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通] 대구서 외국인 관광객 위한 게스트하우스 연 김성훈 씨

입력 2013-11-02 07:26:24

사라질 위기 고향동네 스토리 입혀 보존…'대구가 재미없다'는 편견 깨

주머니가 얇은 배낭여행족과 호스텔(hostel)은 실과 바늘의 관계다. 호텔보다 훨씬 저렴한데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과 어울리면서 살아있는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 덕분이다. 세계적인 관광지마다 백패커(backpacker)들을 위한 호스텔이 즐비한 이유다.

대구에도 이런 숙박시설들이 하나 둘 등장하고 있다. 흔히들 '보고 먹고 즐길 게 없는 도시'라고 말하는 대구로서는 의외의 현상이다. 하지만 지난 7월 게스트하우스 '더 스타일'을 연 김성훈(42) ㈜헨리스 대표는 확신에 차 있었다. "밖에서 보면 대구는 특별한 도시입니다. 다만 그 안에 사는 우리가 가능성을 모를 뿐이죠."

◆알고 보면 대구는 매력적인 도시

'더 스타일'은 대구 중구 서내동에 있다. 혼잡한 북성로 공구거리에서 몇 걸음 떨어져 있다. 하지만 주변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1954년 현재 위치에 들어선 종로초등학교를 비롯, 근대와 현대식 건물이 공존하고 있어 색다른 느낌을 준다. 일제강점기의 유물인 일본식 주택도 여럿 남아 있다.

이곳은 김 대표의 유년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고향이다. 그러나 골목 풍경은 코흘리개들이 뛰어놀던 30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김 대표가 터를 잡은 이유다. 게스트하우스 역시 창고로 쓰이던 낡은 건물을 내부만 고쳐서 쓰고 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가 개발로 훼손되기 전에 스토리를 입혀서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북성로와 서성로 일대는 대구의 대표적인 올드 타운 가운데 하나인 만큼 그 자체로도 충분히 관광자원이 된다고도 봤고요. 옛 모습 그대로여서 시민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은 광경이지만 여행객들에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곳으로 다가설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게스트하우스는 모르는 여러 사람이 같은 방에서 잠을 잘 수도 있고 독립된 방을 이용할 수도 있는 숙박 형태다. 취사시설이나 화장실, 샤워룸 등은 공동으로 사용한다. 민박과 비슷하지만 외국인이 주요 고객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다. '더 스타일' 또한 다양한 규모의 방과 함께 1층에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손님들이 커피 한잔을 나누면서 휴식을 취하거나 수다를 떨면서 정보를 공유하도록 했다. 숙박비도 2만원(다인실 하루 기준) 정도여서 부담스럽지 않다.

'더 스타일'에 대한 이용객의 평가는 좋은 편이다. 호스텔 예약을 대행해주는 해외 유명 사이트를 검색해봤더니 '대구 도심과 지하철에 접근하기 편리하며 스태프들은 유머가 넘치는 청년들' '침대가 편해서 다음에도 묵고 싶다' 등의 후기들이 올라와 있었다. 국내 포털 사이트에도 '생긴지 얼마 안 된 곳이라 깨끗하고 깔끔하다' '저녁에 북성로에 가서 연탄 불고기와 우동 먹기에 좋다'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우리의 근대 역사에 대해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라는 글들이 눈에 띄었다.

"지역의 대표적 관광자원으로 자리 잡은 근대 문화골목을 찾는 이들이 찾아오기 쉬운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대구에 대한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 드리려고 스태프들이 노력하는 점을 좋게 봐주신 듯하기도 하고요. 얼마 전에는 대구 오페라축제 참가를 위해 묵었던 팬플룻팀이 미니 연주회를 열어주셔서 동네 주민들한테도 칭찬을 들었습니다. 하하하!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동네에 생기가 돈다고 어르신들이 말씀하실 때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지요."

김 대표는 또 다른 '실험'을 조만간 해볼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여행자들을 위한 인력거를 운영하겠다는 아이디어였다. 외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대구에서는 처음일 것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일단 2대로 시작하지만 10대까지 늘릴 생각입니다. 루트는 대구 도심 일대고요. 센스 있고 입담 좋은 인력거꾼들이 구석구석을 안내하며 대구의 역사와 문화를 전할 겁니다. 대구가 재미없는 도시라는 편견을 깨부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사업가에서 사회적 기업가로

김 대표가 게스트하우스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 이면에는 그의 독특한 인생 경험이 있다. 원래 여행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관광과는 거리가 먼 공구 유통업'건설회사가 그의 본업이었다. 경북고를 거쳐 한양대 독문과를 나온 그는 일본과 영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처음에는 소위 명품이라고 불리는 해외 유명 패션브랜드 기업에 취직했다. 영어와 일본어, 독일어가 가능했던 덕분이었다. 그러나 샐러리맨 생활은 1년도 채 하지 않았다. 돈을 크게 벌어봐야겠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이후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았던 DIY 전문점, 건축자재 백화점, 건설업체 등을 운영했고 지금도 일본산 전동공구 수입업체 대표 직함을 갖고 있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쓰나미로 일본 현지 업체가 생산 차질을 빚으면서 저희 회사도 덩달아 멈춰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때 세계 일주를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회사 경영은 직원들이 잘해줄 것으로 믿었고요. 여행 동안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근원적인 고민을 진지하게 했습니다. 결국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고, 고향에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졌지요."

