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 끊긴 석산, 모노레일로 다시 북적
군위에는 경북 지역의 타 시'군에 비해 이렇다 할 관광지가 없다. 팔공산과 삼존석굴, 한밤마을, 아미산 정도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첩첩이 넘어 드는 산세와 맑은 하천, 한적한 공기는 복잡한 상념을 가라앉히는 매력이 있다.
뚜벅이들에게 '군위 돌아보기'는 만만찮은 도전이다. 군위에서 시내버스 시간 맞추기, 정말 어렵다. 대구와 근교지만 인구가 적고 산세가 깊은 탓인 듯싶다. 버스 운행 횟수는 적은데 이곳저곳 들르는 마을도 많으니 노선은 구불구불. 버스는 승용차 2대가 교행하기도 쉽지 않은 좁은 농로를 휙휙 질주한다.
외지인들에게 익숙지 않은 점은 또 있다. 군위읍 소재지에서 외부로 나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 곳은 시외버스정류장밖에 없다. 읍 소재지 내에 버스정류장은 군위우체국 앞이 유일한데, 대북'내량'오곡 방면에서 읍내로 들어오는 버스만 정차한다. 이 정류장에서 시외버스정류장까지는 딱 한 코스. 요금은 무료다. 반대 방향으로는 정류장이 없고, 버스도 다니지 않는다.
◆인각사와 약바람생태체험마을
군위군 고로면은 군위의 동쪽 끝이다. 영천의 북쪽 화북면, 의성의 남쪽 춘산면과 맞닿아있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오지다. 오전 8시 20분 학암행 버스에 올랐다. 1시간쯤 달리면 고로면 소재지에 닿기 전에 인각사를 만난다. 642년(선덕여왕 11)에 창건된 절로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사찰이다. 1천300년이 넘는 역사에 비해 사찰은 소박한 편이다. 경내에는 중국 왕희지의 유필로 집자한 보물 제428호 보각국사 탑과 비가 있지만 글자의 훼손이 심해 알아보기 어렵다. 법당 앞에는 삼층석탑이 있고, 높이 1.5m의 석불과 부도도 있다. 인각사 길 건너편에는 위천을 따라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학들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 해서 학소대라 이름 붙은 명소다.
이곳에서 15분 정도 더 버스를 타고 가면 아미산 입구를 지나 석산리 석산정류장에 도착한다. 정류장에서 임도를 따라 2㎞가량 걸어 석산약바람생태체험마을에 도착했다. 9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산골마을이지만 생태체험이 가능하도록 숙박시설과 모노레일, 약용식물체험장, 광산동굴체험장, 버섯 및 산채체험장 등을 갖췄다. 주말이면 300~400명이 찾지만 대부분 모노레일을 타는 관광객들이다.
지금은 조용한 산골마을이지만 40년 전만 해도 사람들로 북적이던 활기찬 곳이었다. 1972년 한국화약에서 운영하던 아연광산이 폐광되기 전까지 일이다. 17년간 운영됐던 광산 덕분에 주민들의 생활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다. 당시 광부만 200명이 넘었고, 술집이 3곳이나 있었다. "하룻밤에 마을 술집에서 팔아치운 막걸리가 45말이 넘었다고 해요. 800ℓ가 넘는 양이니 얼마나 흥청거렸겠어요. 마을에는 아예 빈방이 없었고요." 주민 최민달(75) 씨가 당시를 떠올렸다.
마을 위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모노레일이 있다. 경운기 엔진에 낮은 의자를 얹은 객차를 연결한 형태다. 한 번에 최대 30명이 탈 수 있다. 시동을 걸자 털털거리며 천천히 산허리를 돈다. 상쾌한 숲 속 공기에 양볼이 간질간질하다. 모노레일은 광산 입구에서 멈춰 섰다. 광맥을 따라 내려가는 수직굴이다. 벽에는 반짝거리는 이슬이 맺혔다. 광산은 산 전체를 개미집처럼 연결하고 있다고 했다. 모노레일 앞자리에 있던 박천수(59) 씨가 옛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40년 전 이곳에서 채광부로 일했다. "사고로 동료 광부가 숨졌던 때가 기억나요. 물을 빼내는 양수기가 고장이 나서 수리하러 내려가는데 침목이 떨어졌고, 사다리가 무너지면서 동료가 떨어졌죠. 옛 기억은 생생한데 옛 풍경은 찾아볼 수 없네요."
