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만어] 중국의 역설

입력 2013-10-29 07:53:06

사상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하기 마련이다. 동양의 사유구조를 지배해온 유교 또한 예외일 수가 없다. 12세기 중국 남송시대의 주희가 집대성한 주자학, 즉 신유학(新儒學)도 결국은 시대적인 산물에 다름 아니다.

송대(宋代)에 이르러 새삼스레 신유학이 등장한 배경은 한대(漢代)의 형식적인 문풍에 대한 반성도 그 원인이 될 수 있겠지만, 위진남북조 이후 지배적인 조류가 된 불교와 도교에 대한 비판이 더 직접적인 발단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중국 사회를 풍미하던 불교와 도교는 개인주의적이고 반사회적인 사상을 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민족 왕조에 빼앗긴 영토를 회복해 통일국가를 이루고 사회질서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상체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고려말의 신흥 사대부들은 그 신유학을 받아들여 조선이란 새 왕조를 개창하는 통치이념으로 삼았고, 이후 훈구세력에 유린당한 유교이념과 시대상황을 개혁하기 위해 퇴계는 주자학을 조선의 현실에 맞게 재해석했다. 이른바 퇴계학이다.

퇴계는 중국 송대 주자학 이념을 교본으로 삼아 조선의 부패한 기득권 세력과 타락한 사회상을 타개하기 위한 실천적 무기로 재구성한 것이다. 12세기 남송의 주자학이나, 16세기 조선의 퇴계학이나 불안정하고 혼탁한 시대를 새로운 사상 정립으로 이겨내고자 한 고뇌의 결과임에는 다를 바가 없다.

오늘날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1960년대 마오쩌둥(毛澤東)이 주도했던 극좌 사회주의운동인 문화대혁명 때 그토록 핍박했던 유교와 공자를 다시 부활시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구나 시진핑(習近平) 체제 출범 이후 중국은 서구적 사상에 대비해 유교 등 전통적인 가치관을 강조하며, 고속성장과 배금주의로 초래된 도덕성 상실의 공백을 유교 등 전통사상과 종교로 메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유교를 억압했던 마오 또한 부활하고 있으니 이 무슨 역설인가. 중국이 마오의 업적과 사상을 재조명하고 문화대혁명의 유물인 '자아비판'까지 다시 끄집어낸 것은 경제강국으로 부상한 이면에 취약해진 정치, 이념적 요소를 보완하려는 포석이다.

그래서 '정치는 좌파, 경제는 우파'라는 이른바 '정좌경우'(政左經右)라는 특이한 행보가 나오는 것인가. 무엇이든 편한 대로 취사선택하니 중국답다. 결국 이념과 사상이란 역사적 변화와 시대적 과제와 결코 무관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웅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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