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 세계의 희망으로] <17>새마을세계화사업의 과제들

입력 2013-10-31 07:59:35

"한국어→영어→현지어…주민 설득·의견 청취 너무 힘들어"

새마을세계화사업의 핵심은 새마을시범마을 조성과 해외 봉사단 파견이다. 현지 마을에서 1년 이상 함께 생활하며 주민들의 자립역량을 키우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북도가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함께 아프리카와 아시아 저개발국가에 시범마을을 조성한 지 3년이 지나면서 갖가지 문제점들도 드러나고 있다.

이달 4일 구미 금오산호텔에서는 새마을봉사단 해단식 및 평가보고회가 열렸다. 이날 보고회에서 1년간 봉사활동을 끝내고 돌아온 단원들은 다양한 목소리를 쏟아냈다. 봉사단원들은 현지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성 부족과 현지 상황에 맞지 않는 각종 사업, 부족한 현지 의식화 자료, 팀제로 인한 내부 갈등, 새마을운동의 유지 전략 부재 등 각 분야의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의사소통 문제와 전문성 확보 시급

새마을봉사단원들이 현지 마을에 파견됐을 때 가장 먼저 겪는 어려움은 의사소통이다. 공용어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부족마다 다른 언어를 쓰는데다 현지 언어를 배울 기회조차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각 시범마을에서는 영어를 할 줄 아는 현지인을 통역으로 고용해 함께 일을 하지만 주민들을 설득하거나 의견을 청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지 통역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다 보니 통역자가 의도적으로 사업 내용을 잘못 전달하거나 중간에서 이득을 챙기는 일도 간간이 발생하는 형편이다. 특히 현지어로 된 새마을운동 교육 자료가 턱없이 부족해 한글 교재를 영어로 번역한 뒤 현지어로 옮기는 수고를 거듭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재 내용이 엉성해지거나 내용이 부실해지는 경우도 빈번하다. 에티오피아 마이멕덴 마을에 파견됐던 서명섭 씨는 "현지 주민들을 상대로 교육할 때 동영상 자료를 활용하는데 현지어로 된 자료가 없어서 애를 먹었다"며 "한글 교재를 영어로 번역한 뒤 다시 현지어로 자막을 만드는 수고를 거듭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의사소통 문제는 주민들 간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 팀 안에 중장년인 시니어 단원과 대학생 단원들 간에도 세대 간 갈등이 적지 않다. 시니어 단원들은 새마을운동의 취지를 잘 이해하고 풍부한 경험이 강점이지만 현지 언어 습득이 늦고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주니어 단원들은 중장년 단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예 소통을 단절하는 경우가 상당수 발생했다. 이 때문에 탄자니아에서는 갈등을 빚은 봉사단원이 중도 귀국하기도 했고, 르완다의 한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세대별로 서로 등 돌린 봉사단원들과 중복해서 회의를 갖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에티오피아 한도데마을에 파견됐던 정애선 씨는 "팀제로 구성하긴 했는데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에 대한 교육이 없었고 갈등이 상존했다"며 "세대 간 소통과 공감을 이룰 수 있는 교육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전문성 확보도 과제다. 소득증대 사업이 주로 농업 분야에 치중되지만 봉사단원들의 전문성이나 체계적인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지 국가에 대한 사전 정보와 교육이 부실하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찾기 힘들다는 것. 이 때문에 농사와 양봉, 양계장, 가축은행 등 현장에서 농업기술을 전수하는 전문가가 관련 지식이 전혀 없거나 마을회관과 도로, 주거환경개선 사업을 추진하는 건축과 토목 경험이 없는 대학생들이 주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탄자니아 키보콰마을에 파견됐던 심용구 팀장은 "농업기술자와 전문가가 절실히 필요한데 적절한 인력을 찾기 힘들다"며 "경북도농업기술원 등에서 전문가를 파견하되 근무 기간을 인정해주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천편일률적인 사업 내용

