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동락] 고양이의 사냥 본능

입력 2013-10-31 14:15:44

철없던 어린 시절, 개미굴을 발견하면 죄다 헤집어보곤 했다. 개미를 해코지하려는 나쁜 마음은 아니었고 단지 그림책에서 봤던 개미굴이 땅 속 어디까지 연결이 되는지 궁금했었다. 또한 이야기 속에서만 보았던 '여왕개미'를 실제로 보고 싶기도 했다. 사실 이렇게 나에게 괴롭힘 당한 곤충은 개미만이 아니었다. 잠자리, 메뚜기, 나비가 내 앞을 지나갈 때면 꼭 잡아봐야 직성이 풀렸다.

언젠가 하굣길에 자그마한 나비를 잡아 집에서 키우기 위해 가져온 적도 있었다. 물론 문밖에서 어머니에게 제지당하고 놓아주었지만 말이다. 나이가 들어 나의 단순한 호기심으로 인한 행동들이 당하는 입장에선 고통스러운 일이란 것을 알게 된 이후엔 하지 않았다.

이렇게 생명의 존귀함에 대해서 깨닫게 된 다음부터는 어릴 때의 무지함 속에서 행했던 행동들에 일말의 죄책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실수로 개미 한 마리라도 밟지 않기 위해 자신이 걸어가는 길을 빗자루로 쓸고 다닌다는 스님만큼은 아니더라도 되도록이면 살아있는 생명체는 건드리지 않는다.

그러나 고양이들과 함께하면서 이런 내 마음가짐을 포기하고 마지못해 해야 하는 일들이 생겼다. 체셔가 어릴 때 일이다. 벽에 앉은 모기를 발견한 체셔가 잽싸게 앞발로 모기를 낚아채더니 미처 손쓸 새도 없이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닌가. 내가 어떠한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이미 모기를 먹어버린 체셔에게 황당함을 넘어서 감탄까지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바람에 남의 손을 빌리거나 화학적 효과(살충제나 살충기)로 모기를 쫓던 내가 그날 이후로 스스로 모기를 퇴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가끔 집 안에 들어온 모기나 자그마한 벌레들을 보면 흥분해서 날뛰기 시작하는 녀석들을 만약의 위험 사태에서 보호하기 위해서는 마지못해 내가 한 발 앞서서 벌레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급기야 얼마 전엔 정말 참기 힘든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내가 컴퓨터를 하는 동안 발코니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앨리샤를 보며 그저 여느 때처럼 '혼자서도 잘 노는구나'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얼마간 자리를 비웠다 돌아왔더니 내가 있던 방바닥에 빈사상태의 여치가 있었다. 너무 놀란 마음에 몇 차례나 비명을 질러대고 나서야 간신히 진정할 수 있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니 혹시나 말로만 듣던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길냥이들은 밥을 주는 사람들에게, 외출냥이들은 반려인에게 가끔 선물이랍시고 바퀴벌레 같은 곤충부터 설치류나 작은 새까지 자신이 잡은 전리품을 자랑삼아 가져온다는 얘기를 예전부터 종종 듣곤 했었기 때문이다. 이 선물은 고양이 나름대로의 감사의 표시 혹은 친근함의 표시기에 당황하거나 놀라지 말고 오히려 기뻐해 주거나 칭찬해 주라고들 했었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나는 당황스러움과 함께 약간의 섬뜩함마저 느꼈고 행동의 잔혹함에 살짝 실망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순간 예전에 지인에게 들었던 '고양이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무리 내겐 하나의 가족인 고양이라지만 사람 기준에 맞춰 고양이에게 도덕적이거나 양심적인 모습을 기대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고양이의 당황스러운 행동에 화를 내거나 질겁하기 전에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정말 틀린 말이 아니다. 고양이의 행동은 호기심에 멋모르고 곤충들을 괴롭히던 내 어릴 적 모습과 비슷하다. 하지만 사람이 아니기에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학습시키거나 '본능'을 억제하기를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때론 마음에 내키지 않더라도 이렇게 눈 질끈 감고 양보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나와 나의 가족인 반려묘와 행복한 동거를 위해서라면 말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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