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향토음식의 산업화] 터키 고등어케밥

입력 2013-10-21 07:36:16

고등어 비린내? 고소·담백·간이 딱!

터키는 역사만큼이나 특색 있는 음식 문화를 지니고 있다. 아시아 내륙의 유목음식과 서부아시아의 농경음식 그리고 비잔틴과 오스만 제국의 화려한 궁중음식이 뒤섞인 독특한 전통음식이 발달돼 있다.

이 가운데 '케밥'(Kebap)은 중국'프랑스 요리와도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꼬챙이에 끼워 구운 고기를 칼로 쓱쓱 썰어서 밀가루 전병에 슬쩍 말아 종이 봉지에 싸주는 간단하기 그지없는 거리음식이 어떻게 세계인들을 열광시켰을까. 이스탄불에서 만난 케밥을 통해 우리 음식의 세계화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간편한 전통음식이 세계화를 이룬다

터키의 전통음식 케밥은 원래 조리가 간단하고 먹기도 단순한 음식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고급스럽게 발전했고 지금은 300여 가지에 이를 정도로 조리법이 다양해졌다. 케밥은 큰 꼬챙이에 고기를 끼워 켜켜이 쌓고, 숯불 화덕 곁에 세운 채로 돌려 가며 천천히 익혀서 만든다. 간단한 직화구이 형태의 조리 과정이지맘 기름이 빠져나가 고기 맛이 담백하다.

지난 8월 31일부터 9월 22일까지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3'을 찾은 국내 여행객들은 케밥의 맛과 이스탄불의 거리 분위기에 매료됐다. 특히 안동간고등어와 케밥을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적당한 소금간을 한 고기를 숯불에 구워 낸 후 긴 칼로 썰어서 구운 밀가루 전병에다 말아 파는 터키 케밥이나 고등어 배를 칼로 갈라 씻은 다음 소금으로 간을 한 후 비닐 포장지에 담아 파는 안동간고등어는 과도한 가공이나 조리를 하지 않은 점이 닮았다. 향토음식이 산업화와 세계화에 성공하려면 조리 방법과 가공이 간단해야 한다. 기초적인 식재료 형태와 비교적 간편한 음식을 소재로 하는 것이 세계화된 음식들의 공통점이기 때문이다. 터키를 방문한 이재업 안동상의 회장은 "안동간고등어는 소금으로만 간을 했기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에게도 기초 식재료가 될 수 있다"며 "각국의 취향에 맞게 향신료와 양념을 쓸 수 있다는 점은 안동간고등어가 세계화될 수 있는 강점"이라고 말했다.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도 즐긴 케밥

터키 말로 '구이'라는 뜻의 케밥은 광활한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와 아라비아 사막을 누비던 유목민들이 쉽게 조리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개발한 음식이다. 동'서양의 중간에 낀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해 전쟁을 많이 치렀던 터키였기에 군인들의 전투식량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야영지에서 고깃덩어리를 칼이나 창에 꽂아 모닥불에 구워 먹은 것이 케밥의 유래라는 것이다. 18세기에 나온 오토만 트래블북스에는 당시 케밥은 수평 형태로 구웠다고 기록돼 있다. 오늘날처럼 수직으로 세워서 굽는 '되네르' 케밥은 1867년에 요리사 이스켄데르 에펜디가 고안해냈다는 설이 강하다.

유목민이든, 군인이든 육체적인 에너지 소모가 많았기에 빠르고 간편하면서도 영양가 높은 음식이 필요했다. 그들에게 케밥은 이상적인 음식이었을 것이다. 케밥의 기원에는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가 등장한다. 케밥이 그들의 만남을 위해 터키 남부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음식이라는 풍설이다. 김휘동 전 안동시장은 재임 시절 "클레오파트라의 미모도, 카이사르의 스태미너도 바로 고등어에서 비롯됐다"고 설파해 이목을 끌었다. 구운 간고등어로 만든 터키 케밥의 이야기가 기원이다. 김 전 시장은 재임 시절 이를 재미있게 스토리텔링해 좌중을 박장대소하게 만들었다. 이스탄불-경주엑스포 안동시 홍보단으로 참가한 전영록 안동대 교수는 "터키는 예부터 유목민들의 이동생활과 잦은 전쟁 등으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발달했다"며 "양고기를 불에 구워 양념하고 딱딱한 빵과 수프를 곁들여 먹었던 케밥이 종류와 재료, 맛이 다양화되면서 세계적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했다.

