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대기물질 측정망 만촌·대명동 두 곳 뿐…국내에는 기준도 없어
대구 대기 중의 미세먼지에서 1급 발암물질이 검출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반 주거지역에 있는 측정지점의 공기 속에서 발암물질인 '벤조(a)피렌'의 검출빈도가 90% 이상이었고, 농도도 짙은 수준을 보였다. 특히 가을'겨울철에 고농도를 나타냈다.
문제는 대구의 높은 발암위험성의 원인으로 벤조(a)피렌이 지적돼 왔지만, 국내에는 기준치가 없고 장기간 노출될 때 인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제대로 된 역학조사 한 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구 공기 속의 '고농도' 발암물질
대구 시민들은 고농도의 발암물질에 빈번하게 노출돼 온 것으로 드러났다. 한 달에 1번(24시간) 측정하는 국가 유해대기물질 측정망(대구 2곳) 수치를 분석한 결과 2007~2012년(72개월) 동안 1급 발암물질인 벤조(a)피렌이 만촌동 지점(동원초교)에서 71개월(98.6%), 대명동 지점(성명초교)에서 67개월(93.1%)이나 검출됐다.
심각한 것은 오염농도가 짙다는 점이다. 영국의 권고기준(연평균 1㎥당 0.25ng/㎥)을 적용할 경우 대구의 벤조(a)피렌 농도는 빈번하게 기준을 넘었다. 환경부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7년부터 2012년까지 6년간 벤조(a)피렌 연평균 농도가 기준을 초과한 경우는 대명동 지점이 5년(83.3%), 만촌동 지점이 4년(66.7%)이나 됐다. 대명동은 2007년에 0.52ng/㎥, 만촌동은 2007~2008년에 0.57~0.59ng/㎥를 기록하는 등 기준의 2배가 넘는 수치를 보였다.
특히 만촌동과 대명동 지점은 주택가인 데도 불구하고 자동차 매연이 더 많은 서울역 지점과 철강산업단지 한가운데인 포항 장흥동 지점에 비교해 연평균 농도가 비슷하거나 더 많기도 했다. 2007년 장흥동 지점이 0.54ng/㎥일 때 만촌동 지점은 0.57ng/㎥로 비슷했다. 2008년엔 서울역 지점이 0.31ng/㎥일 때 만촌동과 대명동 지점이 각각 0.59ng/㎥와 0.40ng/㎥로 더 짙은 농도를 보였다. 2009, 2010년에도 서울역, 장흥동, 만촌동 등의 지점은 비슷한 수치를 나타냈다.
◆가을'겨울철 짙어지는 농도
벤조(a)피렌 농도는 1년 중 가을'겨울철에 농도가 두드러지게 높아진다. 10~3월의 수치 평균이 4~9월 평균에 비해 2~3배에 이른다. 대구(만촌동+대명동)의 2007~2012년 월평균 벤조(a)피렌 농도를 보면, 4~9월에 0.22~0.25ng/㎥를 유지하다 10월 들어 0.35ng/㎥로 상승하기 시작한다. 이어 11월과 12월 각각 0.55ng/㎥와 0.78ng/㎥로 정점을 찍은 뒤 1월 0.65ng/㎥, 2월 0.39ng/㎥, 3월 0.28ng/㎥ 등으로 떨어진다.
이는 기존의 자동차 매연과 함께 가을'겨울철이 되면 난방연료 사용이 늘어나 전체 오염물질 배출량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풍속의 변화가 적고 대기의 순환이 떨어져 공기 중의 오염물질이 오랫동안 대구 도심 상공에 머물게 되면서 농도를 높이는 것이다. 일교차가 심해져 안개가 끼는 날이 많아지면서 대기 중에 수분 비율이 높아지고, 이 수분이 대기 중 오염물질의 응집을 촉진하게 돼 오염농도가 상승한다. 또 가을'겨울철 북서풍을 타고 중국의 스모그 등 오염물질이 한반도로 유입되는 점도 벤조(a)피렌 농도를 높이는 데 한몫한다.
김해동 계명대 지구환경학과 교수는 "기술적인 문제나 생활 패턴 등의 더딘 변화로 인해 대기로 배출되는 오염물질을 한두 해 사이 줄이긴 힘들다"며 "그렇기 때문에 지난해 소폭 줄어든 미세먼지 농도가 올해 다시 높아지듯이 유해대기물질의 농도도 다시 상승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유해대기물질 관리의 시작은 신뢰성 있는 측정자료
전문가들은 도시환경을 고려할 때 벤조(a)피렌 등 유해대기물질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도시는 인구가 많고 밀집돼 있기 때문에 노출집단의 다양성과 밀도가 높다. 그리고 도시 내에는 다양한 배출원이 분포돼 있다. 대규모 산업단지는 물론 도로 위의 자동차, 소형 소각장, 가정집의 난방 연료, 구이 음식점 등지에서 배출하는 매연과 유독가스가 상존해 있는 것.
유해대기물질 관리의 첫걸음은 측정지점과 방법을 개선해 신뢰성 있는 자료를 축적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현재 대구의 벤조(a)피렌 등 유해대기물질 측정망은 단 두 곳뿐이다. 이마저도 공단처럼 유해대기물질의 배출량이 많은 곳이 설치된 것이 아니라 거주지역에 있다. 월 1회 하루 동안(24시간) 측정하기 때문에 측정치의 대표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실제 오염도보다 낮게 측정되는 등 대기 오염 상태를 왜곡되게 반영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정부의 측정자료끼리도 수치가 일관성이 없는 등 측정의 정확성에 의문이 있다. 가령 국립환경과학원의 '대산지역 유해대기물질 조사 연구' 보고서(2012년)와 기존 유해대기물질 측정망의 지점은 서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문제는 비슷한 두 지점의 측정 수치도 오락가락한다는 것이다. 2011년 5월의 측정 수치의 경우 연구보고서는 0.32ng/㎥로 나왔고, 기존 측정망은 다소 낮은 0.19ng/㎥를 기록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반대로 연구보고서가 0.64ng/㎥이고, 기존 측정망이 이보다 2배 이상 높은 1.31ng/㎥를 보였다.
백성옥 영남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월 1회로 수집되는 자료 집단의 크기가 너무 작아서 통계처리가 힘든 실정"이라며 "미국처럼 6일마다 시료를 채취하거나 일본처럼 월 1회로 하되 전국 400여 개의 많은 측정 자료를 확보하는 등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주거지역 위주로 설치된 측정망을 대규모 오염물질 배출원인 산업단지로 이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홍유덕 국립환경과학원 대기환경연구과장은 "제한된 예산과 인원 때문에 측정망을 추가로 확보하거나 측정 횟수를 늘리는 일은 쉽지 않지만 계속해서 보완해가는 과도기로 보면 된다"며 "거주지역에 측정지점이 있는 것은 오염물질 피해자인 주민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우리나라 만의 벤조(a)피렌 기준을 도입하기 위해선 앞으로 인체 역학조사를 통한 위해도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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