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식 주먹밥·볶음밥·어탕국수…한국인 입맛에 딱!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는 곳곳에서 도마뱀을 볼 수 있다. 공항청사 벽에도 도마뱀이 붙어 있고, 도로에서도 차량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다닌다. 마치 이곳이 열대지방이라는 표식 같다.
바이오 디젤유를 생산하는 팜나무가 밀림을 뒤덮고 있는 말레이시아. 국민 중 절반이 무슬림이고 30%가 중국계 불교, 20%가 힌두교도인 이 나라의 주식은 쌀이다. 특별한 외식 메뉴가 아닌 그냥 보통 쌀밥에다 약간의 조리와 장식만 더해 관광상품화에 성공한 말레이시아를 보면 우리의 '밥집'도 산업화, 세계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말레이 쌀밥에 환호하는 세계의 미식가들
"말레이시아의 대표적인 전통음식은 한국의 쌀밥과 비슷한 나시라막과 나시고랭, 그리고 락사를 들 수 있지요."말레이시아 관광청 직원 로살리나(40'여) 씨가 조용조용한 말씨로 취재진을 안내했다. 한국말이 능숙하고 자국의 전통음식 홍보에도 매우 적극적인 그녀는 달리는 차 안에서부터 전통음식을 자랑했다. 쌀을 주 재료로 주먹밥 형태로 만드는 나시라막(Nasi Lemak)과 볶음밥 스타일인 나시고랭(Lasi Goreng), 말레이시아식 어탕국수인 락사(Laksa) 등 세 가지를 한 곳에서 맛볼 수 있는 곳으로 간단다. 로살리나 씨가 안내한 곳은 쿠알라룸푸르 방살공원 로롱 마루트 지역의 '르봉'이라는 전통음식점이다. 말레이어로 죽순이라는 뜻의 르봉은 말레이시아 최초의 우주인이 직접 경영하는 음식점으로 유명하다. 말레이시아 관광청은 외국인 손님에게 자국의 전통음식을 소개하는 곳으로 이 가게를 많이 활용하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서자 식당 매니저 팸(66'여) 씨가 친절하게 손님을 맞았다. 이 집도 여느 유명 맛집과 마찬가지로 벽면 한쪽을 수상 내역으로 채워놨다. 주방장 이스마엘 아함메드(51) 씨는 사장이면서 주방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사장이 직접 주방 일을 해야 전통 맛을 그대로 지켜나갈 수 있기 때문이란다. 말레이시아 최초의 우주비행사인 쎄이 슈쿨(48) 씨와는 동업 관계다. 로살리나 씨는 "두 사람 모두 말레이시아 전통음식의 산업화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고 치켜세웠다.
팸 씨는 "말레이시아 전통음식은 한식과 비슷해 한국 손님들이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외에도 독일과 일본, 호주, 미국, 싱가포르, 영국인 순으로 많이 찾아오는 데 그중에는 독일 사람들이 가장 많다. 이 음식점의 종업원 수는 50명 정도이고 좌석 수는 160석 규모다. 특별한 행사와 단체 관광객들을 위한 연회석도 마련돼 있다. 말레이시아 전통음식을 뷔페로 차려 놓으면 취향대로 골라 먹을 수 있어서 외국인 손님들이 좋아한다고. 그래서 점심은 주로 뷔페식으로 하고 저녁은 손님이 따로 주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맛 삼총사 나시라막, 나시고랭, 락사
로살리나 씨는 "향신료를 많이 쓰지 않는 말레이시아 전통음식은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쌀을 재료로 한 나시라막, 나시고랭, 락사 모두 한국인들에게는 딱 맞다고. 메뉴판을 보고 주문을 했다. 나시라막과 나시고랭의 가격은 17~18링겟. 우리 돈으로 5천~6천원 선이다. 국수인 락사도 17링겟이다.
