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집중 인터뷰] 전윤철 전 감사원장

입력 2013-10-25 07:59:25

"감사원은 정권 아닌 국민과 코드 맞춰야 나라가 바로 서죠"

"감사원이 제대로 서야 한다. 감사원이 바로 서면 나라가 바로 선다. 감사원장은 정권과 코드를 맞춰서는 안 된다. 국민과 코드를 맞춰야 한다. 지금은 국가든 기업이든 효율이 중요한 시대다. 감사원장은 가능하다면 경제를 다뤄 본 사람이 맡는 것이 좋다. 감사원은 공직자들을 법 논리에 따라 징계하는 공직기강을 잡는 곳이기도 하지만 국가운영 시스템을 바로잡는 곳이어야 한다."

전윤철 전 감사원장(74)은 역대 감사원장 중에서 유일하게 연임했다. 참여정부 당시 19대 감사원장으로 4년 임기를 마치고 2007년 재임명됐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남은 임기를 채우지 않고 떠났다.

1997년 공정거래위원장을 맡은 이후 감사원장으로 공직을 떠날 때까지 기획예산처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감사원장에 이르기까지 12년 동안 4개의 정권을 거치면서 장관급 이상 고위 공직을 섭렵했다는 점에서 그는 '억세게 운 좋은'공직자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할 즈음에는 국무총리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전남 목포가 고향인 전 전 원장은 얼마 전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기념관 이사장에 취임했다. 김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기념하기 위해 목포 삼학도에 건립된 기념관을 이희호 여사가 맡아줄 것을 권유하자 그는 주저 없이 맡았다.

장관시절 그는 '전핏대'라고 불렸다. 업무추진력이 뛰어나지만 성격이 대쪽같고 원칙을 강조하는 그의 스타일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전핏대 대신 '혈죽(血竹)거사'라고 불리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경제기획원 예산국장을 했는데 당시 총무처 정문화 인사국장하고 함께 육사대위출신을 사무관으로 특채하던 '유신사무관제도'를 없앴다. 간부회의에서 책상을 치면서까지 유신사무관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 것이 알려지면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

그런 대쪽같은 성격과 강한 추진력 덕분에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기획예산처 장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에 파격 발탁됐고 경제부총리에 이어 참여정부에서는 감사원장을 지냈다. 최고권력자에게도 눈치를 보지 않고 서슴없이 직언을 하는 것이 그의 스타일인 셈이다. 감사원장에 취임하자마자 그는 모든 부처의 주요 정책을 감사하는 정책감사, 시스템감사에 나섰다. 그러자 각 부처에서는 '감사원이 다 해먹느냐'며 강하게 반발했고 노 전 대통령에게도 불만을 터뜨렸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이 전 전 원장을 불러 "감사원은 누가 감사하느냐"며 우회적으로 감사원의 정책감사에 제동을 걸려고 하자 "감사원 감사는 국민과 국회가 하고 수시로 대통령께서 하지 않느냐"며 감사원의 정책감사 실시를 관철시켰다.

공약축소 논란을 빚은 복지공약에 대해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영국의 처칠 수상도 '공약을 하고 지킬 수 없으면 그때 가서 사과하면 된다'고 했다. 부끄러워할 것 없다. 공약을 지키려고 했는데 우리의 (재정형편이) 능력이 여기까지 밖에 되지 않는다. 여기까지 할 수밖에 없다고 솔직하게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그는 박 대통령에게 진언할 수 있는 참모가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못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대통령에게 진언하고, 총리에게도 진언했다. 안 되는 것은 안 되고, 못하는 것은 못한다는 소리를 내야 한다. 그런 진언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현오석 경제부총리에게 강한 리더십을 보여라고 조언했다고 하는데

"현 부총리가 만나자고 해서 세 가지 당부를 했다. 첫째 청와대 경제수석과의 관계를 분명히 하라. 비서실장 때 나는 가급적 경제수석들이 앞장서지 말라고 했다. 의사결정을 위한 논의는 많이 하되 발표는 어디까지나 부처 장관이 하도록 해달라. 이것을 철저하게 지켰다. 그것이 비서실장으로서의 철학이었다. 그래야 부처 권위가 설 것이 아닌가.

그래서 현 부총리에게 청와대 수석비서관과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책임을 지고 모든 것을 발표하는 역할을 하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경제장관회의를 자주 열되 결정된 사안에 대해 딴 소리 하는 장관이 있으면 함께 일을 못한다고 분명하게 하라. 그래야 부총리가 일을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한국은행 총재와의 관계인데 이 부분도 확실하게 해야 한다. 내가 부총리 때 디노미네이션 문제로 한은 총재와 부딪친 적이 있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 "디노미네이션은 통화관리가 아니라 정부 일이다"라고 강하게 경고한 적도 있다. 현 부총리에게 세 가지를 부탁했는데 잘 끌고 갈 것으로 본다."

-현 경제팀에 대한 평가는 좋지 못하다

"좌우간 경제 부총리는 스스로 그런 입장을 확고하게 견지해야 하고 소리를 좀 내야 한다. 소리 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께서 (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부총리가 일을 할 수 있다. 나는 비서실장을 지내고 부총리를 맡았지만 당시 김 전 대통령께서 확실하게 맡겼다. 대통령이 총리와 부총리에게 맡기지 않으면 피곤해서 일을 하지 못한다.