꼬박 2년간 세계를 유랑하다 온 그의 경험은 곧바로 게스트하우스로 이어졌다. 하지만 애당초 숙박업체 대표가 목표는 아니었다. 대구를 세계로, 세계를 대구로 이끄는 게 꿈이다. 대구를 찾는 해외 여행객들을 위한 상품을 개발하는 여행사인 ㈜헨리스도 그래서 설립했고, 대구의 매력을 재창조하려는 노력도 계속 하고 있다. 그런 소문을 듣고 말레이시아 한 방송사에서 대구와 그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촬영해가기도 했다.

"예전에 다녀온 곳까지 포함하면 80여 개 국가를 다녀왔더군요. 그러면서 정말 별별 사람을 다 만났고, 스스로를 버리는 법을 배운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여러 개의 직함을 갖고 있지만 어디에도 묶여 있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게스트하우스도 최대 주주일 뿐 실질적인 경영은 후배가 하고 있습니다. 저는 투자자(investor)로 남고 싶습니다. 그러면 주변에 확산할 만한 가치 있는 일들을 좀 더 많이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유기농 텃밭 가꾸면서 삶의 행복 찾아

지난 3월 대구에 정착한 뒤 그가 저지른 '사건' 중의 하나인 유기농 텃밭공동체 '헨리의 정원'도 같은 맥락이다. 헨리(Henry)는 그의 영어 이름이고, 정원이라고 '거창하게' 이름 붙였지만 아름답게 조경이 된 공간이 아니라 그냥 흔한 텃밭이다.

"대구 수성구 만촌동의 야트막한 야산에서 회원 30여 명과 함께 온갖 채소를 키웁니다. 수확 철에는 현장에서 농산물을 판매하는 '파머스마켓'도 열고, 미술가들과 함께하는 '아트마켓'도 진행합니다. 여름에는 도심 속 캠핑장으로도 활용했습니다. 소문이 나면서 체험을 원하는 각급 학교'가정의 문의도 끊이지 않고 있는데 이런 곳들이 대구에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다들 이야기하시더군요."

그는 손재주도 많다. 게스트하우스의 침대는 직접 디자인했다. 인체에 무해한 환경등급을 받은 핀란드 산 자작나무를 수입해서 만들었다. 투숙객들이 가장 칭찬하는 것도 삐걱거리는 철제 이층침대 대신 편안한 목제 침대가 비치돼 있다는 점이다.

"제가 어릴 때부터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건축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목조 주택 짓는 법을 '헨리의 정원'에서 강의하기도 합니다. 제가 사는 집도 10여 년 전 건축사인 사촌형의 도움을 받아 손수 설계했습니다. 집사람은 아파트에 살고 싶다고 했지만 제가 아파트보다 더 편한 주택을 지어주겠노라고 했지요. 살아본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정원이 있는 주택이 주는 행복은 갑갑한 아파트에서 절대 누릴 수 없지요. 다행히 저희 가족들도 모두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입니다."

그는 다음 주에 호주로 떠날 예정이다. 하지만 편도 항공권만 구입해둔 상태다. 언제 다시 돌아올지 기약이 없는 것이다. 구체적인 정보도 없다. 현장에서 부딪히다 보면 답이 나온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배낭여행 노하우를 책으로 펴낼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그럴 만한 재주가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여행기를 내면 저를 따라하는 사람들이 생겨날까 봐 싫습니다. 여행은 각자의 느낌대로 해야 한다는 게 제 기본 원칙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구름처럼 마냥 흘러다니는 게 좋습니다. 대구를 찾는 외국인들이 늘어나는 것도 정형화된 루트 대신 자신만의 세계를 경험해보려는 것이죠. 그런 이방인들에게 대구 도심이 걷기만 해도 기분 좋은 곳이란 인상을 만드는 게 제가 할 일이고요."

인터뷰를 마칠 때쯤 그는 입고 있던 재킷의 단추를 풀었다. 속에 받쳐 입고 있던 셔츠에는 해골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겉보기에 점잖기만한 대구에도 김 대표 같은 '발칙한' 시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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