나시라막은 코코넛이 들어간 흰 쌀밥에 멸치조림이 주 반찬이다. 멸치와 함께 땅콩, 칠리소스, 오이도 반찬으로 곁들인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아침식사로 즐겨 먹는 나시라막의 원형은 쌀밥 위에 멸치조림과 찐 계란 한쪽 등 반찬을 얹은 형태의 주먹밥이다. 쌀밥을 뭉쳐 찐 계란과 멸치조림을 얹고 바나나 잎을 이용해 원추형 뿔처럼 꽁꽁 싼 것이 전통 스타일이다. 뾰족하게 말아 낸 삼각김밥과 모양이 비슷하다. 이처럼 바나나잎으로 밥을 싸는 형태는 베트남과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태평양 연안과 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고기나 햄을 밥에 얹어 비닐에 싼 간단한 주먹밥은 하와이의 작은 슈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나시라막이 전통음식으로 부각되면서 접시에 차려 내거나 해산물을 곁들이는 등 맛과 장식이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나시라막보다 산업화에 한 발짝 앞선 음식이 나시고랭이다. 땅콩과 야채, 해산물을 넣고 식은 밥을 볶아 낸 나시고랭은 우리의 볶음밥과 흡사하다. 말레이시아 전통음식의 경쟁력은 나시고랭에서 찾을 수 있다. 나시고랭을 담은 접시에 연꽃처럼 생긴 생강꽃으로 장식을 하는 점이 이채롭다. 르봉에서는 나시고랭을 깜풍식과 차이나식, 파타야식, 시푸드식으로 재료와 양념에 따라 4가지 종류로 조리한다. 우리로 치면 고추볶음밥, 새우볶음밥, 해산물 볶음밥으로 모두 한 접시 음식이다. 말레이 무슬림들이 먹는 전통 스타일이다. 이 가게의 해산물 나시고랭은 상추를 깔고 그 위에 볶음밥을 얹었다. 밥 속에 볶은 새우가 들어 있어 땅콩과 함께 고소한 맛을 더욱 북돋운다. 살짝 데친 오징어 살도 부드러운 식감을 낸다. 향채도 약간 넣어 동남아 고유의 음식 풍을 느낄 수 있다. 접시에는 오이 두 쪽과 토마토 두 쪽이 곁들여져 있다. 원래 찰기가 없는 쌀밥이지만 다양한 양념과 재료에서 나온 찰기로 잘 뭉쳐진다. 깜풍식 나시고랭도 일품이다. 풋고추를 넣고 밥을 볶아내 매콤하고 깔끔한 맛이다. 나시고랭과 나시라막 모두 '삼발소스'라는 말레이시아 간장을 곁들여 먹는다. 짭짤한 이 소스를 밥에 끼얹으면 김칫국물처럼 불그스레하게 물든다.
◆가장 전통적인 음식에서 세계적인 경쟁력 나와
밥 종류인 나시라막, 나시고랭과 더불어 국수의 일종인 락사도 유명하다. 락사는 각종 생선을 푹 고아 고기는 체로 걸러 낸 뒤 걸쭉한 육수에 밀가루 면을 넣어 끓여 낸 생선국수다. 한국의 어탕국수가 먼저인지, 말레이시아 락사가 먼저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여하튼 두 음식이 너무나 닮아 헷갈릴 정도다. 해산물을 이용한 락사는 이곳 지명을 따서 '피네락사'라고 하고 신맛이 난다고 해서 '아쌈락사'라고도 부른다. 락사는 생강꽃만 잘게 다져 향신료로 쓴다. 락사는 우선 '콤봉'(Kem bong)이라는 이름의 고등어와 싸진피시라는 생선을 솥에 넣고 푹 끓인 뒤 뼈를 발라내고 살을 으깨 국물을 만든다. 타마린(Tamarind)이라는 신맛 나는 열대 과일과 양파, 고추를 갈아 넣고 다시 육수를 끓이면 약간 신맛이 난다. 여기에 풍미를 더하는 '폴리고늄'(Polygonum)이라는 나뭇잎을 넣고 면을 끓여낸다. 락사 맛은 우리의 추어탕 국수와 비슷하다. 어탕국수와도 맛이 너무나 흡사하다. 타마린의 향이 코를 약간 자극하는 것만 차이가 날 뿐 고추의 매운맛 덕분에 처음 먹는 음식인데도 낯설지가 않다. 말레이시아 전통음식의 산업화 길을 앞장서고 있는 락사는 이미 라면처럼 인스턴트 포장 식품으로 개발되어 판매 중이다. 말레이시아인들은 음식을 먹은 뒤 전통 차를 즐긴다. '테 타릭'(Teh tarik)이라는 이름의 전통차다. 묽은 커피처럼 생겼는데 향이 은은하고 맛이 구수하다. 옅은 커피맛 같지만 커피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나무 진액 같은 맛이 나고 뜨거운 우유에 섞어서 마시면 부드러운 코코아의 맛 같기도 하다.
말레이시아의 나시라막과 나시고랭, 락사는 쌀밥과 볶음밥, 국수가 너무 흔한 음식이어서 특화할 수 없고 산업화의 소재로서 가치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고정관념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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