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삶은 힘들어…"非현실에서 놀래"
팍팍한 현실.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까. 자각몽(自覺夢), SNS 역극(역할극) 등 비현실 세계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자각몽이란 스스로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채로 꿈을 꾸는 현상. 자각몽은 꿈의 상황이나 환경을 마음대로 조절해 자신의 욕구를 실현하려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또 SNS를 이용한 역극(역할극)도 젊은층에서 확산되고 있다. 꿈이나 SNS 상에서는 원하는 일을 모두 이룰 수 있는데다 잠시나마 취업이나 결혼 문제 등 현실의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꿈이냐 생시냐?
취업재수생인 김진형(가명'26) 씨는 몇 달째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대기업 공채가 시작되는 때라 신경이 날카로운데다 잠까지 못 자 '폭발' 일보 직전이다. '편하게 잠이라도 한번 자보자'는 생각에 인터넷 검색을 하던 김 씨는 자각몽에 관한 글을 접했다. '꿈에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모두 이룰 수 있다'는 설명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는 인터넷 게시판에서 자각몽 조절 방법을 검색해 매일 아침 꿈 내용을 기록하는 '꿈 일기'를 작성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꿈은 이루어졌다. 드디어 지난밤에는 그토록 원하는 대기업에 입사하는 꿈을 꿨다. 꿈이었지만 느낌은 생생했다. 김 씨는 "멋진 양복을 입고 007가방을 들고 비즈니스를 위해 비행기에 오르는 꿈이었다. 꿈속에서나마 미래에 대한 불안과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인터넷의 자각몽 관련 커뮤니티에는 김 씨처럼 꿈에서나마 자유를 만끽하려는 젊은이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현재 포털사이트 다음과 네이버에는 수만 명의 회원을 거느린 카페가 운영 중이다. 대표적인 '루시드 드림'(자각몽의 영문 명칭)의 경우 23일 현재 회원 수가 5만3천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카페에서 자신의 자각몽 경험을 공유하거나 꿈을 조절하고 깨는 법에 대해 배우기도 한다. 또 자각몽을 가르치는 학교도 성업 중이다.
자각몽을 다루는 스마트폰 앱(애플리케이션)도 등장했다. 10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한 인기 앱도 있다. 인체의 뇌파에 따른 수면 사이클을 분석해 특정 시간대마다 알람 소리를 들려줌으로써 수면 중 자각몽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렘(REM'몸은 자고 있으나 뇌는 깨어 있는 상태)수면을 주기를 계산해 특정 타이밍에 주기적으로 알람을 울리게 하는 기능도 있다.
자각몽을 좀 더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제품도 나왔다. 수면유도 안대인 '드림사인'은 LED(발광다이오드)를 이용한 꿈 표식(dream sign)으로 수면자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얕은 수면 단계를 일컫는 렘수면 시간 중 드림사인은 일정 주기로 적색 신호를 깜빡인다. 이때 깜빡이는 자연스럽게 꿈에 체내화 돼 수면자가 스스로 꿈을 꾸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는 자각몽 상태에 빠지게 하는 원리다. 지난 8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3 국제 수면'힐링산업 박람회'에서는 '레미'(remee)라는 이름의 수면 안대가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새로운 힐링 VS 부작용 우려
젊은이들이 자각몽에 열광하는 까닭은 힘든 현실과 삶의 고통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그 효과를 두고는 찬반 논란이 엇갈린다. 팍팍한 삶을 다독여 주는 힐링이 될 수 있다는 분석과 각종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한 자각몽 카페 운영자는 "우리는 매일 2시간 정도 꿈을 꾼다. 꿈을 꾸는 동안에도 잠에서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공감각적인 경험을 한다.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고, 생각하며 존재한다. 따라서 자각몽을 통해 온갖 즐거움이 가득한 생생한 나만의 놀이공원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인터넷상에서는 자각몽을 실용적 용도로 사용한 각종 경험담도 꾸준히 올라온다. 또 여러 자각몽 온라인 모임에도 꿈속 여행에서 얻은 기쁨과 보상에 대한 이야기가 끝이 없다.
