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파도를 움직이는 건 바람이다 -정책이 지닌 파도와 바람①

입력 2013-10-29 07:04:24

나는 관상을 볼 줄 알았지, 세상을 보지 못했네. 눈앞의 파도만 보고 바람을 보지 못한 거야. 결국 파도를 움직이는 건 바람인데 말이야. (중략) 당신들은 잠시 높은 파도를 탔을 뿐이오. 우린 그저 낮게 쓸려가는 중이었소 만은 뭐, 언젠가는 오를 날이 있지 않겠소. 높이 오른 파도가 언젠가 부서지듯 말이오. (영화 '관상' 중에서)

오랜만에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송강호가 나오는 '관상'. 재미있긴 했지만 가슴을 때리는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영화는 이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마지막 부분의 대사가 나를 때리더군요.

'눈앞의 파도만 보고 바람을 보지 못한 거'란 말. '영웅은 시대가 만든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그렇습니다. 시대를 안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만 따라가다간 실패하기 십상이지요. 사실, 최근에는 풍경을 따라가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요즘 풍경의 변화는 속도를 기본으로 하니까요.

하지만 시대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요구합니다. 속도가 만드는 풍경에 휩쓸리면 결국 시대를 읽지 못합니다. 단지 눈앞에 보이는 파도를 타고 오를 뿐이지 그 파도를 만들어내는 바람을 보지 못합니다. 바람을 보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풍경과 조금 거리를 둬야 합니다.

자율학교니, 교과교실제니 하던 교육계의 요즘 화두는 자유학기제와 행복교육입니다. 속도를 중시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아주 크게 바뀐 것처럼 보이겠지만 방향이라는 시선으로 보면 자율학교, 교과교실제, 자유학기제, 행복교육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방향은 몇 가지 정책이 바뀐다고 달라질 수 없는 것이니까요. 방향에는 그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이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잠시 파도를 타고 오르겠지만, 그 이면에 담긴 바람의 의도를 알지 못하면 타고 오름이 지닌 한계는 분명합니다.

교과교실제는 교과의 특성과 학생의 학습능력을 반영해 수준별, 맞춤형 수업을 하기 위한 수업 환경을 조성하자는 것입니다. 일종의 하드웨어적인 지원입니다. 자율학교는 교원 임용과 학생 선발, 교육과정 편성 등 학교 운영에 대한 자율성을 보장하는 형태의 학교입니다. 이후 자율형 사립고 100개교, 기숙형 공립고 150개교, 마이스터고 50개교를 만들겠다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로 발전됩니다. 이는 각 학교마다 특색을 살려 자율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정책입니다.

자유학기제는 중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이 중간'기말고사 등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꿈과 끼를 찾을 수 있도록 토론, 실험'실습, 프로젝트 학습 등 학생 참여형으로 수업을 개선하고, 진로탐색 활동을 비롯해 다양한 체험 활동이 가능하도록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제도입니다. 행복교육은 구체적인 정책이라기보다 아직은 슬로건에 가깝습니다. 학생들의 꿈과 끼를 끌어내 행복한 학교, 행복한 아이를 만들겠다는 여망이 담긴 표현입니다.

구체적인 방법이나 영역은 아주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정책의 뒤를 밀어주는 바람이 보이지 않나요? 경쟁을 중시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존재하는 곳에는 이미 경쟁은 필연적인 현상이니까요. 문제는 어떤 조건으로, 어떤 형태로 경쟁하느냐는 것이겠지요. 단순히 점수나 순위로 결정하는 경쟁이 아니라 진정한 미래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나 창의력을 평가하는 경쟁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바람의 방향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결국 그런 능력을 신장시킬 수 있는 학생 중심의 교육, 창의적인 교육이 바로 정책의 이면에 담긴 바람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이면보다는 표면에 보이는 파도만 중시하니 자꾸만 정책이 흔들리는 것이지요. 바람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면 파도에 흔들리지 않는 지속적인 정책을 펼칠 수 있습니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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