◆약초 뿌리처럼 내려온 150년의 전통
모노레일 승강장으로 가는 길에 옛 집과 조립식 건물이 있다. 가까이 다가서자 한약 달이는 향기가 진하게 풍겼다. 5대째 이어온 석산한약방이다. 최영진(53) 대표가 약초를 보관하는 방으로 안내했다. 벽면 전체를 차지한 약장 안은 온갖 약초로 가득했다. "이 주변 산은 약초 천지예요. 삽주, 일경, 백출이 많은데 특히 자생 오미자가 많이 나죠. 직접 채취하거나 주민들이 가져오면 구입해서 써요. 특히 소나무를 벤 자리에서 나는 봉영이 좋아요."
최 대표도 어린 시절부터 약초를 만졌다. 집에는 항상 한약 냄새가 났다. 약재를 달이는 냄새만 맡아도 무슨 약재인지 알 정도였다. "엉뚱한 약을 캐와서 혼나는 일도 다반사였어요. 특히 도라지와 비슷한 제니를 캐왔다가 혼나는 일이 많았죠. 성인병에 좋다는 개똥쑥도 인진쑥과 비슷해요. 냄새까지 비슷하지만 맛은 완전히 다르죠. 산 정상 쪽에는 성질이 따뜻한 도라지나 삽주가 많이 납니다. 계곡 인근은 성질이 차가운 택사나 목통이 많고요. 더덕은 산허리에만 자라죠."
약초는 캘 때부터 손질까지 수없이 많은 손길이 필요하다. 캐온 약초는 밤새도록 긁고 깎고 썰어서 다듬어야 한다. 계절에 따라 채약의 시기도 다르고 제대로 말려 쓰는 것도 중요하다. 그는 "약재를 보관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했다. 건조하게 보관해야 하는데다 벌레가 많이 달려들기 때문이다. "햇볕이 나면 약재를 매달아 벌레가 먹지 않도록 내놨다가 비가 오면 쫓아와서 다시 넣고 그랬죠." 평생 산골 오지마을에서 한약을 달이고 약초를 다듬는 일이 답답하진 않았을까. "가업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제가 대를 끊을 수는 없었죠. 선대부터 내려온 비방도 그냥 둘 수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5대조 할아버지가 쓴 비방에 대를 이어 첨삭해 내려온 가보가 있다. 가보는 한의학을 공부하고 있는 딸에게 물려줄 계획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 생가, 그리고 다시 안동
군위에서 경계를 넘어가려면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로 가야 한다. 의성으로 가는 길목인 군위읍 용대리에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가 있다. 오전 9시 20분 탑리리로 가는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달리니 생가 입구다. 상곡리행 버스를 탔다면 상곡리 입구에서 내려 5분 정도 걸으면 된다.
돌계단을 따라 야트막한 언덕 위에 오르면 소박한 초가집이 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다. 김 추기경은 다섯 살 때 이사 와서 군위보통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그리고 군위를 떠난 지 59년 만인 1993년 3월 생가를 방문하기도 했다. '초가삼간'이라는 말 그대로 집은 작은 방 두 칸과 부엌이 전부다. 벽에는 김 추기경의 사진과 남긴 글을 적은 액자가 걸려 있다. 오전 10시 30분쯤 탑리리로 가는 버스에 다시 탔다. 버스 여정의 첫 출발점인 안동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안동까지 가려면 의성을 경유해 몇 차례 환승을 거쳐야 한다. 30분 정도 달려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 성심병원 앞에 도착했다. 길을 건너 오전 11시 5분에 의성읍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의성읍은 마침 장날이었다. 길가에는 마늘 묶음과 고추 포대가 즐비했다. 의성읍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25분. 안동시 길안면으로 가는 방법을 택했다. 의성군 단촌면이 안동과 더 가깝지만 안동행 버스 편이 많지 않다. 1시간 20분 정도 기다려 낮 12시 40분 안동행 버스에 올라탔다. 군 경계를 넘는 요금은 3천600원. 깊어가는 가을, 한적한 시골 도로. 버스 창밖으로 주렁주렁 열린 사과가 스쳐 지나간다. 50분을 달리면 안동시 길안면이다. 28번으로 갈아타고 다시 50분을 달려 안동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안동을 출발한 지 꼭 50일 만이다.
글'사진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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