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복잡하고 불안해질수록 사람들은 과거에 집착한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현대인들에게 미래는 더욱 불안하고 무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과거가 던져주는 경험의 교훈 속에서 현대인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힘을 얻는 것이다. 과거의 추억과 애환이 담긴 장소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위안과 행복을 전해주고,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매력적인 명소가 되기도 한다.
정부는 미래성장 동력의 핵심카드로 '창조경제'를 빼 들었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창조경제라는 개념을 십분 이해하고 동참하는 분위기는 다소 냉랭해 보인다. 이는 궁극적으로 창조경제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국내 사례들을 찾기가 힘든 때문이다.
창조경제의 실현은 특정한 분야에 한정할 수 없다. IT산업뿐 아니라 제조, 서비스, 유통,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창조경제는 발현돼야 한다. 이 가운데 국민들에게 가장 손쉽게 창조경제를 느끼게 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문화부문이 아닐까 싶다. 국민 실생활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문화가 주는 파급 효과가 어느 것보다 큰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표적인 지역의 창조경제 사례가 아양철교이다. 대구의 희망젖줄, 금호강의 유유함 위를 묵직하게 지켜오며 대구시민 곁에서 100여 년의 세월 동안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며 대구 산업화를 이끌었던 장본인이다.
"강원도에서 멀디 먼 타향 대구로 시집 온 새댁이 있었지요. 고향을 떠나온 외로움과 시댁에서의 낯설음, 그럴 때면 그 새댁은 아침 일찍 동네 제일 높은 벤치에 앉아 흐느껴 울곤 했지요. 그러다 햇살이 어리는 금호강 다리 위로 철커덕 소리를 내며 달리는 기차를 보면 더욱 목놓아 울곤 했지요. 왠지 그 기차를 타고 오매불망 부모님이 찾아오는 것 같아서 말이죠. 아양철교는 저에게 그렇게 위안을 주던 추억이 서린 곳이었죠." 아양철교를 추억하며 익명의 주민이 보낸 편지내용 일부분이다.
아양철교는 대구시민의 오랜 추억과 애환이 담겨진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아양철교는 구 대구선 폐선으로 마지막으로 남겨진 철교라는 남다른 의미도 있다. 이러한 아양철교가 철거될 위기에서 벗어나 대구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재탄생돼 오랜 세월 간직해 온 대구시민들의 소중한 추억들을 지켜낼 수 있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낀다.
아양철교는 '아양기찻길'이라는 이름으로 10월 10일 대구시민들에게 선보였다. 이번 사업은 총 14㎞에 이르는 옛 대구선(동대구역~반야월역~청천역) 폐선 부지를 개발, 대구선 공원으로 조성하는 계획 가운데 하나로 시작됐다. 하천관리부서인 부산국토지방관리청과 대구시를 몇 번이고 방문해 아양철교의 존치 이유를 설명했다. 아양철교를 동구청 재산으로 귀속 받았을 때 명소로 탄생시킬 수 있다는 기대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다. 폐 철교 위 조형물을 설치한다는 건 세계에도 유례를 찾기 힘들기 때문에 발상 자체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열악한 지방재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민자를 유치하는 일, 우리의 역발상을 담아 낼 설계업체를 찾기 힘들었던 일 등 지난 6년 여정은 너무도 힘들었다. 아양기찻길의 디자인은 국내 시각디자인부문 최고 권위자인 서울대 백명진 교수가 맡았고, 사업비 대부분인 53억원의 민자도 유치에 성공했다. 아양기찻길 사업에 대한 성공 확신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일이다.
지금은 독창적인 문화와 스토리를 갖춘 도시가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는 시대이다. 이제는 도시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그 도시만의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오래된 건물을 없애고 다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이러한 시대에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역사성을 배경으로 문화적 요소를 연계하여 만들어내는 도시의 독창적 브랜드가 오히려 큰 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이다.
100년 대구시민의 애환을 품고 달려온 아양철교의 리모델링 사업이 주목받는 이유도 역사성과 스토리를 간직한 채 재탄생되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대구시민들의 추억을 싣고 달려온 아양철교가 이제는 대구를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 대구시민에게서 사랑받는 대표 휴식터가 되길 희망해 본다.
이재만 대구 동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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