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堯) 임금이 늘그막에 본 아들 단주(丹朱)는 게으르고 포악했다.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줄 수 없다고 판단한 요 임금은 천하를 맡길 만한 어진 이를 널리 구했다. 수십 년 헤맨 끝에 찾아낸 이가 바로 유우씨, 뒷날 순(舜) 임금이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은 유우씨는 눈멀고 어리석은 아비와 심술 사나운 계모 그리고 간악한 이복동생의 음모에 걸려 몇 번이나 목숨을 잃을 뻔했다. 슬기와 재치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뒤에도 유우씨는 등짐을 지거나 장인바치로 벌어서 나쁜 부모에게 효도하고, 완악한 아우를 우애로 감싸 착하게 변화시켰다. 이런 유우씨를 사람들은 칭송했고, 당시 원로 대신들이 차기 왕으로 천거했다. 그러나 유우씨 본인은 고요(皐陶)를 추천했다.
고요는 정조와 정약용이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한 서경(書經) '고요 모(謨)' 편의 주인공이다. 고요는 지금부터 5천 년 전인 요순시대에 형벌 제도와 감옥 제도를 만든 법조인으로 왕의 아들이나 거지의 아들이나 법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근대 법학 사상을 당시에 이미 실천했다. 제자의 물음에 맹자는 "순 임금의 아버지가 살인을 했더라도 고요는 봐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하였다. 근대 법학자들이 자유와 평등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 정의의 여신상 눈을 가리면서까지 추구하려 했던 그 정신을 고요는 반만년 전에 지켜냈다.
이런 고요를 유우씨는 왕으로 밀었지만 요 임금은 어질고 슬기롭고 효성 지극한 유우씨를 선택했다. 왕이 살아있으면서 스스로 왕위를 물려주는 선양(禪讓)이 이때 처음으로 이뤄졌다. 순 임금은 천자가 되고, 고요는 법관으로 남았다. 맹자는 순 임금이 고요를 얻지 못할까 걱정했으나 고요는 순 임금 치하에 남아 재판에 결코 사사로움을 개입시키지 않는 형평성과 공정성을 지켜 이름을 남겼다.
박근혜정부 들어 대검 중수부 폐지라는 혼란기에 터져 나온 검란(檢亂)을 수습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라는 첫 부름을 받았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혼외 자식 논란으로 불명예 퇴진한 지 한 달 만에 제40대 검찰총장 내정자로 김진태(61'사법연수원 14기'경남 사천) 전 대검 차장이 지명됐다. 김진태 검찰총장 내정자에 대해 야당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라인이라고 공세를 가하며 인사청문회를 벼르고 있다. 하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현철 씨 비리, DJ 삼남 홍업씨 비리사건, 한보 비리 등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었던 사건들을 법과 원칙에 따라서 처리한 강골 김진태 검찰총장 내정자가 정권 편들기를 하리라고 예단하는 것은 오버이다.
위기의 검찰을 맡을 김진태 내정자는 적어도 세 가지를 깔끔하게 해결해야 한다. 하나는 서로 다른 역할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는 국정원'국세청'경찰'검찰 4대 기관의 견제와 균형을 찾는 일이다. 전쟁 때는 군대가 나라를 지키지만, 평소에는 국정원'검찰'경찰이 나라를 지키는 보루이다. 하지만 대검 중수부를 없애고, 취임 일성에서 서울중앙지검의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공표한 채동욱 전 총장은 재직 기간 동안 다른 기관들을 가차없이 흔들었다. 새 정부가 중심을 못 잡고 비틀거리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기관 간 갈등을 최고조로 노출시켰다.
다른 하나는 검찰이 신뢰를 잃고 검사동일체 원칙마저 내팽개친 채 전국에 생중계되는 국감 현장에서 이전투구를 벌이는 광경이 재연되어서는 안 된다. 검찰 구성원들이 승복할 수 있는 리더십으로 내부 신뢰부터 회복하고, 검사들이 법의 나무와 국가라는 숲을 동시에 보는 능력을 배양시켜야 한다. 우리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고, 주변에는 4강이 둘러싸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 하나는 생활 이슈를 파고드는 좌파들의 바뀐 전략을 숙지하고 그에 대한 대응 체계를 갖추라는 요구이다. 김대중 노무현을 거쳐 보수적인 이명박이 들어서자 좌파들은 간첩을 왕창 보내거나 이념전을 펼치는 방식의 옷을 벗기 시작했다. 대신 집요하게 생활 이슈를 파고들어 문제를 일으키고, 그 문제가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악순환을 조장하고 있다. 검찰은 어떤 세력들이 표시 안 나게 사회 불안을 부추기는지, 어떤 세력들이 공안 대상인지 철저하게 가려내야 한다. 정조와 정약용은 서경 '고요 모' 편에 나오는 지인(知人)과 안민(安民)을 정치의 요체로 삼았다. 김진태 검찰총장 내정자가 검사를 적재적소에 쓰는 지인과 업무를 제대로 맡기는 안민을 통해 사회 불안을 해소해 주기를 기대한다.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대통령실 "국민추천제, 7만4천건 접수"…장·차관 추천 오늘 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