새마을시범마을은 조성 초기 마을회관 등 기본 인프라를 구축한 뒤 환경 개선과 소득증대 사업으로 이어지는 수순을 밟는다. 새마을세계화재단은 파견 봉사단원들에게 현지 사정에 맞는 사업을 추진하도록 권유하지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현지 사정에 밝지 못한데다 의사소통이 어렵고,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시범마을들은 모두 마을회관 개설과 양계장 구축, 재봉틀 기술 전수, 벼농사 등 천편일률적으로 사업을 추진한다. 대부분 19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진행됐던 사업들로 현지 실정과 동떨어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한 대부분 시설과 물자지원 중심인데다 체계적인 준비와 검토 없이 추진되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현지에서 재배해보지 않은 농작물을 시험 경작하거나 충분한 검토 없이 한국에 친숙한 농작물을 재배하는 경우도 많다. 일부 마을에서는 현지 주민이나 지방정부의 노력과 비용 분담 없이 지원되기도 한다. 주민 자발적인 사업인데도 마을회관이나 도로 건설을 위해 주민들에게 노임을 지급하고 추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시범마을 선정 과정에서 충분한 수요조사나 현지 실태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점도 문제다. 이 경우 복잡한 현지 상황과 맞물려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가능성도 높다. 대상 마을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현지 전문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객관적인 기준이 없이 선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총리의 출신지역이나 유력 정치인의 선거구 등 특혜성 지역 정도 이뤄지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주민들의 신뢰와 효과를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기존 국제원조단체들이 추진한 사업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탄자니아 팡가웨마을에서 활동한 김영관 씨는 "아프리카 국가들은 수십 년 이상 낙후된 환경에서 첨단 IT기기를 사용하는 괴리감을 맛보고 있는 상황이고, 중간 과정이 생략된 문화가 공동체를 흔들고 있다"며 "농업이나 환경개선 등에만 치우치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처럼 진행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접근방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출구 전략 마련이 절실

경북도는 마을별로 5년을 목표로 5개국, 15개 마을에 시범마을을 조성 중이다. 이미 4년 차에 들어선 마을도 5곳이지만 아직 제대로 된 출구전략은 찾지 못하고 있다. 장기 비전과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체계, 명확한 개발목표와 접근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4년 차에 접어든 마을들도 전년도에 진행했던 사업들을 이어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일부 마을을 제외하면 눈에 띌 만한 소득 증대 성과나 주민들의 자발적인 개발 움직임 등은 나타나지 않는 상황. 지원이 끊기면 원래대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각 마을의 새마을조직은 주민 전체의 역량을 끌어내지 못하고 소수 지도자와 주민들에게 국한돼 있고, 각종 지원 혜택도 일부에 편중되면서 주민들 간에 위화감과 갈등도 불러일으키는 형편이다. 한 새마을관리요원은 "마을마다 사업들은 벌여놨지만 주민들은 이 사업들을 왜 추진하는지, 봉사단원들이 어떤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며 "1년간 머물며 돌아가는 봉사단원들은 그해 사업성과를 내는 데 바쁘고, 각 사업은 중구난방으로 추진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새마을세계화사업이 현지에서 지속성을 갖고 추진될 수 있도록 할 컨트롤타워가 없는 점도 문제다. 국가마다 새마을관리요원이 배치돼 있지만 이들이 사업의 장기적인 로드맵까지 내놓을 수는 없다. 현지에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조직 마련이 시급한 셈이다.

이태주 ODA Watch 대표는 '새마을운동 ODA, 누구를 위하여 새벽종은 울리나'를 주제로 이달 25일 서울에서 열린 ODA토크에서 "자조'자립'재생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사업을 우선 지원해야 하며 이를 위해 사회자본 축적과 문화자산을 활용한 지역사업을 발굴해야 한다"며 "개발로 인해 마을에서 불평등과 경쟁이 심화되지 않도록 친빈곤 전략과 포용적 개발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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