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친구

입력 2013-10-28 07:00:19

얼마 전 밥 그린이 쓴 '친구에게 가는 길'이란 책을 읽었다. 다섯 살에 만나 52년간 우정을 나눈 두 남자의 이야기다. 주인공 밥은 몇 년 전 상처했다. 이때 고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지금은 고향에 돌아와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친구 잭이 와서 장례식과 뒤처리, 죽은 아내의 사망진단서를 받아 접수해주는 궂은일들을 다 처리해주면서 말없이 위로해주고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런 친구 잭이 말기암 판정을 받고 이제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전화를 친구로부터 전해 듣고, 밥은 남은 8개월을 죽음과 함께 힘겹게 걸어가는 잭과 동행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시카고에서 고향까지 수백 마일을 틈나는 대로 찾아가서 이야기도 나누고 어릴 때 뛰어놀던 동산에 함께 오르며, 친구를 위로하고 마지막 장례식까지 마치고 오는 과정을 그날그날 적은 글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친구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그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 친구가 삶의 커다란 선물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교사였던 아버지가 한곳에 오래 계시지 않고 자주 학교를 옮기신 탓에 솔직히 어릴 적 친구들이 없다시피 하다. 중'고교와 대학을 다니면서도 친구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결혼하고 나서 가정과 일에 파묻혀 살다 보니 친구들을 만나거나 안부를 물을 여유조차 내지 못했다.

얼마 전 추석을 앞두고 고등학교 친구에게 '보고 싶다'하고 문자를 보냈더니, 친구는 그 문자를 보는 순간 그만 눈물이 핑 돌더라고 하길래 내 가슴도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싶어한다는 것만치 나라는 존재가 가치있게 느껴질 때가 어디 있을까?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남편도 자식도 아닌 누군가가 나를 보고 싶어한다면 친구 외에 또 누가 있을까?

우리 집 두 아들은 예전에 수시로 '엄마는 친구가 없어?' 하고 종종 물은 적이 있었다. '엄마는 왜 친구들을 만나지 않아?' 하고 묻는 아들에게 '엄마는 친구 만날 시간이 없어'라고 대답하곤 했다. 친구들과의 만남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알고 있는 아이들한테 '엄마는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는 건지'라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이제 중년의 나이로 접어드니 친구들 소식이 예전보다 더 자주 들려오고 나 또한 친구들의 소식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보고 싶은 것은 바로 고향처럼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중년과 노년을 행복하게 보내는 데는 친구만 한 존재도 없을 것 같다. 어떤 이들은 건강 다음으로 필요한 것이 친구라고 한다.

가을에 더 친구가 보고 싶고 나이가 들면서 친구가 더 그리워지는 것을 보면, 친구는 외로운 인생에 신이 준 선물이 맞는 것 같다. 이번 가을에는 '그 친구'와 가을 하늘 속으로 여행을 한 번 가볼까 한다.

조미옥(리서치코리아 대표) mee50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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