케밥의 종류는 많다. 키레밋 케밥은 돌판에 국물이 자작하도록 해 고추와 감자, 가지, 고기를 잘게 썰어서 매콤하게 끓여 낸 뒤 빵에 싸서 먹거나 토마토소스에 고기를 싼 빵을 찍어서 먹는다. 한국인의 입맛에도 딱 맞아떨어지는 맛이다. 오르만 케밥은 채소와 고기 등 다양한 재료들을 큼지막하게 썰어 넣고 올리브유와 소금으로 간을 맞춰 고소하게 볶아 낸다. 아다나 케밥은 고기와 매운 고추를 버무려서 밀가루와 반죽해 떡갈비처럼 석쇠에 구워낸 케밥이다. 밥과 야채, 토마토 등과 곁들여 먹을 경우 아주 색다른 맛을 경험할 수 있다. 꼬치구이 같은 닭고기 케밥인 타북 쉬쉬와 가장 작은 케밥 최프 쉬쉬, 쇠꼬챙이에 다진 고기를 붙여 꼬치구이처럼 구워 낸 우르파 케밥, 요구르트와 함께 먹는 이스켄데르 케밥, 양 가슴살로 만든 피르졸라 등 모두 맛보려면 일 년도 모자랄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 이스탄불 탁심광장에서 만난 되네르 케밥 장수 오메르 오난(Omer Onan'62) 씨는 "되네르 케밥은 양고기와 소고기를 얇게 썰어 철 꼬챙이에 겹겹이 쌓아 올려 올리브유 등으로 양념해 구운 것으로 얇은 빵에 싸서 먹는 음식"이라며 "되네르 케밥이 지구촌 곳곳에서 케밥으로 가장 많이 알려지고 판매되고 있다"고 자랑했다.

◆이스탄불 에미뇌뉴 부두의 고등어 케밥

이스탄불-경주엑스포를 찾은 대구경북 사람들은 양 지역의 문화적 동질감을 느끼며 놀라워했다. 특히 이스탄불에서 발견한 고등어 케밥은 참가자들의 눈길을 모았다. 고등어 케밥은 한국 문화관 맞은편 에미뇌뉴 해변가 선착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고등어 케밥은 여행객들이 유람선에 오르기 전이나 내린 후 꼭 한 번씩 맛을 보는 이스탄불의 먹거리 관광 코스다.

특히 뿌연 연기와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고등어를 굽는 모습은 여지없이 우리나라 축제장의 모습이다. 선착장 옆 부두에 정박한 작은 배에서는 터키 전통 복장의 케밥 요리사들이 뼈를 발라 낸 고등어를 갑판 위에 설치한 커다란 철판에서 쉴 새 없이 구워내고 있었다. 지글지글 연기를 피워 올리며 맛깔스럽게 구워진 고등어에 레몬즙을 뿌리고 양파, 토마토, 파프리카 등과 함께 빵 사이에 끼워 연신 건넨다. 고등어 케밥에 쓰이는 바게트풍의 빵은 딱딱하고 질긴 느낌이 있는데 살짝 구워내면 안은 차갑고 겉은 바삭바삭해 바싹 구운 고등어의 식감과 잘 어울린다. 세계탈문화예술연맹 김호민 사무차장은 "조금 어수선하고 지저분한 면도 있지만 고등어 케밥이 거리음식이었기에 그 분위기를 즐겼다"고 했다.

철판에서 수십 마리의 고등어를 쉴 새 없이 구워내고 있는 30년 전통의 케밥 요리사 에르신 고루켐(Ersin Gorkem'57) 씨는 "출렁이는 파도 위의 배에서 구워 낸 고등어 케밥은 이스탄불 여행에서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할 별미"라고 자랑했다.

에미뇌뉴 부둣가는 온종일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해가 저문 뒤에도 손님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고 주변은 불야성을 이뤘다. 고루켐 씨와 같이 일하는 오바이 카야(Orbay Kaya'17) 군은 "많이 팔 때는 하루에 고등어 1천여 마리를 케밥으로 만들 때도 있다"며 "저녁 늦게까지 여행객들과 터키인들이 한 끼 식사를 위해 고등어 케밥을 사간다"고 웃었다. 이곳에서는 고등어 케밥 1개에 6리라에 사 먹을 수 있다. 우리 돈으로 치면 3천500원. 어른 팔뚝만 한 바게트 빵에다 손바닥 크기의 고등어를 통째로 먹을 수 있다. 고등어 케밥을 맛보면서 우리나라 전병이 떠올랐다. 강원도는 알싸한 갓김치를 무치거나 짭짤하게 파를 볶아서 메밀전병 속을 채운다. 제주도는 무를 채 썰어 간간하고 고소하게 볶아서 메밀전병 빙떡을 만든다. 안동에선 푹 삶아 낸 강낭콩으로 밀전병 속을 채운다. 케밥처럼 종이봉투나 간단한 1회용 접시에도 담을 수 있는 우리의 전병도 속을 다양하게 개발할 수 있기에 향토음식 세계화를 위한 좋은 한식 소재가 될 수 있겠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글'사진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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