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재의 은퇴일기] 11월이 되면

입력 2013-11-02 08:00:00

가을이 깊어갑니다. 나뭇잎들이 아름답게 물들면 습관처럼 한 해의 끝을 생각하게 됩니다. 11월이 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벌써 한 해가 다 갔다는 생각, 아니면 가을도 겨울도 아닌 어정쩡한 달. 어느 것이어도 상관없겠습니다.

11월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지요. '농촌에서는 수확이 끝나 느긋한 분위기에 젖는다. 입동(立冬)이 들지만 아직 추위는 느껴지지 않고, 음력으로는 상달인 10월에 해당되어 옛날에는 일월산천에 수확제를 올렸다. 또 화롯가에 둘러앉아 추위를 막는 시절 음식으로 쇠고기를 구워 먹었다.' 요약하면 농촌은 편안하고 날씨는 추워지며 다가올 겨울을 위해 준비하는 달일 듯합니다.

각 달의 명칭을 아주 근사하게 붙이고 있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11월에게 어떤 이름을 지어주었을까요.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입니다. 역시 멋집니다. 나뭇잎을 떨어뜨린 나무들은 앙상하여 모든 게 사라진 듯하지만 몸속에는 봄을 준비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소멸에서조차 희망을 찾는 그들의 지혜가 놀랍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날카로움이 인상적입니다.

시인 김용택은 11월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강가에 앉아/ 헌옷에 붙은 풀씨들을 떼어내며 당신/ 그리워 눈물 납니다/ 못 견디겠어요/ 아무도 닿지 못할/ 세상의 외롬이/ 마른 풀잎 끝처럼 뼈에 와 닿습니다' ('11월의 노래' 중에서)

시인은 그리움에 못 견디는 달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낙엽이 뒹굽니다.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귀한 계절이 왔습니다. 너무 들뜨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 않아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좋은 달이지요. 그동안 아무 일도 아닌 것에 우쭐대거나 화를 내지 않았는지, 한 줌도 안 되는 힘을 마치 대단한 것으로 여기며 남에게 피해나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기 좋은 계절입니다.

11월에는 첼로의 음색을 닮은 사람이고 싶어집니다. 너무 가볍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은 소리로 듣는 사람에게 위로를 건네듯, 깊고 따뜻한 마음의 소리로 이웃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은 달이기도 합니다. 첼로는 이미 슬픔을 알아버린 사람처럼 그 소리는 묵직하고 깊어 긴 여운을 줍니다. 울림이 깊은 사람이 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겨울의 문턱인 11월, 겸손과 따뜻함과 이웃을 생각하게 됩니다.

김순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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