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만어] 국민타자의 추락

입력 2013-11-05 07:36:23

이승엽만큼 우리에게 즐거움과 환희를 안겨준 야구선수는 일찍이 없었다. 삼성에 첫 시리즈 우승을 안겨준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의 짜릿한 3점짜리 동점 홈런, 2003년 대구야구장을 잠자리채로 뒤덮게 한 56호 홈런,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터트린 결승 홈런…. 그를 '국민타자'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취재기자로서 이승엽의 고교 시절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필자로서는 그가 맹활약할 때마다 남다른 감회와 기쁨을 느끼곤 했다.

그렇지만 그가 8년간의 일본생활을 마치고 삼성에 돌아왔을 때"선수생활이 그리 오래가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나이를 고려했기 때문이 아니라, 귀국 후 거처를 서울로 잡았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처자를 외지에 두고 홀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묘한 증후군을 겪는다. 혼자 생활하면 생체리듬이 불규칙해지고 컨디션 관리가 어려운 것이 보통인데, 스케줄이 빡빡하고 몸 관리에 신경 써야 할 운동선수라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운동을 하는 것은 아무리 야구천재라고 해도 무리한 일이다.

그는 올 시즌 중에도 그랬지만 한국시리즈 내내 부진했다. 그에게 기대했던 '결정적인 한 방'은 결국 나오지 않았다. 6차전 때 그가 타석에서 몸쪽으로 오는 공을 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일부 관중들이 "아예 맞아라"라고 야유를 퍼붓는 것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했다. 마지막 7차전에서 동점 안타를 때려냈지만, 그의 명성에 걸맞지 않은 초라한 성적이었다. 그가 타석에 설 때마다 홈런을 펑펑 쳐올리던 과거 활약상을 떠올리면서 용쓰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다. 언제나 영웅이 추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씁쓸하기 짝이 없다.

그는 야구 하나로 부와 명성을 충분히 얻었다. '국민타자'라는 영광스런 별칭은 물론이거니와, 서울에 300억원대 빌딩을 갖고 있는 부자다. 그런 만큼 더 이상 선수생활에 욕심을 내본들 무엇할까. 길어봤자 1, 2년 정도가 아니겠는가. 자신의 명성이 퇴색되지 않았을 때 후진을 위해 길을 터주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진로 선택은 전적으로 그의 몫이지만, 현재로는 선수생활 연장 쪽에 무게가 쏠리고 있는 분위기다. 그렇지만'아름다운 퇴장'은 비단 정치인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20년간 그의 야구인생을 지켜본 팬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에 하는 하찮은 충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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