박 대통령의 스타일을 언론에서 '만기친람'(萬機親覽)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대통령께서 많이 알고 있거나 믿지 못해서 그럴 수 있지만 그렇게 만기친람하다보면 자칫 어떤 문제에 대통령이 함몰될 경우, 해결할 방법이 없다.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총리와 부총리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적절하게 맡겨야 대통령이 통치학을 생각한 대로 끌고 갈 수 있다."

-기초연금 공약 때문에 복지 축소 논란이 빚어졌다

"외국을 많이 다녀보면 우리나라처럼 무차별적인 복지정책을 하는 나라는 없다. 예를 들어 공무원 연금을 500만원이나 받는 나도 65세가 넘으니까 지하철 무료 티켓이 나온다. 그것을 찾아가지 않으니까 동사무소에서 갖다준다. 이런 나라는 없다.

지난해 9월 체코 프라하에서 '몽페르랭 소사이어티' 연차총회가 열렸다. 여기서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두 가지 경고를 했다. 하나는 유럽의 통화체제를 깨지 않고, '유럽의 복지병'을 차단하지 않는 한 유럽의 경제위기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두 번째는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시대에 파생상품으로 일반 주민들에게 주택복지정책을 했는데 이것이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일으켰다. 프리드만 교수가 "공짜 점심은 없다. 공짜 점심이 있는 나라는 빨리 망한다"고도 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방식의 복지정책을 하면 국가재정이 거덜난다. 천 년 전 플루타크가 "국민의 뜻을 거스르면 국민에게 망하고 국민만 추종하다가는 국민과 함께 망한다"고 했다. 공짜점심 등 국민의 뜻만 좇는 포퓰리즘이 지속된다면 결과는 뻔하다."

-창조경제는 어떻게 추진하는 것이 좋은가

"'창조경제'는 1910년 존 홉킨스가 처음 한 이야기다. 세계화 시대가 도래하고 디지털혁명이 일어나고 후진국도 추격을 하고 있어 예전 산업시스템으로는 블루오션을 잡기 어렵다. 문화와 산업, 기술과 산업. 아이디어와 지식을 어떻게 융합하느냐가 창조경제인 것 같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으로 창조경제를 할 것인가. 교육과 의료 등 서비스산업이다. 지식산업을 육성한다는 차원에서 의료를 산업화하고 의료허브 같은 것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교육도 우리는 인력이 우수하다. 홍익인간을 만들겠다는 고상한 교육이념이 아니라 제주도에 하버드대 분교라도 유치, 유학생을 유치해야 한다.

경제부총리를 그만둘 당시와 감사원장 때 줄기차게 주장했던 것이 과거의 벽돌식 매뉴팩처링 제조업 중심으로는 전략산업에 한계가 있다. 그런 매뉴팩처링은 이제 중국으로 넘어갔다. 우리가 중국을 이길 수 없다.

의료와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 싱가포르의 MBA는 아시아 최고다. 의료산업도 우리보다 뛰어나다. 싱가포르에는 7개의 의료법인 이 공개돼 있다. 이제 중국인들의 1인당 소득이 5천불을 넘어서고 있다. 중국이라는 큰 시장을 옆에 두고 있다. 이들의 소득이 올라가면 건강을 챙기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인력이 우수해 의대생은 일류지만 의사는 이류, 병원은 삼류다. 이것을 어떻게 산업화할 것이냐. 지식산업을 육성한다는 차원에서 의료를 산업화하고 의료허브 같은 것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제주도가 됐든 송도가 됐든 간에 이것은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할 문제다.

카지노산업도 도입해야 한다. 카지노를 범죄시하는 심리적 현상이 있지만 아시아에서 가장 경제가 건전하게 발전한 곳이 싱가포르와 홍콩이다. 싱가포르는 이광요 식의 유학정신이 들어가 있는 시장경제다. 싱가포르도 하는 카지노를 우리가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감사원장에 취임해서 정책감사와 시스템감사를 도입했다

"정책감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국유재산관리실태를 감사한 것이다. 전국에 국유재산이 있는데 남대문세무서가 돈 받아먹은 것만 감사했지 남대문세무서 자리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는 한 적이 없다. 정책감사결과 지금은 새로 지은 남대문세무서가 50억의 임대료 수익을 올리고 있다.

건물을 지을 때 하던 환경영향평가와 교통영향평가 등 4가지를 하나로 통합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국유재산 수익모델을 개발하겠다며 정책감사로 방향을 틀자 각 부처에서 '감사원이 다 하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시스템감사를 제대로 해야 국가시스템이 돌아간다. 우리 정부조직은 이익단체를 대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자,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어민, 산업통상자원부는 기업인을 대변한다. 국가는 가장 중립적인 입장에서 메인스트림을 정해서 끌고 가는 것이다."

-4대강사업 감사로 감사원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졌다

"감사원장을 경제를 아는 이코노미스트가 맡으면 장점이 있다. 그러나 감사원장이 정부 일을 잘 모르는 대학교수 등이 가면 감사원 조직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나는 감사원에 가면서 해야 할 일을 미리 갖고 갔다.

이상적인 감사원장은 감사원 출신으로서 외부에 나가서 장관을 하다 가는 것이다.

서울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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