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수 숯불에 구워 먹던 원주민 전통 음식, 관광객 끌어들이는 효자로
향토 음식의 산업화는 그 지역산 농'수산물의 소비를 촉진하고 시장 경쟁력을 높여준다. 산업화가 명품화와 세계화로 이어질 경우 지역 경제를 견인하는 효과까지 나타나기도 한다. 향토 음식 산업화의 효과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도 확인할 수가 있다. 야자수 모닥불에 생선을 구워 먹던 원주민들의 원시적인 전통음식이 산업화되면서 발리의 한 작은 어촌은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
◆어민들과 상생하는 생선구이 전통음식점
발리 사람들은 평화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매일 신에게 정성스레 제사를 올리고 기도하며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간다. 온종일 바다에서 헤매다가 생선 세 마리만 잡아도 만족해하는 발리 사람들. 해가 저물면 나뭇가지를 모아 모닥불을 피우고 가족, 이웃들과 함께 맛난 생선을 구워 나눌 수만 있으면 행복해한다.
발리 쎄가라마을의 멜라스티 싸만자야(Melasti Samanjaya) 레스토랑은 발리의 생선구이를 소재로 전통음식 산업화에 성공한 사례다. 짐바란(Jimbaran) 해변에 1㎞ 간격으로 식당 3곳이 들어서 있고, 500석 규모에 종업원 수만 300명이 넘는 초대형 전통음식점이다. 야자나무 숯불에 구워 낸 싸만자야 생선구이는 세계인들이 즐기는 발리음식이 됐다. 원래 짐바란은 관광지가 아닌 발리의 작은 어촌이었다. 싸만자야 생선구이 가게는 어부들이 그냥 먹고 남은 생선을 구워 팔던 '와중'이라는 발리식 포장마차가 시작이었다. 이 전통음식점이 규모화를 이루고 관광객을 끌어들이면서 외지 투자자들이 몰렸고, 조용한 어촌은 해수욕장으로 변신했다. 아직도 해수욕장 앞바다는 발리의 전통 고깃배들이 가득 떠 있을 정도로 어촌과 해수욕장이 한데 뒤섞여 있는 모습이다.
"슬라마 나땅 리 발리(어서 오세요)." 싸만자야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귓등에 꽃을 꽂은 종업원 카덱(22'여) 씨가 미소로 반겼다. 한국말로 "어서 오세요"도 섞어 인사한다. 카덱 씨의 안내로 아직 굽지 않은 생선을 살펴봤다. 발리 해변가 산호초에서 잡히는 그라푸(Grapu)와 스네터(Sneter)라는 돔 종류의 생선이다. 그라푸는 노란 무늬가 예쁜 돌돔의 한 종류다. 참돔처럼 생긴 스네터는 입이 크고 이빨이 강하다. 카덱 씨는 "어부들이 조금 전에 잡아 온 것"이라며 고기잡이배를 가리켰다. 길쭉한 모양에 장대를 뱃전에 매 균형을 잡는 전통 어선이다. 발리 어부들은 고기를 잡고, 음식점에서는 그 고기를 사서 생선구이로 파는 상생 구조다. 어부 한 사람이 하루에 대략 열댓 마리의 그라푸나 스네터를 잡는다. 동행한 세계탈문화예술연맹(IMACO) 김호민(32) 국제교류팀장은 "발리 어민들은 애써 고기를 많이 잡으려 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잡는 것 자체에 만족할 뿐이지 마릿수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것. 낯선 이방인과 눈을 마주치면 먼저 미소를 보내는 발리 어부들. 힘들여 노를 저어 바다로 나가 종일토록 고기를 잡지 못해도 모두 신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생선구이의 고소한 맛은 발리소스가 비법
식탁 위에 놓인 발리 콩을 주전부리 삼아 생선이 익기를 기다렸다. 땅콩 맛이 나는데 콩나물 콩처럼 알이 작다. 싸만자야 레스토랑은 2대째 이어지고 있다. 사장은 푸투셉티아완(30)이라는 발리 원주민 젊은이다. 이 집에서 12년째 일하고 있다는 와얀 푸르닝시(39) 씨는 "사장이 젊지만 사업수완이 대단하다"면서 엄지손가락을 펴보였다.
