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동락] 아파트 고양이

입력 2013-11-07 14:24:24

요즘 아침저녁으로 나다닐 때마다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목을 쭉 빼고 차창 밖을 둘러보는 버릇이 생겼다. 다름 아닌 이사 이후 생긴 새 이웃 때문이다. 근사한 턱시도를 빼입은 멋쟁이와 보기만 해도 윤기가 넘쳐흐르는 매끈한 검정 재킷을 걸쳐 입은 애교쟁이. 이 두 마리 고양이가 바로 새로 생긴 이웃으로 매일 나의 출퇴근길을 설레고 즐겁게 해 준다.

하지만 녀석들이 늘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머무는 것은 아닌지라 매번 마주치는 것은 아니기에 고양이와 마주치는 날이면 네 잎 클로버를 찾은 마냥 괜스레 기분이 좋고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은 나만이 아니라 아침에 학교나 유치원으로 향하는 꼬맹이들도 매한가지다. 그저께 아침엔 '고양이야, 고양이야~'하고 나름대로 음률을 붙여서 노래를 부르며 엄마 손을 꼭 잡고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꼬맹이들을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고양이에게 보내는 순수한 마음이 예쁘기도 했고 그 속에서 나와 비슷한 마음이 느껴져서 동질감이 들기도 했다.

어린아이들이라 고양이를 무서워할 법도 하건만 이렇게 노래까지 부르며 고양이를 찾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아파트 고양이들이 너무나 사람에게 친숙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이 녀석들은 꼬맹이들이 만지고 옆에 있어도 전혀 귀찮아하지 않고 느긋하게 곁에 누워 있곤 한다. 이런 태도 때문에 녀석들은 이 아파트의 터줏대감이자 귀염둥이로 자리매김했다.

하루 종일 온 아파트를 자신의 정원인 마냥 여기저기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햇볕을 쬐고, 아파트 풀밭에서 뒹굴기도 하는 통에 어디선가 온몸에 풀씨를 잔뜩 붙이고 꼬질꼬질한 모습인 아파트 고양이들을 만나면 하루 종일 집에서 자고만 있을 우리 집 고양이들이 떠오른다. 집 고양이(indoor cat)나 밖에서 사는 고양이나 다 장단점은 있겠지만, 사람을 가리지 않고 반기는 아파트 고양이들의 모습만큼은 우리 집 녀석들도 꼭 좀 본받았으면 싶다.

사실 이 녀석들이 이토록 사람과 친숙한 이유는 바로 '슈퍼 아주머니'가 밥을 챙겨주기 때문이다. 원래는 길냥이였던 턱시도 녀석의 밥을 슈퍼 아주머니가 챙겨주기 시작하면서 슈퍼 앞에 자리를 잡았고 밥그릇, 물그릇부터 시작해서 상자까지 차려진 제법 그럴듯한 살림살이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 검정냥이도 찾아와 밥을 먹기 시작했다고 했다.

턱시도냥이가 찾아오는 아이들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얌전히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너그러운 성격의 고양이라면 검정냥이는 애교도 많고 장난기도 많은 장난꾸러기다. 때론 버릇없이 주차된 차 위에 떡하니 올라가서 일광욕하기도 하고 대담하게 경비실 앞에 경비아저씨가 벗어놓은 장갑을 가지고 장난치기도 한다. 그러다가 사람과 눈을 마주치면 곧장 다가와서 애교를 부리는 것이다.

이 고양이들을 보고 있자면 예전에 읽었던 '도서관 고양이 듀이'가 생각난다. 추운 겨울날 도서 반납함에 버려져 있던 약하디 약한 아기고양이였던 듀이는 도서관에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자라면서 허물없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법을 배웠고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먼저 다가가 끝내는 자신을 좋아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었다. 그리고 이 마음을 사로잡는 힘 덕에 도서관을 상징하는 도서관 고양이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내 아파트의 이웃 고양이 역시, 고양이를 싫어하던 사람이라도 고양이에 대한 싫은 마음들이 사라지게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마법의 힘을 가진 고양이들을 접하고 길냥이들과 사람이 서로 미워하지 않고 아껴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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