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밖으로 나간 '창의 교육'…학교 수업보다 흥미진진해요
온 마을이 나서 아이들을 함께 키운다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교육을 학교에만 떠맡기지 않고 지자체와 지역 사회도 힘을 보태야 한다는 인식이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서울에선 전통적으로 교육열이 높은 강남 3구 외에도 지역 인재 양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곳이 늘고 있다. 창의학교와 영어학습체험센터, 진로교육을 위한 금천진로직업체험센터를 직접 운영하는 금천구청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구는 어느 지역 못지않게 높은 교육열을 자랑하는 곳이다. 하지만 지자체의 교육에 대한 투자와 지원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교육을 지원하는 전문 부서 내지 기관을 두고 초'중'고교별로 교과 학습, 현장 체험, 진로, 진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학교에 소액의 교육 경비를 지원하지만 그마저 골고루 나눠 주는 것에 더 의미를 두고 있을 정도다.
수성구청(구청장 이진훈)의 행보가 더욱 눈길을 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성구청은 범어도서관과 창의적체험활동지원센터를 축으로 체험 학습을 포함한 진로, 진학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다. 대구시교육청조차 아직 '수능 성적=진학 실적'이라는 공식만 들여다보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신선한 시도로 평가받고 있는 수성구청의 사례를 살펴봤다.
◆'학교 교육을 뒷받침합니다' 수성구 창의적체험활동지원센터
25일 대구 정화중학교 학생 50여 명이 교문 밖을 나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에 모였다. 두 무리로 나뉜 학생들은 각각 다른 강의실로 찾아들었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모인 강의실에서 진행된 프로그램은 음악과 물리 교과를 융합한 '소리의 원리를 찾아서'. 학생들은 소리가 나는 원리, 정확한 음정을 내기 위한 공식 등을 배운 뒤 플라스틱 파이프 리코더를 직접 만들어봤다.
정화중 배지원(3학년) 학생은 "시중에서 판매하는 리코더가 많은 계산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알게 돼 신기했다"며 "음악과 물리로 분명히 나뉜 정규 수업과 다른 형식의 수업이라 더욱 재미있었다"고 했다.
이 프로그램은 수성구 창의적체험활동지원센터가 마련한 '중학생을 위한 융합인재 스팀(STEAM) 교육' 과정 중 하나. 스팀은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예술(Art), 수학(Mathematics)의 알파벳 첫 글자를 딴 말로 창의적인 과학 교육을 위해 학문 간 경계를 허물고 융합한 것이다. 이날 또 다른 곳에선 미디어와 기후학을 융합한 '나도 기상 캐스터', 미술과 과학 교과를 융합한 '식물 분류 지도 만들기' 프로그램도 진행됐다.
이 같은 교육이 최근 주목을 받고 있지만 학교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시행되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꽉 짜인 교육과정, 과목별 경계를 허무는 교육에 대한 인식 부재, 융합 교육 프로그램 운영 인력과 경험 부족 등 이유는 다양하다. 창의적체험활동도 마찬가지다. 교과 학습과 더불어 현재 학교 교육의 양대 축을 이루는 과정으로 창의성과 인성을 키워주기 위한 자치 활동 등 자율 활동을 비롯해 동아리'봉사'진로 활동을 일컫는데 학교만의 힘으로 소화하기엔 버겁다.
하지만 수성구의 사정은 좀 다르다. 지난해 2월 문을 연 수성구 창의적체험활동지원센터가 있어서다. 이 센터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 학교 교육을 보완해나가는 중이다. '고교생을 위한 연합 영어 디베이트 동아리'는 8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토요일 수성구 고교생 4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 혜화여고 이승은(2학년) 학생은 "학교나 학원 수업과는 달리 서로 듣고, 말하고, 쓰는 수업이라 신선하고 활기가 느껴져 좋다"고 했다.
지난달부터는 현직 대학교수를 섭외해 수성구 각 고교를 돌며 모의면접과 자기소개서 작성 등 '입학사정관전형 대비 프로그램' '고교생을 위한 학술동아리 지원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수성구청 이진훈 구청장은 "수성구 창의적체험활동지원센터는 학교에서 모두 챙기기 힘든 지역의 인적, 물적 자원이 학교 교육과 연계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하는 곳"이라며 "교육에 대한 지원은 우리 지역의 미래를 위한 일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역 인재를 키우는 데 많은 관심을 쏟겠다"고 했다.
◆'책만 보는 곳이 아닙니다'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수성구청은 도서관도 평범하게 운영하지 않는다. 지난 7월 문을 연 수성구립 범어도서관에는 수성구청의 청소년 교육, 문화 지원 시설이 몰려 있다. 수성구 창의적체험활동지원센터 외에 수성구청 평생교육과, 수성문화재단이 자리하고 있다. 칸막이를 설치한 좌석이 없는 것도 특색. '독서실'이 아니라 도서관다운 도서관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범어도서관을 특별한 곳으로 만드는 것은 국제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점이다. 범어도서관은 이 프로그램을 구현하기 위해 도서관 2층에 국제자료실을 갖추고 있다. 국제자료실에는 미국과 영국 등 영미권, 독일과 스페인 등 유럽권, 베트남과 중국 등 아시아권 등 14개국 7천여 권의 책과 25여 종의 해외 연속 간행물을 구비했다. 워싱턴 포스트와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 1천600여 종의 정기 간행물의 원문을 검색, 열람할 수 있는 원문 데이터베이스 서비스도 제공한다.
범어도서관의 대표적인 국제화 교육 프로그램은 글로벌 유스 아카데미(Global Youth Academy)와 AR(Accelerated Reader) 프로그램. 지난달 시작한 글로벌 유스 아카데미는 수성구에 거주하는 고교 1, 2학년 80명을 대상으로 대구경북의 대학교수, 박사과정 강사들을 초빙해 영어로 전문 분야 강의를 진행하는 것이다. 2주에 한 번씩 토요일에 강의가 펼쳐지는데 경북대 영어교육학과 앤드류 핀치(Andrew E. Finch), 계명대 정치외교학과 제임스 스코프(James C. Schopf) 교수 등 외국인 교수들도 강단에 올라 고교생들과 만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 중인 학생들의 반응도 뜨겁다. 동부고 김미진 학생은 "처음엔 영어만 사용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는데 외국인 교수님들이 전문적인 내용을 쉽게 풀어 설명해주시는 덕분에 강의 내내 즐거웠다"며 "앞으로도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을 더 많이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청구고 김동윤 학생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 차이를 배우면서 세계 시민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을 익힐 수 있었다"며 "언론사의 해외 특파원이 되고 싶은데 중국과 미국의 관계에 대한 강의를 통해 세상을 보는 시야가 한층 넓어진 느낌"이라고 했다.
이달 시작한 AR 프로그램은 책 읽기를 통해 사고력을 키우고 글쓰기의 기초를 다지는 과정.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영어 능력을 측정하고 키울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범어도서관은 도서관 안의 영어 자료를 바탕으로 읽기 수준을 진단해 단계를 부여하는 한편 그에 맞는 자료를 추천해주고 이를 읽은 뒤 영어 퀴즈를 통해 성과를 검증한다. 12월 말까지 이 과정을 세 차례 반복, 단계를 높여가고 매달 1회 에세이를 제출하면 도서관 명의의 수료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범어도서관 신종원 관장은 "이 도서관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이뤄져 지역 사회의 교육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운영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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