주방장 카투(30) 씨는 "그라푸 숯불구이는 발리 대표 전통음식"이라고 자랑했다. 싸만자야의 생선구이 비법은 소스에서 나온다. 구이용 소스는 3종류. 야채를 다져 만든 전통 소스와 마늘 소스, 토마토 소스다. 손님의 취향에 따라 선택한 소스를 발라 굽는다. 소스는 마늘에 고추, 생강, 양파를 다져 넣고 액젓으로 간을 맞춘 후 코코넛 오일로 버무려 만든다. 생선을 천천히 익게 하고 고소한 맛을 내기 위해서란다. 돔 종류의 생선은 익으면서 육질이 팍팍해지기 때문에 기름을 소스 재료로 쓴다.
"굽기 전에 카레를 푼 큰 양푼에다 손질한 그라푸를 푹 담가 30분쯤 재워 둡니다. 그러면 육질이 부드러워져요. 녹색 라임 조각도 한 움큼 짜 넣어 비린내를 없앱니다."
요리사 조(Jo'36) 씨가 수줍어하며 자세히 설명했다. 양푼에 담가 둔 생선 그라푸의 껍질이 금세 카레 색으로 노랗게 물들었다. 그라푸는 은근한 불기운의 야자나무 숯불에 굽는다. 센 불은 생선을 태우기만 하고 제대로 익혀내지 못한다. 조 씨는 석쇠에 올린 생선에 코코넛 오일과 마늘을 섞어 만든 소스를 덧칠했다. 생선이 익으면서 겉껍질의 노란색이 더욱 선명해지고 등 부분에서 기름이 뚝뚝 떨어진다. 생선 기름으로 꽃불이 일면 수시로 물을 뿌려 끈다. 채소와 양념, 조개액젓으로 맛을 낸 발리소스를 바르고 간이 배도록 약한 불에 천천히 굽는다. 구울수록 색이 진해지고 선명해진다. 간단하게 생각했던 생선 숯불구이가 20여 분이나 걸린다. 숯불에 눌어붙은 소스는 짭짤하고 고소한 냄새가 난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그라푸는 푸른 바나나잎을 깐 접시에 올려 손님상에 낸다. 붉은 토마토에 연꽃 모양의 칼집을 넣어 접시를 장식한다. 굽는 데도 정성을 다하지만 보기에 좋도록 모양을 내는 모습은 세계화된 전통음식의 공통점이다.
◆음식 맛과 서비스, 분위기가 모두 조화 이뤄
종업원 카덱 씨가 그라푸 숯불구이를 식탁에 내려놓고 우리말로 "맛있게 드세요"라며 방긋 웃었다. 포크로 살점을 뜯어 한 입 넣으니 바삭하고 고소하다. 껍질은 노랗지만 속살은 희다. 도미의 육질과 비슷하지만 발리소스에서 특별한 맛이 난다. 카레향이 담백한 생선구이에 잘 어울렸다. 껍질에 바른 발리소스는 약간 쌉쌀했다. 생선살에 배어나는 야자나무 숯향도 이채롭다. 라임은 생선 비린내를 완전히 제거했다.
장난기가 넘치는 카덱 씨가 들고 있는 바구니를 손가락질하며 '화이트 코브라'라고 농담을 했다. 식탁에 무슨 뱀이냐 싶어 쳐다보니 까르르 웃으며 뚜껑을 열었다. 흰 쌀밥이다. 바삭한 식감의 생선구이엔 고슬고슬한 쌀밥이 잘 어울린다. 생선과 함께 먹으라면서 주걱으로 접시에 밥을 퍼 줬다. 동남아 채소인 깡콩을 홍고추와 마늘을 넣어 만든 나물볶음도 함께 나온다. 발리 사람들이 전통음식을 먹을 땐 항상 즐기는 채소요리다.
"모어? 오케이? 원스 모어?" 상냥한 남국의 아가씨는 수시로 들락거리며 손님이 불편함은 없는지 살폈다. 함께 나온 킹 프라운 새우 버터구이도 먹음직스럽다. 탱탱한 새우살에 마늘 소스를 바르고 바삭하게 튀겨냈다. 곁들여 낸 양파볶음도 짭조름하다. 후식은 수박과 파인애플, 멜론 한 조각씩이다.
음식 맛도 중요하지만 손님 응대와 식탁의 분위기도 향토 음식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다. 싸만자야 레스토랑의 조약돌 바닥과 등나무 식탁은 시원한 발리 짐발란 해변의 바닷바람과 파도소리에 잘 어울린다. 늦은 오후가 되면 해변 모래사장에도 식탁이 들어선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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