'섹스리스' 부부였던 이모 씨의 경우 자각몽을 통해 증상을 개선할 수 있었다고 했다. 또 한 취업준비생은 자각몽으로 면접준비에 도움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다음 카페 '루시드 드림'을 운영하고 있는 이규상 씨에 따르면 자각몽은 지친 현대인들의 심신을 다독여 주는 진정한 힐링법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꿈은 늘 신기하고 예측불허한 곳인 만큼 자각몽을 꿀 줄 안다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환상적인 꿈속의 풍경들을 끊임없이 구경할 수도 있고 기상천외한 곳을 탐험할 수도 있다는 것. 이런 이유로 자각몽은 악몽 극복, 자신감 회복 등 다양한 심리치료에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찮다. 김양태 계명대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취업과 결혼 등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은 현실을 도피하려는 성향을 보이기 쉽다. 특히 자각몽은 근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기 때문에 한번 경험한 젊은이들은 자각몽에 빠져들게 되는 중독성이 있다"고 했다. 또 "자각몽은 현실의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행위다. 자주 이를 접하면 현실감이 없어지면서 환청, 망상 등 정신분열증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자각몽은 일부 외상후스트레스 증후군이나 악몽 환자에게 제한적으로 사용되던 치료법인 만큼 일반인들이 자각몽을 치료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심할 경우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자주 자각몽을 할 경우 '꿈을 행동화'하려는 경향이 생길 수 있고 문제점이 발생해도 병원을 잘 찾지 않아 증상이 심각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SNS 역극
SNS 역극 역시 젊은이들의 놀이터 겸 도피처가 되고 있다. 인터넷 카페 게시글에는 하루에도 수백 건씩 역극 모집 글들이 올라온다. 23일 기자가 '역극'이란 단어로 카페를 검색하니 수천 개의 카페가 나타났다. 가장 큰 규모의 카페는 회원 수가 5천여 명이 넘었다. 놀이 파트너를 찾는 글도 넘쳐났다. 역할극의 준말인 역극은 첫 번째 사람의 댓글이나 게시물에 따라 일종의 대본을 완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죽고 싶어'라는 첫 글이 달리면 다음 사람이 '죽여줄게' 등의 대화를 이어 나간다. 대부분은 애니메이션 주인공을 흉내 낸 역극이지만 범죄과정을 연상시키는 역극도 있다. 성폭행이나 살인 장면을 자세히 묘사한 글도 많다. 얼마 전 네이버의 한 카페 게시글에 사이코패스 살인범이 학생을 죽이는 장면을 묘사한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첫 글이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100여 개의 댓글이 달리며 살인 과정이 차례로 묘사됐다. '역극' 놀이가 일부 청소년 사이에는 성적'폭력적 일탈의 창구가 되고 있는 셈이다.
고등학생 정모(17) 양은 "역극에서는 현실에 있을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매력이 있다. 하루 중 수업시간과 자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역극 놀이에 쏟아붓는다. 한 번에 서너 개의 역극을 동시에 할 때도 있다"고 했다.
역극 대화 내용이 현실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지난해 5월 천안서북경찰서는 '멤버놀이'에서 가상연인 관계이던 여자 중학생에게 성적 가혹행위를 한 혐의로 또 다른 여자 중학생을 구속했다. 멤버놀이는 아이돌 그룹 등 연예인을 흉내 내며 가상대화를 나누는 역극과 유사한 놀이다.
'역극을 즐긴다'는 연극배우 최우정(31) 씨는 "SNS 역극은 실제 연극에도 많이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일부 카페에서 운영하는 역극의 경우 일종의 욕구 불만 해소를 위한 역극으로 전락하고 있다. 특히 요즘 학생들의 표현 수위는 생각보다 심하다"고 우려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자각몽=스스로 꿈이라는 사실을 알고 꾸는 꿈을 말한다. '루시드 드림'(lucid dream)이라고 불린다. 1913년 네덜란드의 내과의사 F.V.에덴이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다. 자신이 꿈이란 걸 인지하면서 스스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거나 자기가 상상하는 대로 펼쳐지는 꿈속에서 색다른 경험을 해보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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