

그는 지난해 5월 대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아너 소사이어티'에 네 번째 회원으로 가입했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사회지도층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자는 차원에서 2007년 만든 개인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이다. 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할 경우 회원 자격을 얻는다. 현재 대구에는 13명의 회원이 있으며, 그는 1억원을 한꺼번에 냈다.

"경찰관인 후배의 권유로 복지시설 몇 곳을 정기적으로 후원해왔는데 아는 공무원 한 분이 아너 소사이어티에 대해 알려주시더군요. 대구에는 고액 기부자가 상대적으로 적다면서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지역 의료계에도 기부 문화를 한 번 불러일으켜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촉매 역할을 한 번 해보겠다는 뜻에서 곧바로 기탁했고요. 이 일이 알려지면서 은사님과 선후배들, 환자들로부터 격려 전화를 많이 받았지만 대구 사회에 작은 기여나마 제 힘으로 했다는 게 더 기쁩니다."

백 원장은 어려운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 지역 사회를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병원 이름도 그런 뜻에서 지었다. 그 자신의 장래 희망도 복지재단이나 사회공헌재단을 설립하는 것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지역의 예술인을 지원하는 사업도 구상 중이다.

"기부는 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거나 결심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지레 '기부는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러나 베풂을 통해서 얻는 행복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만 해도 의사로서 재능 기부를 하면서 말 그대로 힐링을 얻고 있거든요. 그런 즐거움을 깨닫는 분들이 늘어나면 대구가, 우리나라가 훨씬 살 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통증 분야 자문의사로 활동하며 지식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그는 2011년에는 병원 전 직원이 참여하는 '사랑모아 봉사단'을 발족해 함께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메스 대신 테니스 라켓과 베이스 기타

백 원장은 그냥 멍하게 사는 게 정말 싫다고 했다. 이런저런 모임을 만들고, 다양한 취미활동에 몰두하는 이유다. 월요일에는 대학 선후배들과 그룹사운드 연습을 하고, 화요일에는 야간 진료, 수요일에는 희망원 진료 봉사를 마친 뒤 저녁에 테니스를 즐긴다. 또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각종 모임에 참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식이다. 그는 지난 3월, 4년 임기의 대구시테니스협회 제10대 회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테니스는 공무원이셨던 선친에게 5살 때부터 배웠습니다. 새벽마다 아버지의 자전거 뒷자리에 올라타고 함께 나가 제 키만한 라켓으로 연습을 했는데 신동 소리를 듣기도 했지요. 이후 한동안 손을 놓고 있다가 공중보건의를 마치고 나서 다시 시작했는데 저의 체력 유지 비결입니다. 협회장 직은 김동구 전 협회장께서 물러나시면서 "테니스를 아는 사람이라야 한다"며 권하셔서 젊은 나이에 맡았습니다. 어깨가 무겁습니다만 대구에 남녀 실업팀을 만드는 것을 당면 목표로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그의 선친은 관선 시절 경북 영풍'청도'성주'금릉군수를 지내고 공직에서 퇴임한 백장현 씨다. 백 씨는 1993년부터 1997년까지는 경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을 지낸 바 있다.

그는 록밴드의 베이스 주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경북대 의대 그룹사운드 '메디컬 사운드' 동기'후배 7명으로 'MS 포에버'란 팀을 만들어 병원 옥상에 마련한 연습실에서 틈날 때마다 실력을 키우고 있다. 대구시의사회 등 각종 행사에도 출연하고 있다.

"내년에는 단독 콘서트를 한 번 열어볼 생각입니다. 지천명의 나이가 되기 전에 지나온 인생 전반기를 되돌아보자는 저희끼리의 약속이지요. 수익금은 물론 소외된 계층을 위해 모두 쓸 예정입니다. 다들 바쁘게 사느라 연주 솜씨는 부족하지만 스트레스 해소에는 그만이라 재미가 적지 않습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그가 도리어 질문을 하나 던졌다. 자신의 인생이 야구로 치면 몇 회 정도로 보이느냐고 물었다. 길게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인생이 남은 인생보다 좀 더 많을 테니 6회쯤 아니겠느냐"라고 답했더니 그는 정색했다.

"저는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의 '항상 갈망하라.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반대로 '초심으로 돌아가라'라는 말은 싫어합니다. 저도 사회활동을 하면서 결정적 위기를 두어 번 겪었습니다만 그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려 애쓴 덕분에 '멘탈'이 더 강인해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더불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제 꿈을 이룰 때까지 계속 노력해야죠. 그래서 제 인생은 지금이 1회입니다."

※백승희 원장=1966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대구초교'경복중'경원고를 거쳐 경북대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통증의학 세부 전문의이며 의학 석'박사 학위는 각각 영남대와 대구가톨릭대에서 받았다. 그는 "모친의 권유로 의대에 진학했는데 레지던트를 마칠 때까지는 너무 힘들어서 어머니 원망을 많이 하기도 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2002년 개원, 전체 진료환자의 30%가 타지역에서 올 정도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그는 중국 역사소설에도 밝다. 그는 "삼국지와 초한지를 서른 번 정도씩 통독했고 새로 나오는 관련 서적도 거의 빼놓지 않고 읽는 편"이라며 "병원과 인생 경영에 큰 도움이 된다"고 귀띔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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